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이야기

   
김성재 (지은이)
ǻ
매일경제신문사
   
20000
2025�� 07��



■ 책 소개


“관세는 어떻게 경제를 움직이는가?”
경제와 무역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이 가득한 책

관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한 나라의 경제 구조와 국민의 삶 그리고 세계 경제의 흐름까지 바꾸는 결정적 변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언제까지 미국의 관세에 시달려야 하는가?”, “왜 정부는 관세를 부과하는가?”, “관세가 오르면 왜 장바구니가 가벼워질까?” 등 우리가 생활에서 관세에 대해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저자는 미국과 영국이 시행했던 관세 정책의 역사적 사례와 수요와 공급의 원리, 금리와 통화량에 따른 금융시장의 변화 등을 설명하고 데이비드 리카도와 존 스튜어트 밀 등의 경제 이론을 바탕으로 자유무역이 경제 성장과 안정에 더 효과적임을 강조하며 바람직한 경제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또한 관세전쟁으로 시작된 복잡하고 긴급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우리나라 경제가 대비하고 돌파할 수 있는 전략을 조언한다.

■ 저자 김성재
저자 김성재는 미국 퍼먼대학교 경영학 교수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7년 동안 외환딜러와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으며 2000년에 예금보험공사에 합류해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해 경험했다.

2005년 금융시장과 정책에 대한 시야를 넓히기 위해 미국 코넬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2008년 ‘미 연준의 통화정책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금융리스크 관리 전문가인 루이지애나주립대학교 돈 챈스 교수의 지도 아래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박사과정 중,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하는 과정을 경험하며 연준의 금리 변동 및 환율 상승과 같은 외부적 충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에 대한 리스크 관리에 대해 연구했다. 2011년 12월 ‘외환위험 관리에 대한 논문’으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부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와 금융을 강의했고, 2023년부터는 퍼먼대학교에서 경영학 교수이자 경영대학 투자연구회 지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대표적인 전문가로 SBS ‘8시 뉴스’를 비롯한 다수의 언론과 인터뷰했고 ‘815머니톡’, ‘웅달 책방’ 등 유튜브 채널에도 출연했다. 현재는 ‘중앙일보’, ‘머니투데이’, ‘여성경제신문’, ‘더칼럼리스트’ 등에서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미국 연준이 어떻게 금융시장을 움직이는가’를 낱낱이 분석한 경제서 ‘페드 시그널’이 있다.

■ 차례
들어가며_ 경제를 이해하는 특별한 방법

제1장 관세는 어떻게 경제를 움직이는가
제2장 관세전쟁의 현재와 미래
제3장 관세가 불러온 미국 독립전쟁
제4장 위대한 미국인가 가증스러운 관세인가
제5장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관세전쟁
제6장 미국을 포위한 21세기 관세전쟁
제7장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나오며
부록_ 미국 관세 연표
찾아보기

 




관세 이야기


관세전쟁의 현재와 미래

최적 관세율을 찾을 수 있을까

관세를 얼마만큼 올리는 게 이익일까?

가상의 예를 들어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기 전에 중국의 칭다오 기업은 자전거를 100달러에 팔았다고 하자. 미국이 관세를 20% 부과하면 이 자전거의 가격은 $100 X (1+0.20) = $120’로 상승한다.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이 기업의 매출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매출은 그대로 100달러다. 관세에 해당하는 20달러를 미국 정부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황당하다. 아이에게 졸업 선물로 자전거를 선물하려고 예산을 세워놓았는데 가격이 뛰어버렸다. 결국 가격이 비싸진 자전거 구매를 포기하고 100달러 안팎에서 살 수 있는 다른 제품을 알아보게 된다.


칭다오 기업이 미국 내 매출을 유지하려면 판매 가격을 다시 이전 가격으로 내려야 한다. 이 기업은 수출 가격을 기존의 100달러에서 83달러로 내리기로 결정한다. 그래도 생산단가인 40달러를 맞출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좀 더 단호하게 관세율을 60%로 올리기로 한다. 이제 기존의 미국 내 판매가격인 100달러에 맞추려면 칭다오 기업은 수출단가를 62.50달러까지 내려야 한다. 물론 여전히 생산단가보다는 높다. 하지만 수출하면서 여러 제반 비용도 있기 때문에 수출 가능한 금액의 한계에 왔다. 관세를 60%보다 높게 올리면 더 이상 미국에 수출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미국에게는 가장 낮은 가격으로도 중국 기업이 수출을 지속하는 60%가 ‘최적 관세율(optimal tariff rate)’일 수 있다.


