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끕 언어

   
권희린
ǻ
네시간
   
15000
2013�� 06��



■ 책 소개
비속어, 알고 쓰면 자연스럽게 덜 쓰게된다! 

국어 교사 겸 사서 교사가 왜 비속어를 쓰면 안 되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여, 쓰려면 제대로 알고쓰자는 결론을 얻어 쓴 책이다. ‘생생한 경험과 사례, 저자의 맛깔나는 글발이 더해져 비속어에 대한 신선한 사고전환을 가능케 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70여 개의 비속어는 우리 일상의언어처럼 자리잡은 단어들로, 사전적 의미를 따르기보다 저자만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알려준다. 또한 구체적으로 낱낱이 파헤쳐지는 비속어의 어원과의미 등은 알고 나면 적잖은 충격을 던져주기도 한다. 교육 현장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공감이 갈 만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비속어의 세계로안내한다. 알고 쓰면 자연스레 덜 쓰게 되는 효과를 노렸다. 쓰지 않았으면 하는 비속어에는 대체어도 함께 담았다.&nbsp&

■ 저자권희린&nbsp&&nbsp&&nbsp&&nbsp&&nbsp& 
국어 교사 겸 사서 교사로서, 사회적 위치와 체면을 고려하여비속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예고 없이 등장하시는 그분 덕분에 가끔은 식은땀을 흘린다. 거친 욕설로 너저분한 교육현장을바로잡겠다며 권다르크로 돌변해 혁명의 ‘5분 비속어 수업’을 시작했다. 반드시 버려야 할 비속어도 있지만 우리네 인생을 말랑말랑하고 유쾌하게만들어주는 비속어도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B끕 언어’라는 격상된 명칭을 하사했다. 
■ 차례
프롤로그: 왜 비속어를 쓰면 안 돼요?

Part 1 또 다른 나, B끕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다 - 좆같다 
개기는 데에도 나름의 스타일이 있다 - 개기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 띠껍다 
인간들의 또 다른 이름 - 개새끼 
집이 정말 가난하다면 가슴이 아플것이다 - 거지같다 
이 기분을 만들어내는 것은 내 스스로다 - 개떡같다 
뜨거운 감자 - 빼도 박도 못하다 
진실이 드러나는순간 - 구리다 
지구인이 아닌 화성인처럼 느껴지는 나 - 뻘쭘하다 
과업으로 여기는 순간 인생은 불행해진다 - 뽀록 
희망,긍정의 단어 - 막장 
자기 자신에게 감동하는 삶 - 자뻑 
타인을 너무 많이 의식하는 것이다 - 쪽팔리다 
못하고, 하고 싶지않고, 가장 스트레스가 되는 것 - 쫄다 
인간관계는 오야붕과 꼬붕의 관계로 맺어져 있다 - 꼬붕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잘한다- 까먹다 
품격이 떨어지다 - 후지다 

Part 2 까스활명수, 속이 뻥 뚫리는 
허세와 자기방어가 함께 이루어진다 - 구라
모두 깝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 깝치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 - 빡치다 
살아가면서 가끔은 필요한 순간이 온다 -뺑끼치다 
싸고 맛있는 노가리의 전락 - 노가리 까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 땡땡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만든다 - 뒤로호박씨를 까다 
다 이유가 있다 - 쌩까다 
이유가 있다? - 뒷다마 
일상에서 우연히 얻게 되는 행운 - 땡잡다 
갈구는데도 스타일이 있다 - 갈구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 쪼개다 
명예를 되찾았아야 한다 - 엿 먹어라 
차마 계속 볼수가 없다 - 주접 
가끔 조금은 슬프다 - 꺼져 
저마다의 꼴이 있고 그에 맞는 꼴값을 한다 - 꼴값 
사회의 불합리한 것들을고치고자 하는 첫 번째 단계 - 꼰지르다 
어린 날의 치기 - 꼬라보다 
성공의 어머니다 - 삑사리 
품고 뛰면 명품, 머리에쓰고 가면 짝퉁이다 - 짝퉁 

