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웹이다

   
김재연
ǻ
네시간
   
13000
2010�� 04��



■ 책 소개
이 책은 소셜 웹에 기반한미래에 대한 구상과 그 가치, 의의를 설명한다. 변화의 격랑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시대를 초월해 존재하는 핵심적인 가치와 기준이무엇인지를 알아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의 철학과 비전을 제시한다. 

IT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만능임을 역설하는 맹목적인 주장이 아니다. IT와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네트워크세상, 그 세상을 굳건하게 받치는 소셜 아키텍처의 한계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젊은 논객의 외침이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위한 소셜 웹’이 바로 그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기존 사회 구조가 새롭게 다가오는 소셜 웹 세상에 대한 부진한 적응을 지적하면서 ‘변화’에 대한신선한 정의를 제시한다. “조직이, 문화가, 결국 인간이 바뀌는 변화가 진짜 변화”라는 것이다. 기술이 아무리 급진전해도 그것이 인간의 삶,일의 방식과 무관한 변화라면 무의미하다. 인간을 바탕으로 하는 고민이 전제되지 않은 변화는 건실한 발전을 추구하는 성찰을 막는 장애물일뿐이다.

아직 덜 가시화되었지만, 이미 일어나고 있는변화의 흐름, 즉 기술과 사회, 인간과 기계의 새로운 융합에 따른 소셜 웹 생태계와 그곳의 오픈 컬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디지털 질서는 곧무시할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 저자 김재연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4학년에 다니고 있으며 이중전공으로 정치외교학을 같이공부한다. 홍콩시티대학(City University of Hong Kong) 공공행정학과, 대만의 국립정치대(國立政治大) 외교계에서 교환학생프로그램을 수료했다. 2006년에 머물렀던 홍콩에서 MIT Open Course Ware(공개강의운동)를 알게 되었고, 2007년부터 고려대를비롯해 국내에 MIT OCW 론칭 프로젝트에 서비스 기획과 관련해 일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IT 애널리스트로서 ‘비전 디자이너(Vision Designer)’라는 필명으로 IT와사회 전문 인터넷신문인 <블로터닷넷(Bloter.net)&&에 글을 쓰고 있다. 동시에 네티즌들의 온라인 실시간 협업을 통해 빈곤문제에 관한 공공지식을 생산하여 해당 이슈에 대한 사회인식을 바꾸기 위한 공익 NGO인 ‘세계화와 빈곤 문제 공공인식 프로젝트’에서 온라인아카이브 구축 프로젝트 디렉터를 거쳐 빈곤 문제 자료 구축 작업에 기여하고 있다. 

소셜 웹을 활용한 정책·경영에 대한 대안들이 각종 논문 및 기획 공모전에 당선되어,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위원장(2007), 기획재정부 장관(2009), 법무부 장관(2009), 한국경제신문사 사장(2009),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 이사장(2009),그리고 서울시장(2009) 등이 수여하는 상을 받은 바 있다. 

■ 감수 윤종수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로 현재 Creative Commons KoreaProject Lead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전 사단법인 한국정보학회 간사, 대법원 지적재산권커뮤니티 간사, 지적재산권 분야 국내규범연구반총무로 활동 중이다.

■차례
추천사 - 소셜 웹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젊은 논객의 힘찬 주장
프롤로그 - 버블의 성을 깨고 비전의바다로

PART 1 소셜 웹이 오고있다
01 기술에서 사회로, 기계에서 인간으로
02 웹 2.0에서 소셜 웹으로
03 한국 웹 2.0에 대한불편한 진실
04 소셜 웹 시대의 패러다임, "창조성 혁명"
05 창조성의 혁명을 위한 소셜아키텍처

PART 2 소셜 웹은 이것이다르다
06 소셜 웹 시대에 통하는 리더십
07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시작하는 혁신
08 뱅크 오브 아메리카,유니클로, 구글이 던지는 메시지

PART3 소셜 웹이 바꾸는 세상
09 금융개혁, 저소득층에서 시작하라
10 소셜 웹이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있을까?
11 소셜 웹 환경에서의 학습 혁명
12 오픈컬처와 다음 사회

에필로그 - 평범한 사람도 탁월하게 공헌할 수 있는 세상

 




