2021년 12월 4주차 |
BOOK SUMMARY | ||
노명우의 한 줄 사회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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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노명우 출판 EBS BOOKS 출간 202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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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요약 보기노명우의 한 줄 사회학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 유독 정성을 쏟아야 맛있게 조리되는 음식이 있습니다. 음식 중에는 뚝딱 만든 다음 안달하지 않고 오히려 그냥 내버려두어야 숙성과 발표를 거쳐 기막힌 맛을 내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조리 과정 내내 관심을 기울이며 지켜봐야 제대로 맛이 나는 음식도 있습니다. 밥보다는 죽이 훨씬 더 까다로운 음식이고 요리하는 사람의 정성을 요구하지요. 죽은 밥과 달리 조리되는 내내 불 옆을 지키면서 계속 저어주어야 쌀이 눌어붙지 않습니다. 죽과 조리 과정이 살짝 비슷한 이탈리아 요리 리소토도 그런데요,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리소토는 만드는 과정에 담긴 정성 맛으로 먹는다는 말이 있다고 하지요. 그렇게 정성 들여 만든 죽인데, 그 죽을 남을 준다면 억울하겠지요? 세상살이에서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자주 처해서 그런지 “죽 쒀서 남 준다”와 유사한 속담이 적지 않은데요, 이번에 제가 여러분과 함께 세상을 들여다볼 실마리로 선정한 속담은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입니다. 이 속담 많이 들어보셨죠? “재주 넘는 곰”의 자리에 사람을 대입하면 재주 넘는 곰은 “노동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곰이 재주를 넘지 않으면 주인은 돈을 벌 수가 없었겠지요. 구경꾼은 곰 주인을 보고 돈을 주는 게 아니라 곰의 재주가 신기해서 돈을 주는 것이니까요. 주인이 돈을 벌 수 있게 만든 원천은 어디까지나 재주 넘는 곰입니다. 곰이 재주를 넘었기에 그 덕택으로 주인이 돈을 벌고 있으니, 재주 넘는 곰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는 것이 세상의 마땅한 이치지요. 그런데 이 세상은 우리의 당연한 기대나 상식적인 판단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노동하지 않고 곰으로 하여금 재주를 넘게 하는 주인이 벌어가는 돈과, 정작 재주 넘는 곰에게 돌아가는 돈이 어느 정도의 비율로 배분되는지 따져봤더니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서 재주 넘는 곰이 과소한 돈을 가졌다고 해요. 재주 넘지 않은 주인이 과대한 돈을 벌면, 재주 넘는 곰은 어떤 심정일까요? “죽 쒀서 남 준” 듯한 억울한 심정일 겁니다. ** 사람들이 모여 있을수록 “재주 넘는 곰”을 내세워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장사는 ‘목’이 좋아야 한다고 하지요. 여러분은 필요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얻으려 할 때 어디에 접속하시나요? 이 질문이 의미 없을 정도로 우리가 인터넷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구글이든 네이버든 이른바 포털이라고 부르는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구글이나 네이버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장터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루에 구글이나 네이버를 이용하는 사람은 오프라인의 장터에 모인 사람이나 야구장에 모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사람들로 늘 북적이는 그곳, 사람들이 모여서 정보를 주고받고, 물건을 사고팔기도 하는 곳을 ‘플랫폼(platform)’이라고 합니다. 플랫폼은 물리적 실체가 없는 가상의 공간입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윤이 창출되는 매우 자본주의적인 공간입니다. 플랫폼이 자본주의의 공간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식과 데이터를 구별해야 하는데요, 정보는 데이터의 속성과 지식의 속성을 모두 지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뉴욕 여행을 계획하느라 구글에서 뉴욕에 있는 한인 민박집의 정보를 검색했고, 그 결과 뉴욕에 있는 한인 민박집의 주소를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지요. 이 경우 여러분은 구글을 통해 뉴욕에 있는 한인 민박에 대한 정보 중 ‘지식’의 측면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지식 기반의 정보에 의존해 한인 민박집의 위치를 구글 지도에서 검색한 후 가고 싶은 장소에 저장하고, 이 숙소에 관한 후기를 검색해서 읽어보고 최종적으로 이 숙소를 예약했다면 데이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뉴욕을 여행 목적으로 검색했다는 활동 그 자체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는 하나의 의미 있는 데이터입니다. 나는 지식을 검색만 했을 뿐인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검색 활동을 통해 형성된 데이터는 감지되고 기록되고 수집되고 분석됩니다. 정보를 통해 지식을 얻고, 얻은 지식을 통해 데이터가 생성되고, 이 데이터가 기록되고 저장되고 분석되는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가상의 공간이 플랫폼인 것이지요. 플랫폼 기업들은 자신이 설계한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데이터에 독점적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 기업은 우리가 플랫폼에서 수행하는 활동의 결과인 데이터를 독점하고 추출하고 분석하고 활용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데이터를 활용해 돈을 벌지요. 이게 플랫폼 자본주의의 기본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데이터는 플랫폼 기업이 만든 게 아닙니다. 데이터는 우리가 만들었죠. 