Part 3양날의 칼, 친근함과 불쾌함 사이 
사실 쟤가 없어서 말인데 - 씹다 
나는 한번이라도 뜨거웠을까 - 빠순이
자존심 때문에 멀쩡한 사람을 우리는 이렇게 만든다 - 찐따 
맨 정신의 역습 - 꽐라 
순수하고 따듯하다 - 바보
세상의 잣대를 등지고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 얼간이 
누군가의 쌍년으로 기억되는 게 낫다 - 쌍년 
우리에게 지금 당장필요한 것은 바로 쓸개다 - 쓸개 빠진 놈 
품위가 떨어진다 - 양아치 
지나친 애국심이 낳은 말 - 쪽바리 
약자들에게들러붙어서 약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 시다바리 
개성과 싸가지는 한 끗 차이 - 싸가지 
우리도 곧 된다 - 할망구 
좋을때다 - 쥐뿔도 모르는 게 
주늑 들 필요 없다 - 땜빵 
보통사람들보다 창의적이고 개성이 강할 뿐이다 - 또라이

Part 4 과유불급, 적절하면 윤활유과하면 정서적 환경 호르몬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행위다 - 지랄 
다른 것으로 포장하기 힘들다 - 씨발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극단적으로 만드는 뭔가가 있다 - 존나 
결핍이 가져올 또 다른 기회 - 젠장 
화가 나 감정을 주체하지못하겠다 - 육시랄 
순간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린다 - 염병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건방진 단어 - 쩐다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 - 빡세다 
남들의 시선에 예민한 우리들 - 뽀대난다 
간지의 완성은 자신감이다 - 간지나다
통제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패기가 넘치고 용기가 있다 - 간땡이가 붓다 
유전된다 - 개차반 
융통성 없는 현실 - 얄짤없다
용서가 되는 것이 있고 용서가 안 되는 것이 있다 - 꼽사리 

에필로그: 만약 세상에 비속어가 없다면? 





B끕 언어


또 다른 나 B끕

뜨거운 감자 - 빼도 박도 못하다

어원

간통을 하려는 남자와 여자가 막 사랑을 나누려는 순간 여자의 남편이 들이닥쳤다. 그러면 하던 행동을 그대로 하지도, 그만두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모습을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순간을 그대로 묘사하며 "빼도 박도 못한다"고 말한다.


살아보고 결정한다?

얼마 전에 혼인신고를 하려고 구청에 갔다. 결혼식은 치렀지만 서류에 도장을 찍어줘야 진짜 부부라는 의식과 책임감, 의무감, 이런 것이 생길 것 같아서 얼른 해치워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왜 이렇게 혼인신고를 빨리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공공연하게 "살아보고 혼인신고 해!"라며 나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해주는 지인도 있었다. 혼인신고 안 하고 살아보는 것. 이게 요즘 신혼부부들 트렌드란다. 이거야말로 완전한 컬처 쇼크다.


예전에 동거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유행한 것처럼 요즈음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신혼부부들이 많다고 한다. 혼인신고부터 하면 빼도 박도 못하니 우선 같이 살아보고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동거나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 이혼율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이혼녀, 이혼남 딱지는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꼬리표다. 그러니 괜히 한때의 불같은 사랑에 목매서 빼도 박도 못하는 짓 하지 말고 쿨하게 살아보고 결정하자는 논리다. 물건 사서 써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얼른 반품해버리듯, 인륜지대사인 결혼도 혼인신고 안 하고 좀 살아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애먼 증거 남기지 말고 빠이빠이 하고 서로 갈 길 가자는 것. 굉장히 효율적(?)인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미가 없는 이런 가벼운 사고를 가진 사회에 정나미가 떨어진다.