소셜 웹이다

PART 1 소셜 웹이 오고 있다
기술에서 사회로, 기계에서 인간으로

- IT의 미래는 인간이고 문화고 사회다
2010년 전반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스마트폰 열풍이 불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 국내 출시 두 달 만에 30만 대를 팔았고, 지난해 10월 출시된 삼성의 옴니아2도 이미 누적 판매 대수가 30만 대를 넘어섰다. 언론은 스마트폰을 과거 PC의 등장과 비견하면서 시장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큰 파급 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애플과 구글이 각각 자신의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으로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이동통신계의 전통적 강호였던 노키아, 소니에릭슨, 모토롤라 등의 실적 부실을 지적하면서 한국의 삼성, LG 등의 혁명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혁신의 방향성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스마트폰의 열풍을 우리나라가 주도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인가? 일명 IT 강국이라던 한국 IT가 잠시 방심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동안 반도체 등 하드웨어 영역에서는 선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외국업체에 로열티 주기에 급급하고, 콘텐츠는 아직도 절대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진실 때문인가?


나는 후자에 더 큰 무게를 두겠다. 전자는 IT를 여전히 기계, 장치, 기술로만 보는 협소한 관점에 고립되어 있다. 업그레이드가 늦었으니 우리도 연구개발 비용을 더 늘려서 고삐를 당겨 추월당한 것을 따라잡아보자는 식이다. 그러나 만약 기술 외의 부분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이 같은 관점은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없다. 반면에 후자는 IT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새로운 시대를 이끌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인프라로 보고 있다. 거기에는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 기술의 향상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조직, 문화, 인간에 대한 고민과 새로운 비전을 향한 노력 등이 포함된다.


IT는 단순한 전자제품이 아니며 사회이다. 그것이 내가 후자의 주장을, 즉 IT를 사회문화적으로 접근하여 현재 한국산업의 위기에 대한 대책 마련을 모색하는 방안을 지지한 까닭이다. IT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고 비전을 제시하려면 IT 앞에 생략되어 있는 글자 ‘소셜’을 제대로 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문화적 측면을 볼 때 소셜 웹으로서,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로서, 문화로서, 조직으로서, 인간으로서의 IT가 보이고, 우리는 정보화 혁명, 지식기반경제 등의 새로운 붐에 필요한 진정한 사회적 인프라로서의 IT의 잠재력을 살릴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내고 구체화해낼 수 있다.


스마트폰 열풍을 통해서도 이를 감지할 수 있다. 최근의 현상은 코드가 기술이 아니라 사회라는 분명한 교훈을 전달해준다. 이러한 변화는, 휴대폰을 휴대폰으로만 생각했다면, 그래서 이 기기를 얼마나 기술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느냐는 부분에서만 생각했다면 나올 수 없는 답이었다. 그러나 휴대폰을 ‘휴대폰이 아닌 것’으로 생각할 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연결성, 창조성을 향상시키고 그래서 그들이 집단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교환하는 데 핵심이 될 수 있느냐를 고민할 때 나올 수 있는 답이다.


웹 2.0에서 소셜 웹으로
-변화의 주체는 언제나 인간이다
IT는 문화고, 조직이고, 인간이다. 이를 깨닫기 전의 IT는 그냥 기계다. 그것이 인간에게 도움이 될 때, 인간의 삶에 변화가 될 때 의미를 갖고 영향력이 생긴다. 따라서 문제는 그 기계가 아니라 그 기계를 움직이는 감각, 인간의 철학과 비전에 있다.