아주 비판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플랫폼 기업이 돈을 벌 수 있는 기반인 데이터를 돈 한 푼 받지 않고 매일매일 아주 열심히 만들어주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구글과 페이스북과 링크드인과 인스타그램을 위해 ‘그림자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자 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플랫폼이 아주 북적이자, 구글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광고주에게 “여기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광고비를 내시오”라며 돈을 걷고 있네요. 나는 SNS를 좋아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사실 “재주 넘는 곰”이었군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터넷 시대의 격언은 이렇습니다. 상품값을 내고 있지 않다면, 당신이 바로 그 상품입니다. 우리가 재주 넘는 곰이지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 여러분은 관람할 영화를 고를 때 어떤 방법을 쓰시나요? 열심히 정보를 수집해서 관람할 영화를 고르기도 하지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친구에게 “요즘 어떤 영화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만약 주변에 영화광이 있으면,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기보다 영화광에게 물어보고 그 영화광의 판단을 믿고 따르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겉으로는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 다른 사람의 판단을 따라서 한 것인 경우가 많아요. 다른 사람, 특히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의 판단에 대부분의 사람은 동조합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이 이런 현상을 표현해주는 것 같습니다. 친구를 믿고 친구 따라 나섰다가 강남까지 갔다네요. 친구 따라 길을 나서 도착한 강남은 본래 서울 강남이 아니라 철새가 때가 되어 장거리 이동하는 목적지인 중국 양쯔강의 남쪽 지역을 의미합니다. 친구 따라 참 멀리도 갔죠? 이 속담의 강남은 서울의 강남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이 속담의 강남을 중국의 강남이 아니라 서울 강남으로 이해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서울 강남은 최신 유행의 근원지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식당에서 어떤 음식을 주문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주인에게 물어봅니다. “뭐가 잘 나가요?” 그때 주인이 “아, 이게 잘 나갑니다”라고 얘기해주면 사람들은 안심하고 먹습니다. 그런데 사실 사람의 입맛은 각자 다른 게 정상적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이 꼭 나에게도 맛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음식이 잘 나간다”는 얘기를 들으면 의심하지 않고 그 음식을 선택합니다. 옷가게에서 옷을 고르고 있는데 쉽게 결정하지 못합니다. 그때 점원이 “요즘 이게 유행이에요. 이게 아주 잘 나가요”라고 하면 그 순간 “아, 그래? 사야지!” 하고 결심하기도 하지요. 일상생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사례죠. 사회학자는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런 현상들이 생기는 이유들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연구를 하다가 이른바 ‘폭포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폭포 현상’이란 사람이 선택을 할 때 자기 판단을 따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선택을 따라 하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선택을 따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이 앞 두 사람의 선택을 따라 하면 처음에는 작은 움직임에 불과하던 것이 점점 불어나 일종의 폭포처럼 특정한 경향으로 사람이 몰리고 마치 폭포 물이 떨어지는 것처럼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형성되는 과정을 ‘폭포 현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죠. ‘바이럴 마케팅’은 ‘폭포 현상’을 의도적으로 만들기 위해 요즘 많이 사용하는 기법입니다. ‘바이럴’은 바이러스의 형용사형인데요, 바이럴은 그 자체의 뜻으로 보면 어떤 현상이 바이러스처럼 쉽고 빠르게 전파됨을 의미합니다. 낯선 장소에 갔는데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할지 모를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인터넷으로 ‘OO맛집’이라고 검색합니다. 검색하면 정말 많은 맛집 정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오죽 맛있으면 이 사람이 이렇듯 정성스럽게 포스팅했을까 싶어 믿고 그 집에 갑니다. 그런데 음식을 먹어보니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경험, 많이 해보셨지요? 흔히 이런 경우 우리는 ‘낚였다’라고 표현하는데요, 많은 사람이 낚여서 “친구 따라 강남” 가면 갈수록 ‘폭포 현상’이 강해지고 그렇게 되면 ‘바이럴 마케팅’은 대성공하는 셈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개성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들과 같아지려는 압력을 느끼기도 합니다.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이 부족할 때 남의 선택을 따라 하면 최소한 망하지는 않겠다는 생각, 즉 ‘동조 압력’이 확산되면 곳곳에서 ‘폭포 현상’이 벌어집니다. 사회학자 지멜은 이렇게 남들을 따라 하는 모방의 심리에는 안도감과 부담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모방은 우리가 행동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갖게 해주고, 지금까지 이루어진 동일한 행위들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그러한 단단한 토대 덕분에 현재의 행위는 스스로 이루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 해방된다.” 자동차 카탈로그를 살펴보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자동차 색의 폭은 꽤 넓습니다. 