결혼을 하고 나서 살아보니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이혼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이혼을, 불행한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아서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


대체어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빼도 박도 못하다는 말은 남녀의 성행위에서 그 어원을 찾는다. 워낙 속된 표현이라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말인데 우리는 관용구처럼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한다.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른 상태로 말이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생동감 있게 전하고자 이런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부끄럽고 낯 뜨거운 표현이니 한자어를 써서 진퇴양난이라고 유식해 보이게 말하든지, 순 우리말을 써서 옴짝달싹 못하다고 말하든지, 있는 그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품격이 떨어지다 - 후지다

어원

품질이나 품격이나 상태나 등급이나 내용의 정도가 평균 이하라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후지다에서 후(後)는 뒤떨어지거나 뒤지거나 할 때 쓰는 한자로, 물건 외에도 여러 가지 경우에 적용되는 저품질, 저품격을 나타내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도리, 품격이 부족한 사람을 표현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포기는 후지다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나는 무던히도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대학에 실패해서 남들보다 1년 늦게 대학생활을 시작한 것에서부터 친구들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데 나는 늘 백수에 도서관 신세였던 점. 주변에서는 늘 밝은 나의 모습을 보며 걱정 없이 산다며 부러워했었지만 늘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늦는 것에 대해 낙오자라는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이때는 인생이 100미터 달리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스타트가 늦은 나의 인생이 늘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절망하곤 했다. 그러나 조금(?) 살아보니 인생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닌, 장거리 달리기인 것 같다. 단지 각자의 출발점이 다를 뿐인 것이다. 지금 주변을 돌아보면 늦게 출발했어도 남들보다 훨씬 재밌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멋지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남들보다 빨리 출발하기는 했지만 지금의 자리에서 머뭇거리며 주춤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자기의 위치가 남보다 뒤처졌다고 생각되더라도 언젠가 곡선주로에서 일직선상 혹은 그 앞으로 서게 될 날이 올 것이니 절망은 버리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젊음 자체가 기회다. 몇 번의 실패로 절망하고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실패한 인생보다 더 후진 인생이 아닐까?


대체어 - 떨어지다, 좋지 않다

물건이나 그 외의 대상에게 말할 때에는 품질이 떨어지다라고 대체해서 쓸 수 있다.

그 컴퓨터 되게 후져! → 그 컴퓨터 되게 품질이 떨어져!

사람에게 말할 때에는 품격이 떨어지다로 대체해서 쓸 수 있다.

그 사람 말투가 좀 후지더라! → 그 사람 말투가 좀 품격이 떨어지더라!



까스활명수, 속이 뻥 뚫리는

살아가면서 가끔은 필요한 순간이 온다 - 뺑끼치다

어원

뺑끼는 페인트를 일본식으로 발음하는 말로, 벽에 페인트를 칠하면 그 아래에 것은 덮여서 보이지 않는 것처럼 진실을 속이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겉으로 화려한 말들을 동원해서 남을 속이는 것이 꼭 페인트의 화려한 색깔로 원래의 것을 덮어버리는 것이 비슷하다고 해서 남들을 속인다는 의미로 쓸 때 자주 쓴다.


더 잘나 보이고 싶은, 척하고 싶은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많은 뺑끼를 치며 인생을 살아간다.


어렸을 때에는 체육 시간에 달리기가 하기 싫어 날쌘 녀석이 두 바퀴 돌 때 나는 한 바퀴 돌면서 거기에 묻어가려는 뺑끼를 치기도 했고, 청소 시간에는 청소하기는 싫고 선생님한테 혼나기도 싫어서 빗자루만 들고 서성거리며 선생님이 볼 때만 청소를 하는 남들이 보기엔 얄미운 뺑끼를 치기도 했다. 일어 선생님이 가르치던 엉터리 국사 수업이 재미도 없고 듣기 싫었지만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서 머릿속으로는 딴생각을 하면서 칠판에서 눈을 떼지 않고 수업 잘 듣는 척 뺑끼를 치기도 했고 밀려오는 택배에 엄마의 잔소리가 무서워 받은 택배를 보일러실과 소화전에 넣어두는 뺑끼를 치기도 했다.