피터 드러커는 조직을 이해하는 틀이라고는 국가, 정당 등 정치학적 논의가 거의 전부였던 시대, 경제활동에 대해서는 상품과 돈의 움직임에 관한 경제학이 거의 모든 것이었던 때, 새롭게 등장하는 회사라는 조직과 그 회사를 움직이는 결정권자인 기업가에 주목한 선구자다. 그는 오랜 정치 활동, 경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바탕으로 회사의 조직과 기업가의 역할, 책임에 관한 많은 책을 썼고, 95년의 생애를 회사의 생산성을 활용한 조직들이 사회에 더 생산적으로 공헌할 수 있도록 컨설팅과 자문하는 일에 썼다. 그래서 그는 “경영을 만든 사람”이라 불렸고 첫 손가락에 꼽히는 미래학자였으며 컨설팅이라는 직업을 정의하고 발전시킨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저 문필가로 불리기를 원했고, 자신의 연구는 모두 사회의 조화로운 질서에 관한 것, 사회생태학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지식기반경제, 지식노동자라는 말을 만들어서 유행시킨 사람이 드러커다. 즉, 웹 2.0 등의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에 지식을 어떻게 생산하고 유통하고 재생산할 것인지의 문제가 앞으로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간파하고 지적한 것이 드러커였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것은 피터 드러커가 닷컴버블의 절정에서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앞으로의 길”을 보면 드러커 본인은 IT 붐이나 그 전의 PC 혁명에 대해서 시큰둥했다는 것이다. 그는 기계의 현란한 발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기계가 아니라 기계에 관계된 지식이, 그리고 그 주인인 인간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계는 그냥 기계일 뿐이다. 따라서 기계의 발전이 아무리 감명 깊더라도 그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기계의 진보가 문제가 아니라 기계를 둘러싼 사람들의 철학과 비전이, 조직이,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사람들이 관계 맺고 일하는 방식에 근본적이고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변혁이 일어난다.


하드웨어 성능이 발전해서 CPU와 하드디스크가 업그레이드되고 그에 맞물려 운영체제가 무거워지고 각종 응용 프로그램이 더 고성능을 요구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과 만들어지는 콘텐츠에 혁명적인 전환을 일으키는가? 그 대답이 기계의 업그레이드보다 더 중요하다. 기계가 얼마나 앞서가느냐가 아니라 그 기계를 쓰는 사람들의 생산성, 창조성에 얼마나 변화가 일어났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IT는 어떨까? 우리 IT엔 문화가 있고, 조직이 있고, 인간이 있는 것일까?


PART 2 소셜 웹은 이것이 다르다
소셜 웹 시대에 통하는 리더십
-리더가 없는 곳에 리더십이 있다?

리눅스, 위키피디아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 이용자들의 네트워크에 의한 실시간 협업, 그 집단적인 창조의 힘 덕분이다. 여기서의 ‘집단’은 기존의 집단과 어떤 차별성을 가질까? 나아가 조직을 창조하고 지속시키는 리더십과는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까?


오프라인 집단이 가지는 분명한 특징 중 하나는 ‘경계성’이다. 가족은 그 가족의 구성원이 혈연으로 결정되어 있다. 학교는 그 학교의 재학생, 졸업생, 교직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회사도 정직원, 비정규 직원 등의 구분이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소속원과 비소속원의 구별이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적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국적에 따라 내국인과 외국인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오프라인에서 어떤 집단에 속한다는 것은 때로는 다른 집단에 속하지 못하는 배타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성격들이 웹 생태계의 커뮤니티 구성원들에게는 매우 약하게 존재한다. 물론 어떤 커뮤니티든 그만의 취향이 있을 것이므로 한 커뮤니티 내의 사람들은 다른 커뮤니티 내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을 것이긴 하지만 오프라인에서만큼 분명한 경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웹 생태계에서 한 커뮤니티 내의 구성원이라는 것이 오프라인에서처럼 필연적으로 다른 커뮤니티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배제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과의 위버 교수의 2004년 발표작 『오픈소스의 성공』을 보면 알 수 있다. 소유의 문제에 있어서 오프라인 환경은 배타적이어야 말이 된다. 내가 손에 든 천 원이 내 것이면서 남의 것일 수는 없다. 그러한 배타성은 소유에 기반한 권력, 이윤 관계, 그리고 그 관계의 맥락에서 설명되는 집단의 형성과 유지에도 일관된 성격을 보인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소유라는 것이 꼭 독점적일 수는 없다. 오히려 분산성을 통해서 전체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태어난, 정보 생태계로서의 생명력을 공유성에 둔 인터넷의 속성을 생각해볼 때, 그곳에서의 소유권은 배타성보다는 분산성이 더 자연스럽다. 따라서 분산성에 기반한 온라인 이용자들의 네트워크 관계 형성은 이전보다 배타적인 성격이 훨씬 더 약화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웹 생태계의 커뮤니티들은 형체라는 것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고, 수시로 움직이며, 그 규모의 변화도 시시각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계 없는 조직에도 리더가 존재하는가? 리더십이란 것이 필요한가? 이런 의문이 드는 이유는 이 조직이 마치 리더가 필요 없다는 듯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누가 그러한 창조성을 명령하고 지시한단 말인가? 그러한 사람이 없다면 과연 이 조직에도 리더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러나 어쨌든 처음 그 일을 기획하고 시작한 사람들은 있다. 리눅스는 리눅스 토발즈라는 핀란드의 괴짜 프로그래머가 처음 그런 대안 운영체제를 만든 데서 시작됐다. 사실 그 운영체제도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위키피디아는 인터넷에 대한 상상력이 풍부한 지미 웨일즈라는 증권 중개인이 처음 만들었다. 그는 지금도 그 일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만약 아무도 처음 ‘리눅스’를, ‘위키피디아’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리눅스도, 위키피디아도 있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적어도 이 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로 오늘날 웹 생태계에서 대표적인 대규모 협업의 사례들이 만들어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렇다면 처음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그들을 리더라고 부를 수 있을까? 몇 줄 안 되는 이메일로 자기가 만든 운영체제의 소스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사비를 조금 투자해서 웹 사이트를 만들고 무료백과사전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대수로우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웹 생태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많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저 잠시 반짝이는 빛으로 사라지지만 리눅스와 위키피디아는 살아남아 번성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그들의 존재와, 혹은 그들에게 리더십이 있다면 그것과는 또 어떻게 관계되는가? 한번쯤은 생각해볼 이슈다.