그런데요,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자동차의 색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선택은 열려 있었는데도 사람들은 한정된 범위 몇 가지 색 중에서 하나를 선택합니다. 개성을 뽐내기 위해서 이번에는 반드시 ‘빨간색’ 자동차를 선택하겠다고 결심했는데도,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선택은 ‘개성’은 없어 보이지만 안전하다는 이유로 빨간색을 포기하고 무채색 자동차를 선택하는 게 우리의 평범한 삶의 모습 아니겠어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한때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렸던 책 중 하나가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에세이였습니다. 특정 시기 한 사회의 베스트셀러는 당대의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베스트셀러는 이유가 있어서 잘 팔린다고 하지요. 그 잘 팔린 만한 이유가 베스트셀러가 반영하고 있는 시대의 분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을 다룬 책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는 건 그만큼 한국에 우울한 사람이 많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병’은 한국인에게서만 나타나는 아주 독특한 신경증이라고 하지요. 우리만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이라 유독 질투가 심하고, 그 질투가 급기야 마음의 병을 만드는 걸까요? 혹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자체가 그런 것 아닐까요? ** 우리로 하여금 우울감에 빠지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를 사회학 용어로 설명해보자면 ‘빈곤’ 때문입니다. 경제 발전이 궤도에 오르지 못한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빈곤은 절대 빈곤입니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다면 절대 빈곤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한국 사회도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절대 빈곤이 굉장히 큰 사회문제였고,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은 규모로 있었지요. 물론 절대 빈곤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지금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절대 빈곤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절대 빈곤으로부터 벗어났다면 한국 사람은 전반적으로 행복해져야 하는데요,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기는커녕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일이 더 많이 발생하고, 우울증이 시대의 키워드가 되고, 우울증을 소재로 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상대적 빈곤’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빈곤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적 빈곤’은 욕망에 의한 빈곤입니다. ‘견물생심’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남들이 사는 구체적인 모습을 보지 않을 때는 나도 충분히 잘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다른 사람의 저녁 식탁에 어떤 반찬이 올라오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랬더니 김치찌개만 올라와 있는 우리 집 식탁이 초라하게 느껴지며 박탈감이 솟구치네요. ‘상대적 빈곤’감이 생기기 시작하는 겁니다. SNS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타인이 어떻게 사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촌이 땅을 샀는지, 아파트를 샀는지, 빌딩을 샀는지를 매일매일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매일매일 뭔가 이루지 못한 느낌, 내 손에 뭔가를 쥐고 있는데도 항상 나한테는 뭔가 없다는 느낌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차라리 모른다면 속이라도 편할 텐데요, 1년에 수십억을 손쉽게 버는 연예인들이 어떤 집에 사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얼마짜리 집을 샀는지, 부동산을 팔아서 어느 정도의 수익을 올렸는지 굳이 몰랐으면 좋았을 소식을 피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사회는 말하고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재벌가와 셀러브리티처럼 화려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임을 매일 확인하는 사람은 굴욕감과 죄의식과 수치심이 뒤범벅된 심정에 놓이게 됩니다. **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학자들이 제시하는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인위적으로 ‘투명 인간’으로 만들라고 합니다. 남과 자기를 너무 비교하지 말라는 거죠.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는 건 사회 정책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국가가 책임지고 절대 빈곤에 놓여 있는 사람에게 절대 빈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최저 임금을 인상하고, 국가가 살뜰히 이들을 돌보는 사회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상대적 빈곤은 절대 빈곤처럼 경제 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때로 투명 인간이 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디지털 디톡스’, ‘SNS 디톡스’ 말입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해보세요. 명상에 버금가는 마음의 평화를 얻으실 겁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놓는다 인간이 사는 사회를 웅덩이에 비교해보죠. 