어른이 되었다고 예외는 아니다. 업무의 연장이라고 불리는 지긋지긋한 술자리에서 술을 먹기 싫어서 테이블 아래를 술 바다로 만들거나 주당 근처에는 앉지 않는 뺑끼를 부리기도 하고, 야근을 해야 할 때에는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는 제사나 집안 행사로 뺑끼를 치며 그 자리를 유유히 벗어난다. 우리가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어서 뺑끼를 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남들 앞에서 더 잘나 보이고 싶은, 척하고 싶은 욕구가 이렇게 습관적으로 뺑끼치게 만들 뿐인 것이다. 달리기를 잘 하는 척, 청소를 성실히 하는 척, 수업을 잘 듣는 척, 술자리 분위기를 잘 맞추는 척, 다른 사람들에게 실제 나보다 훨씬 과대평가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 그것이 바로 뺑끼인 것이다. 게다가 술 못 마신다고 빼는 것보다 분위기 망치지 않으면서 몰래 술을 버리는 것이, 약속 있다고 야근 못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집안 일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둥글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 어쩌면 뺑끼는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마찰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하나의 장치가 아닐까?


대체어 - 요령을 피우다, 빠져나가다

요령을 피우다, 빠져나가다는 단어로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다. 페인트를 일본어로 발음하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 사용하는데다가 뺑끼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뺑끼(페인트칠)의 속성을 가지고 행동을 묘사하는 말이기 때문에 정확한 의미의 확인이 쉽지 않다. 구체적인 언어만이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다 이유가 있다 - 쌩까다

어원

쌩의 의미에서 그 어원을 찾는다. 바람이 세차게 스쳐 지나가는 소리나 사람이나 물체가 바람을 일으킬 만큼 빠르게 움직일 때 나는 소리가 쌩인데 바로 쌩까다는 말은 쌩(빠르게 지나가는 소리)을 까다(드러내다)의 합성어로 누군가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행동, 즉 무시하거나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절교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야, 쌩까고 그냥 가자!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선생님을 쌩까며 수업을 듣지 않고 외면하는 것도 굴욕이지만 교사로서 조금 더 처절해지는 순간이 있다. 길 저편에서 걸어오면서 멀리서부터 애써 인사를 외면하려고 소곤대는 말들이다. "야, 쌩까고 그냥 가자!"


요즘 학생들은 인사를 잘 안한다.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가거나, 아니면 인사하기 싫어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그냥 뛰어가는 학생들도 많다. 하루는 내 앞에 오던 학생이 날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안녕?"이라고 답해줬는데 알고 보니 그 학생은 내게 인사한 것이 아니라 내 뒤에 오던 다른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던 것이었다. 난 눈이 나쁜 편이어서 그 학생이 날 보고 인사한 건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인사한 건지 구분이 잘 안 됐던 것이다. 그 이후로 소심한 A형인 나는 학생들과 지나가며 인사할 때 나도 모르게 트라우마가 생겼다. 학생들과 마주치는 순간순간이 불편해졌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학생들의 인사를 쌩까기 시작했다. 모른 척 지나가기도 하고, 전화를 하면서 지나가기도 했다. 이런 행동은 학생들 사이에 나를 인사도 쌩까는 네가지 없는 선생님으로 만들었고 급기야 한 학생으로부터 "왜 선생님은 인사를 안 받아요?"라는 볼멘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선생님이 눈이 나빠서 인사하는 게 잘 안 보여서 그래! 미안하다"라고 급하게 변명을 했지만 한 학생의 한마디 날카로운 지적은 내 머리를 쿵 내리치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은 눈만 안 보이시는 게 아니라 귀도 잘 안 들리시나봐요!"


그동안 나는 학생들에게 핑계를 대기에만 급급해서 내 눈앞만 가리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학생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일부러 귀를 닫았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대체어 - 생먹다

쌩까다라는 단어는 무시하다, 아는 체하지 않다, 오랜 시간 동안 연락을 끊다 등을 의미하는 어감이 좋지 못한 단어다. 이 말 대신 쓸 수 있는 순 우리말이 있다. 바로 생먹다라는 단어다. 남이 하는 말을 잘 듣지 않다. 일부러 모르는 체하다. 사냥을 위해 동물을 가르쳐도 길이 잘 들지 않는다는 의미의 단어인데 쌩까다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는 단어로 어감도 나쁘지 않다.