최적 관세율 정책이 성공을 거두려면 관세 부과 국가가 수요독점의 지위에 가까워야 한다. A국이 관세를 부과했지만 B국이 손쉽게 다른 나라로 수출선을 돌려버리면 관세 부과는 무용지물이 된다. 여기에 더해 B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부작용이 더 커질 수도 있다. A국과 B국의 덩치가 모두 큰 경우에도 문제가 복잡해진다. 이 경우 A국 관세 부과의 효과는 간단한 게임이론으로 분석할 수 있다. A국과 B국은 활발한 자유무역을 통해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수출하면서 윈윈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A국은 무역수지를 개선하고자 나름의 최적 관세율을 산정해 B국 수출품에 부과하기로 한다. A국은 자신이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B국에게 너무나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에 B국이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일 것이라 판단한다. 만약 A국의 판단대로 B국이 관세를 수용하고 B국 기업이 수출 가격을 내린다면 A국은 이득을 보게 된다. 역으로 B국이 관세를 올리고 A국이 이를 수긍해 A국 기업이 가격을 내리면 B국이 이득을 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느 한쪽이 관세를 부과하면 다른 나라가 보복관세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두 나라 모두 기업이 제살 깎기로 가격을 내려야 하고 두 나라 모두 손해를 보게 된다. 이런 보복의 난타전이 다른 나라로 확산하게 되면 글로벌 경기침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예는 어떤 나라의 경제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지 않는 한 일방적 관세 부과는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계무역기구(WTO)나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을 통해 어느 한 나라의 일방적 관세 부과를 억제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때로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무관세 지대를 만드는 것도 최적 관세율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세계를 협박하는 슈퍼파워 관세맨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

트럼프는 2024년 대선을 치르면서 선거 캠페인 기간 내내 스스로를 ‘관세맨(tariff man)’이라 지칭하면서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관세’라고 수십 차례 말했다. 자신이 집권할 경우 수입관세를 외교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정책을 해결하는 주요 수단으로 사용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산 제품에 60%를 상회하는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 논거로 트럼프는 중국이 부과하는 관세가 미국보다 평균적으로 341%가 높다고 주장했다. 한술 더 떠 유럽연합(EU)의 관세도 미국보다 50% 높으며 다른 나라도 평균적으로 미국보다 관세가 두 배는 더 높다고 말했다. 이렇게 불공평한 관세 때문에 미국의 무역적자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최근 1조 달러에 이르렀고 대중국 무역적자만 3,830억 달러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미국의 제조업은 사라졌고 임금도 낮아졌다고 힐난했다.


이를 정상화하기 위해 트럼프는 두 가지 관세 정책을 언급했다. 우선 대부분의 수입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이를 보편관세(universal tariff, blanket tariff)라 불렀다. 둘째로는 상호관세법(Reciprocal Trade Act)을 통과시켜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어떤 국가든지 미국산 제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도 똑같이 보복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1816년에서 1947년까지 미국은 전체 수입제품의 95%에 관세를 부과했고 평균 관세율은 37%에 달했다고 얘기하며 관세 수입이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를 보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관세를 부과하면 이를 피하기 위해 미국 국내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려는 해외 기업의 미국 직접투자를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다. 과거 자유무역의 수호자로 자처하던 미국이 철저한 보호무역주의 국가로 변모하겠다는 말이었다.


트럼프의 기발한 셈법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5년 4월 2일 초고강도의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를 발표해 전 세계를 경악케 했다.


상대국의 관세 및 무역정책에 맞대응해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이날 트럼프가 정책 설명을 위해 기자회견장에 들고 나온 차트가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는 미국의 교역 상대국이 미국에 부과하고 있는 관세율이 표시돼 있었다. ‘환율 조작과 무역장벽을 포함해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라는 항목을 보면 중국 67%, 유럽연합 39%, 베트남 90%, 대만 64%, 일본 46%, 인도 52%, 한국 50%, 대만 72% 등 50개국이 미국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율이 적혀 있었다.


기자회견을 보는 모든 사람들의 고개가 갸우뚱했다. 오바마 행정부와 체결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이후 한국의 미국에 대한 실질 관세율은 거의 0%로 떨어졌기 때문에 한국이 미국에 5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는 주장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수치는 제 나름의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2024년 미국은 1,315억 달러의 한국산 제품을 수입했는데 655억 달러만 한국에 수출해 660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대미 무역흑자액 660억 달러를 한국의 대미 수출액 1,315억 달러로 나누면 대략 50.2%가 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액 2,954억 달러를 대미 수출액 4,389억 달러로 나누면 67%의 트럼프 관세율이 도출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렇게 산출된 관세율을 절반으로 나누어 상호관세율을 정했다.