-네트워크를 이끄는 리더십, 리눅스와 구글에서 찾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전통적인 리더십에 대한 이해의 틀로 과연 이들의 리더십을 잡아내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다. 가정에서 통용되는 리더십과 회사에서 필수적인 리더십에는 공통점이 있지만 다른 점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끌어야 할 조직의 차이 때문이다. 회사의 영업 마인드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마음과는 다를 것이다. 따라서 네트워크 환경에서의 리더십도 오프라인 조직이라는 차이 때문에 분명 다른 특성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그 특성의 차이를 무시하고 우리가 찾고자 하는 소셜 웹 시대의 리더들의 특성, 그들의 리더십을 정의할 수 있을까? 대답은 ‘상식적으로 아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명령하고 지시하느냐라는 관점에서는 리더를 찾을 수 없었다. 온라인 네트워크 조직은 지휘와 통제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직의 분명한 차이를 생각하면서 소셜 웹 시대의 리더십을 생각해봐야 한다.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 먼저 네트워크 조직의 리더들이 오프라인 조직과 공유하지 않는 특징부터 생각해보는 것이다. 결과인 특징에서부터 거슬러올라가 원인인 조직의 차를 발견하면 차이점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리눅스 토발즈와 지미 웨일즈의 이름이 해당 네트워크 내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목하고 싶다. 한 회사에서 CEO의 존재감이 분명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네트워크 조직에서는 리더의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단순히 존재감이 없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역할이 없다고 보아야 하나? 아니면 분명히 있기는 있으나 해당 조직의 구조상 잘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일단 다른 조직들, 예컨대 정부 행정망이나 기업 유통망의 리더에게 존재감이 있는 이유는 그들이 권력과 이윤의 상하관계에 따른 수식적 구조를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령과 지휘, 통제와 위엄에 따라서 운영된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그와 같은 위계질서를 따지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권력과 이윤의 상하관계를 만들려고 한다면 네트워크의 조직 구성원들은, ‘경계’가 약하기 때문에 금방 그 조직 내에서 탈출하고 만다.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했다가 몰락했던 프리챌의 무수한 커뮤니티들을 생각해보자. 네트워크는 행정망, 유통망에 존재하는 조직들과는 다르게 ‘수평적 구조’를 기본적 특성으로 가지고 있다.