그 웅덩이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미꾸라지는 선합니다. 하지만 그 웅덩이에는 자신만의 이득을 추구하는 사람,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 대놓고 규칙을 어기는 사람, 규칙의 빈틈을 이용해 자기 잇속을 챙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양적으로만 보자면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보다는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는 미꾸라지가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일으킨 흙탕물은 맑은 물을 지키려는 미꾸라지도 마시게 됩니다. 함께 거주함의 역설이라고나 할까요. 제가 이번에 사회를 들여다보기 위해 뽑은 속담은 이 역설을 표현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놓는다”입니다. 아주 잘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로 시작해보겠습니다. 두 명의 죄수가 있습니다. 둘이 공범으로 범죄를 저질렀고 체포되어 각각 3년형을 받을 예정입니다. 검사가 A와 B를 따로 부릅니다. 그리고 이런 제안을 합니다.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여죄가 있다면 털어놔라. 그 대가로 3년 형을 감해주겠다. 만약 상대방만 죄를 털어놓으면 당신은 6년 형을 살게 될 것이다. 이런 제안을 받고 죄수는 감옥으로 돌아가 이것저것 생각해봅니다. A와 B 모두에게 좋은 선택은 둘 다 여죄를 털어놓지 않고 예정대로 각 3년씩 감옥에 있는 것입니다. A는 모두에게 가장 좋은 상황이 무엇인지 잘 알기에 검사의 제안을 거절하려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A의 머릿속에 배신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스칩니다. ‘B가 나를 배신하고 죄를 털어놓으면 어떻게 되지?’ 이 경우 B는 3년 형을 면제받고 자신은 6년 형을 살게 되니까요. 배신당했을 때 자신에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자 A의 태도는 바뀝니다. 타인에게 배신당해 졸이 되는 개인적 최악을 피하기 위해 A는 기왕 배신당할 거라면 내가 먼저 배신하는 게 덜 억울하리라는 생각에 배신을 선택합니다. B역시 동일한 사고 회로를 거친 후 배신을 선택하지요. 결국 A도 6년, B도 6년 형을 받습니다. 각자 공동의 최선이 아니라 각자의 최선을 선택했더니 결과적으로 공동의 최악의 상황으로 귀결되는 딜레마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죄수의 딜레마’ 상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곳곳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교육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의 과도한 사교육은 가정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번 돈의 대부분을 아이들 대학 보내는 사교육비에 다 털어넣습니다. 사교육비가 워낙 부담되다 보니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자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국 회의가 열렸다고 상상해보지요. ‘사교육 없이 교육은 불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한 사회학자가 참석자에게 현재 우리가 처한 사교육 상황이 마치 죄수의 딜레마와 유사하다고 설명합니다. 각자의 최선을 추구하다 보니 사교육비 경쟁이 붙어 모든 사람이 최악의 상황을 모두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사회학자는 모든 사람이 사교육을 받지 않는 단순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최선의 방법임이 분명합니다. 모두 사교육을 받거나 사교육을 받지 않거나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등수는 가려집니다. 사교육이 성적 위주의 서열을 없앨 수는 없지요. 참석자가 모두 동의했습니다. 이제 공동의 이익 방향으로 사회가 움직일 것처럼 보였습니다. 모두가 사교육을 안 받기로 하고 참석자들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갑니다. 모두 행복합니다. 사교육비로 쓰던 돈을 집안 살림에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실질 소득이 몇 배나 늘어난 기분입니다. 그러다 한 사람이 생각합니다. ‘모두 사교육을 안 받는데 우리 집 아이만 사교육을 받으면 서울대학교에 보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요. 모두가 사교육을 안 받는 것이 공동의 최선임에 동의했던 사람이 사적인 이익의 유혹에 빠지는 순간, 이 유혹은 들불처럼 번져나갑니다. 그리고 다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반복됩니다. A가 사교육비에 50만 원을 쓰면 B는 70만 원을 쓰고, B가 70만 원을 쓰면 C는 경쟁에서 이기려고 100만 원을 씁니다. 이런 악마의 회로가 다시 작동되기 시작하면 천장까지 솟구친 사교육비는 결코 내려오지 않습니다. 이런 ‘죄수의 딜레마’ 상황, 참 어이없습니다.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입니다. 모두가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허덕이게 되거든요. 부모는 돈 대느라 힘들고 아이는 공부하느라 죽을 노릇입니다. 이 악순환을 대체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할까요? 왜 인간은 이런 개미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요?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회학은 벗어나지 못하는 개미지옥에서 탈출할 방법을 고민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쓰게 하는 이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사회학이 외면할 수 없는 절실한 사회문제입니다. * * * 본 도서 정보는 우수 도서 홍보를 위해 저작권자로부터 정식인가를 얻어 도서의 내용 일부를 발췌 요약한 것으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저작권자의 정식인가 없이 무단전재, 무단복제 및 전송을 할 수 없으며, 원본 도서의 모든 출판권과 전송권은 저작권자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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