한국에는 25%, 중국에는 34%, 유럽연합에는 20%, 일본에는 24%, 베트남에는 46%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각국이 처한 상황이나 고유의 산업 경쟁력 따위는 무시하고 무역흑자를 보았다는 사실이 미국을 불공정하게 대우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 상호관세를 통해 무역역조를 시정하겠다는 의도다. 무역 흑자를 미국 벗겨먹기(rip off)로 바라보는 트럼프 특유의 시각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다. 미국은 각국과의 협상을 통해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성실하게 마련하면 상호관세는 낮춰줄 수 있다는 자세를 보였다.


제2차 미중 관세전쟁

미국에 쉽게 당하지 않는 중국

트럼프는 집권한 지 채 열흘이 지나지 않은 2025년 2월 1일 중국에 대한 관세를 기존 관세에 더해 모든 중국산 제품에 10% 관세 부과를 발표해 제2차 관세전쟁을 시작했다. 중국은 예상했다는 듯 비교적 온건한 대응으로 나왔다. 미국산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원유와 농기계류에 대해 10%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는 3월 4일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중국에 대해 10% 관세 인상을 시행했다. 6일 후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에 10~15% 관세 부과를 발표했다. 4월 9일 트럼프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하여 34%의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이틀 후 중국도 미국산 전제품에 대하여 34% 수입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는 즉시 대중 관세를 104%로 인상했다. 중국도 강경해졌다. 다음 날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84%로 인상했다. 그 다음 날인 4월 11일 미국은 대중 관세를 145%로 올렸고 중국은 맞대응해 대미 관세를 125%로 올렸다. 동시에 중요 광물과 희토류 수출을 중단했다. 미중 양대 경제 강국이 무역전선에서 정면 대치하는 양상이 되었다. 양국의 자존심 싸움까지 겹치면서 관세전쟁은 전면 무역전쟁으로 확산했다.


중국의 초강경 대응은 미국을 당황하게 했다. 아직 희토류 수입선을 제대로 다변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의 수출 통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모터 생산의 원재료인 중국의 희토류 수출 중단이 장기화하면 미국 내 자동차뿐만 아니라 첨단무기 제조가 전면 중단될 수 있다는 충격적 전망이 횡행했다. 중국을 고립시키려다 오히려 미국의 국가 안보와 경제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상황에 내몰렸다. 협상의 대가이자 치킨 게임의 고수인 트럼프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통수 치기의 예가 넘치는 삼국지의 협상 스토리로 단련된 중국의 벼랑 끝 협상 전술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완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들려왔다. 희토류가 상징하는 중국의 숨은 힘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거침없이 내달리던 트럼프의 질주에도 서서히 브레이크가 걸렸다. 4월 22일이 되자 트럼프는 대중 관세가 눈에 띄게 낮아질 것이라면서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대화하고 있다며 자신의 관세 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은 공식적으로 미국과 대화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배짱을 부렸다. 5월이 되어서야 미중은 관세 적용 대상을 약간씩 줄이면서 긴장 강도를 낮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고율의 관세는 여전히 부과되고 있다.


트럼프는 상호관세 부과로 한국을 비롯한 다수의 나라를 협상장으로 불러냈고 성과도 보고 있다고 말하지만 최소 10%의 보편 관세와 철강 등 여러 제품에 대한 관세는 여전히 부과되고 있다. 트럼프는 또한 관세 수입이 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인의 세금을 깎아줄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실제 4월 한 달에만 미국 정부는 174억 달러를 관세로 거둬들였다. 베선트 재무장관은 2025년 한 해 3,000억 달러에서 6,000억 달러 상당의 관세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관세전쟁의 미래와 버블 붕괴

관세 부과의 본격적 후폭풍은 아직 상륙도 하지 않았다. 2025년 4월 초 트럼프 상호관세 부과 후 일어난 채권시장의 발작이 보여주듯 관세 부과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마이런은 2018년 중국에 20% 이상의 관세를 부과했어도 물가는 안정됐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관세의 물가에 대한 영향이 제한된 것은 중국이 적극적으로 타국을 우회해서 미국에 수출하는 편법을 썼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미국에 대한 직접 수출 비중이 크게 줄어든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트럼프의 10% 보편관세와 상호관세로 중국의 우회수출에 대한 효과는 거의 무력화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관세 인상에도 우회수출로 물가 상승이 최소화됐다는 긍정적 효과도 봉쇄됨을 의미한다.