아주 쉽게 정의해보면 리더십은 ‘따르게 만드는 힘’이다. 그렇다면 네트워크 조직은 어떻게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권력기관에서는 정치적 힘에 의해서, 상업기관에서는 상업적 이윤에 의해서 권력과 돈 때문에 윗사람의 말에 추종해야 한다. 그 외에 많은 이유들도 있겠지만 이것이 조직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해 생각해볼 수 있는 리더십의 기본적인 성격이다. 그러나 그런 힘이 네트워크 조직에는 없다. 수직적 상하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조직은 수평적 특성을 유지하면서 발전한다. 그렇다면 네트워크 조직의 리더는 어떻게 그가 원하는 것을 참여자들이 하도록 만드는가?


참여자들의 실제 동기에서 생각해보자. 리눅스 이용자들은 왜 리눅스를 이용할까? 그들은 리눅스를 개선하는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일까? 위키피디아에 기고를 하는 사람들은 권력도 돈도 못 얻는데 도대체 왜 그 일을 할까? 기본적인 답은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네트워크에서는 ‘오픈’이 ‘질서’이기 때문이다. 소유의 개념이 ‘독점’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분산’에 의해 존재하고, 그 분산력에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 네트워크다. 그곳에서는 한계생산의 비용이, 지식과 정보의 복사 비용이 ‘0’이다.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가격은 장기적으로 한계생산의 비용에 수렴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네트워크에서는 ‘0의 가격’이 지배적 감수성이다. 제로의 감수성에 의해서 가격은 배제되어 잇지만 대신에 이곳에서는 ‘상호 인정’이라는 가치 중심의 교환이 오간다. 바로 이것이 답이다. 이 답으로 권력도 이윤도 없이 성립되는 관계와 참여를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호기심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용자는 왜 특정한 커뮤니티를 택하는 것일까? 그것은 오픈의 질서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특정한 커뮤니티, 그중에서 리눅스, 위키피디아를 택한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이 질문의 대답에서 네트워크 조직의 리더십의 정체를 생각해보자.


한마디로 ‘사명’과 ‘목적’ 때문이다. 리눅스를 리눅스답게, 위키피디아를 위키피디아답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정체성’이다. 리눅스는 독점적인 MS의 운영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출발한 것이고, 위키피디아는 고가의 브리태커니에 대한 대안으로서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기본적인 성격을 규정하는 그들이 만들어진 사명과 목적이다. 이것이 이들을 고유한 커뮤니티로 만든다.


PART 3 소셜 웹이 바꾸는 세상
소셜 웹 환경에서의 학습 혁명
-군사부일체의 해체가 교육의 종말은 아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다. 군주와 아버지와 스승의 은혜가 같다는 뜻이다. 이것은 과거 사회에서 그들이 인정받았던 전통적 지위와 권위를 의미한다. 그 전통적 지혜와 권위의 출처는 무엇일까? 우리가 수천 년 동안 답습해온 암기 위주 학습의 전통에서 스승이란 그야말로 암기의 완성이었다. 그는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을 이미 알고 그것을 머릿속에 저장해놓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시 그것을 나에게 전달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다소 과장이 있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것이 지금까지 교사의 주된 역할이었다. 교사는 해당 과목의 교과서를 섭렵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교수법이었으며, 그에 의해서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소셜 웹 시대에는 가장 큰 스승은 인터넷이 되어야 함이 옳을 것이다. 그가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많은 사람에게 전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배운다는 것의 의미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에게 사실이라는 것, 그것을 암기해서 머릿속에 가지고 다니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검색 몇 번으로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차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의식하는 부분은 그러한 검색력으로 결코 보충할 수 없는 통찰력, 창조성과 관련된 영역이다.


이러한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통적인 교육 방식의 목적 달성의 효과와 방법상의 효율이 모두 떨어짐에 따라 전통이 형성한 권위마저 추락한다고 해서 그것이 교육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군사부일체 중에서 군과 부는 이미 같은 전철을 밟았다. 왕은 사라졌고 가부장제는 해체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와 역할, 기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과거의 군주와 가부장제에서 몰락하였으나 우리는 군주독재가 아닌 민주지도자에 의한 평등한 시민들 간의 자유로운 정치 활동, 가족 구성원의 의견 수렴과 상호 소통을 통한 가정 운영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됐다. 즉, 과거에서 내려온 독점적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로서의 학교의 기능과 역할이 지식을 공유하는 생태계로서의 인터넷의 등장과 그것에 접속할 수 있는 디지털 기기의 보급으로 인해서 제한된다고 할지라도 전망이 꼭 어두운 것은 아니다. 과거가 해체되면서 더 나은 미래가 열릴 수 있다. 교육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 교육제도도 군주제나 가부장제만큼이나 시대적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내부적 모순이 존재하는 제도다. 산업시대 직공을 키우는 모델에서 출발한 근대 교육, 그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한 현대 교육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공장의 직공에게 주어진 역할과 기능은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어진 직무에 대한 정확성이 중요하고, 그것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이 진행되어왔다.