관세 부과가 지속되면 생기는 악영향

트럼프가 지속적으로 관세 부과를 고집할 경우 물가 상승은 필연적이다. 미래로 갈수록 물가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물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 프리미엄이 커져 채권 금리가 오른다. 채권 금리가 오르면 주택 모기지 금리를 포함해 대부분의 대출 금리가 오른다. 금리가 오르면 주가는 폭락한다. 부동산 가격도 마찬가지로 금리 인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자본시장에는 사상 최대의 가격 거품이 형성돼 있다. 미국 전체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80%가량을 차지하는 S&P 500 기업의 수익성과 주가를 비교하는 주가수익비율(PER, Price-to-Earnings Ratio)은 28배에 이른다. 이는 5년 평균 PER인 19~24배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물가상승을 조정해 10년 평균치를 낸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 교수의 계절조정PER(CAPE, Cyclically Adjusted Price-to-Earnings ratio)도 35배로 장기 평균치인 17배의 두 배에 이른다. 주가가 이렇게 고평가된 것은 그간 미국 경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재정지출 증대와 연준의 비둘기적 통화정책이 AI 기술 발전과 맞물려 빅테크를 중심으로 주가 급등을 견인했다. 미래 성장 지속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를 떠받친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고율 관세 부과로 인한 금리 상승은 이 모든 기대감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다.


관세 부과로 물가가 오르면 소비자의 지갑은 얇아진다. 가계가 지출을 줄이면 GDP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소비지출이 감소한다. 기업의 매출이 감소하고 수익성에 치명타가 가해진다. 수익성이 성장성을 더 이상 보장하지 못하면 주가는 급락할 수밖에 없다. 관세 효과가 어느 정도 시간 차를 두고 S&P 500 기업의 수익성에 반영되면 주가는 다시 하락 랠리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투자도 감소한다. 관세는 해외 기업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이 밀접하게 얽혀 있는 만큼 미국 제조 업체의 부품과 원재료 수입 가격도 관세만큼 뛴다. 기업은 악화하는 영업전망으로 인해 장기적 투자에 나서지 못하게 된다. 그나마 트럼프가 마이런이 제시한 대로 낮은 관세에서 출발해 단계적으로 올리는 명확한 일정을 제시하면 기업의 투자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될 수 있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충동적 관세 부과는 불확실성을 최대치로 높이고 있다. 트럼프 주위에 포진한 예스맨들이 트럼프의 충동적 의사결정을 제어하지 못해 불확실성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잘나가는 자동차, 트럼프의 표적이 되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와 기아자동차의 선전은 한국인의 자랑이다. 미국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과거 가장 흔하게 보이던 일본 차를 제치고 디자인이 우수한 현대와 기아차가 더 빈번하게 눈에 띈다. 주변의 미국인에게 물어보아도 칭찬 일색이다. 품질이 떨어져도 가격이 싸서 샀다는 말은 옛날 얘기가 되었다. 품질, 가격, 디자인 모든 면에서 현대와 기아차는 일본뿐만 아니라 독일 등 유럽차의 명성을 밀어내고 있다. 두 자동차 회사가 최근 삼성 반도체의 부진을 만회하면서 수출 한국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2024년 자동차의 대미 수출액은 347억 달러로 사상 최고액을 경신했다. 전년 대비 8% 증가한 수치다. 2022년과 2023년 대미 자동차 수출은 각각 30%, 45% 급증했다.


트럼프가 자동차에 집중하는 이유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산업에 깊은 관심을 표명해 왔다는 사실이다. 2024년 대선 캠페인 기간 경제 공약의 핵심도 자동차산업이었다. 멕시코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멕시코로 이전한 자동차 공장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 자동차산업의 본거지가 선거에서 대표적인 경합주(swing states)이자 중북부 러스트 벨트의 핵심인 미시건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전국 단위 선거에서 승리해 국정을 주도하려면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경합주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데, 그 중 세 곳인 미시건,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이 러스트 벨트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나머지 네 곳은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애리조나, 네바다인데 기독교 신앙이 강한 보수적 지역이라 바이블 벨트 또는 더운 남부라 선 벨트(Sun Belt)라 불린다.


최근 텍사스, 사우스캐롤라이나를 포함한 선 벨트 지역에 자동차와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산업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할 사항이다. 이 지역이 대체로 보수정당의 세력이 강해 규제 장벽이 낮고 노조가 약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승리하기 위해 관세를 통해 자동차산업을 보호하고 해외 자동차 업체의 수입을 막으려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약 400억 달러인 일본보다 약간 적지만 250억 달러인 독일보다도 훨씬 많다. 이런 자동차 무역 역조는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 자동차에 대한 견제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이를 증명하듯 트럼프는 4월 3일 수입 자동차에 대하여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엔진, 변압기, 전자장치 등 자동차 부품에 대해서도 5월 3일 25% 수입관세를 매겼다.


미국은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생산된 자동차와 부품에는 유예 조항을 두어 자동차 관세의 주된 목표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독일인 것을 시사했다. 한국으로서는 반도체의 주도권을 대만에 뺏긴 상태에서 자동차마저 판로가 막힌다면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수출에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2024년 한국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전체의 절반인 143만 대를 판매했다. 대미 자동차 수출액도 전체의 50%를 상회했다.


한국 경제의 생존전략

철저히 계획하고 확실하게 주고받자

과거 미국 정부는 농촌과 러스트 벨트 지역의 유권자의 요구에 부합하기 위하여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로 무역분쟁을 일으키고 통상협상에 임했다. 하지만 통상정책의 기조는 자유무역주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자유무역이 결국 모두에게 득이 된다는 경제이론에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문제는 2025년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분쟁과 관세전쟁의 폭과 깊이는 과거와 차원을 달리한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이전의 누구와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업가답게 주고받는 것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산은 철저하게 액수와 수치에 기반해야 한다고 믿는다. 일론 머스크는 선거 캠페인에 가장 많은 기부액과 시간,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에 그에 걸맞게 집권 초기 제2인자의 권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행정부 요직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자신과 MAGA의 어젠다와 집권 노력에 기여했는가를 바탕으로 평가해 주요 직책을 부여했다.


트럼프가 무역적자액을 분자에 넣어 상호관세율을 계산한 방식에는 어떻게든 무역수지 적자를 해소하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돼 있다. 트럼프에게는 가시적이고 명확한 무역적자 해소책만이 만족할 만한 해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트럼프와의 관세협상은 사실 관세전쟁 해소 담판이 아니라 무역적자 협상이라고 봐야 한다. 향후 무역적자를 해소할 로드맵을 분명히 보여줘야 트럼프는 만족할 것이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미국과 미국 이외 시장을 분리해 대응해야 한다. 미국 시장은 생산을 현지화해 대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미국 외 시장은 한국을 비롯한 다른 생산기지에서 제조하는 방향으로 투자 플랜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미국 현지 투자에 임했으면 기업 문화도 경영 방식도 완전히 현지화 시켜야 한다. 미국인의 정서와 생활 방식은 한국인과 크게 다르다. 미국인은 기본적으로 비난하거나 압박을 가해 무엇인가를 시키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성실하게 일하지만 여유 있고 유머를 잃지 않는 문화가 일상을 차지한다. 경영을 할 때 언제나 쿨한 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평판이 좋아지면 우수한 직원을 채용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인은 특히 친구냐 아니냐에 민감하다. 한국과 같이 식사를 하고 회식을 해서 인간적인 친밀도를 쌓는 문화는 아니지만 가치를 공유하고 이해도가 일치하는지 여부에 신경을 쓴다.


전진을 위한 후퇴 전략

한국은 피를 나눈 혈맹으로서 자유민주적 가치를 공유하고 전제주의 정권에 같이 맞서면서 미국과 영원히 오래할 것이라는 약속(commitment)를 줘야 한다. 미국이 힘든 상황이니 우리도 힘들지만 부담을 나눠 갖겠다고 쿨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약속을 잘 잊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을 모욕한 사람은 반드시 기억하고 보복하는 성격이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와 난타전을 벌여 양보를 얻어낸 중국은 실수를 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허심탄회하게 기분을 맞춰주며 양보할 태세를 보여야 한다. 실제 양보할지 하지 않을지는 차후의 문제다.


하지만 종국적인 해법은 대만 식이어야 한다. 2010년대 삼성전자가 D램 산업에서 그랬듯이, 현재의 TSMC나 엔비디아와 같이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 기술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생산기지는 해외로 보내는 한이 있어도 국내에는 넘보지 않을 R&D 센터를 구축해야 한다. 중국은 연봉의 몇 배를 주면서 삼성 직원을 회유하는데 한국이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KAIST나 서울대 등의 우수한 인재들에게 비전이 명확히 그려지는 장래를 보장해야 한다. 힘이 들어도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곳에 투자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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