사실 그러한 이유로 그동안 산업발전의 과정에서 우리 교육이 암기를 강요하고 집중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훨씬 더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유기적인 사고를 하는 인재를 원한다. 인간에게 기계의 정확성을 요구하던 시대에서 더 인간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원하는 시대로 변화해왔다. 현대사회에 수없이 새롭고 복잡한 문제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와 테러리즘, 금융 위기의 해법은 교과서에 없다. 지금 인류가 지구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상상력, 문제 해결력을 절실하게 요구하는 때에 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피부로 그것을 느끼고 이 사회는 독창적인 개성을 가진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공장에서 제품 만들듯이 똑같이 만들어지는 우리 학교의 아이들이 그와 같은 인재로 자라날 수 있을까? 이전 산업시대의 교육이 우리에게 남긴 찌꺼기들을 떨어버리는 것은 더 인간적인 교육으로,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 특성인 창의력에 맞는 학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다.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군사부일체의 해체, 독점적 지식과 그 지식의 전달에 의한 교육의 끝은 교육 자체의 끝이 아니라, 산업시대의 직공을 위한 교육이 막을 내리고 보편적 지식의 창조적 활용, 그를 통한 문제 해결을 학습에 적극적으로 포함하기 위해서 전진해야 할 시기에 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셜 웹 학습 혁명, 지구촌 리더로 키워라
실제로 그 기회는 MIT 미디어 랩(Media Lab)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 미켈 레스닉(Mitchel Resnick), 저스틴 캐셀(Justine Cassel)이 유네스코에 제안한 의견서인 <학습 혁명을 창조하자(Creating a Learning Revolution)>에서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적극적인 학습을 통한 실제적인 문제 해결력, 지구적인 차원의 협업 능력을 중심으로 한 학습의 혁명으로 비전화되어 있다. 저자들은 세계 평화, 건강한 삶, 경제 개발, 지구촌의 지속 가능성 등의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장래의 교육받고 창조적인 인구로서 어린이가 가장 중요한 자원임을 강조하며 본문을 시작한다. 나아가 저자들은 농경?의약?산업 등 다른 많은 분야에서는 이미 기술 혁신이 사회 혁신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전반적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학습 방향, 방법 등에 있어서는 큰 변화가 없음을 지적한다. 그와 같은 미래의 목적과 현실의 이해를 바탕으로 저자들이 제시하는 교육 비전은 디지털 기기의 도움을 바탕으로 한 세 가지 핵심 요소를 중점에 두고 전개된다.


첫째로 그 같은 교육 비전이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 스스로 학습하는 입장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제시한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유아기 때부터 사용하는 가장 인간적인 학습 방법인 동시에 아이들에게 배움의 호기심과 그 실용성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는 아이들이 직접 탐험하고 표현하고 경험하는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 둘째는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교과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영역이다. 아이들은 강의실에 멍하니 앉아서 필기를 하는 대신에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그 결과물로 평가받게 된다. 그것을 통해서 어른들의 사고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 셋째는 아이들이 인터넷이라는 IT 연결성을 통해 전 세계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배우면서 “지식 창조 커뮤니티(Knowledge-building communities)”를 건설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절차를 통해서 다문화, 다언어, 다양한 작업의 방식들을 학습해 나갈 수 있다. 이것은 장차 그들이 자라서 세계인들과 함께 지구적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중요한 선행 학습이 될 것이다.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 인간이 기계의 효율성을 따라가는 교육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창조성을 극대화시켜 미래 사회에 등장하는 각종 지구적 위기들을 해결할 수 있는 인재로 양성하고자 하는 교육은 이미 실험으로 행동에 옮겨져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단순한 비전으로만 머물고 있지 않다는 데 더 중요한 시사점이 있는 것이다.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