양날의 칼, 친근함과 불쾌함 사이

나는 한 번이라도 뜨거웠을까 - 빠순이

어원

오빠와 순이의 합성어로 모든 일을 제쳐두고 운동선수나 가수, 배우 등을 쫓아다니면서 응원하는 여자들. 빠돌이도 여기에서 파생됨.


가끔은 빠순이가 되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무언가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몸은 어른이 되었는데 겁은 어린아이들처럼 많아졌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능력이 충분해졌는데도 시도할 용기나 열정이 점점 사라진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살 수 있다면 피곤하게 이것저것 하면서 바쁘게 사는 것보다 그냥 지금 이대로가 훨씬 좋다.


얼마 전 오랜만에 지난 사진들을 정리했다. 사진 속 나는 자그마한 일에도 즐거워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부대끼며 함께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즐겁게 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던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든 주도적으로 하려고 노력했고, 나름의 목표 의식이 있던 시절, 행복을 주변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행복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읽고 보고 느꼈구나, 라고 생각하니 지금의 내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데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 너무 빨리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많은 시간들을 과거의 열정을 버리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가끔은 빠순이가 되고 싶다.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무슨 일을 하든지 열정적으로 하고 싶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신경 끄고, 그저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가끔은 누군가의 눈치도 보지 않고 용기 내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해내는 빠순이들의 젊음과 열정이 부럽다.


대체어 - 마니아

한 군데에 빠져 열정이 넘치는 그, 혹은 그녀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마니아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마니아는 어떤 한 가지 일에 몹시 열중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써 누군가에게 열중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니 빠순이, 빠돌이를 마니아로 부름으로써 그들에게 팬심 이상의 그 어떤 과한 관심이나 행동은 마니아로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맨 정신의 역습 - 꽐라

어원

코알라를 빠르게 발음해보자. "코알라 코알라 코알라 콸라 콸라 꽐라." 꽐라는 코알라로부터 온 말. 알콜 성분이 있는 유칼립투스 나무의 나뭇잎을 주식으로 먹어 늘 취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코알라의 모습을 술에 취해 있는 사람에게 빗대어 사용하는 단어.


주(酒)님을 모실 자격

우리는 술 한 잔으로 스트레스도 풀고, 술 한 잔으로 사람들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도 나누고, 고민도 털어놓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술을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술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내가 술을 마시는 건지 술이 나를 마시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꽐라의 전형적인 증상이 드러난다. 그러니 주저앉지 말고, 다시 일어나야 할 상황들이 길거리에서 종종 일어나는 것이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다 보면 영성체를 하는 시간이 돌아온다.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시간인데 조그맣고 동그란, 500원짜리 동전만 한 제병을 신부님께 두 손으로 받아 입 안에 넣고 자리에 들어와 기도를 한다. 하지만 아무나 영성체를 할 수는 없다. 고백성사를 통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난 후의 깨끗한 마음가짐으로만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주(酒)님도 마찬가지다. 그저 생각난다고, 힘들다고, 마시고 죽자는 마음으로 주(酒)님을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꽐라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그러니 적어도 주(酒)님을 만날 때에는 경건하고 깨끗한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심을 드러내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술을 즐기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인도하는 주(酒)님으로 왜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酒)님을 만날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주(酒)님을 모실 자격은 절제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도 기억했으면 한다.


대체어 - 코알라

늘 알코올에 쩔어 살지만, 주사와 주폭이 없는 코알라. 술은 마시더라도 코알라의 젠틀한 귀여움은 그대로 유지하라는 의미에서 꽐라를 코알라로 대체해서 부르는 것은 어떨까? 늘 알코올을 꾸준히 섭취하고 있지만 코알라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다른 동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술이라는 좋은 매개체로 사람들과의 정을 쌓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단어.



과유불급, 적절하면 윤활유 과하면 정서적 환경 호르몬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극단적으로 만드는 뭔가가 있다 - 존나

어원

존나는 좆나에서 변형된 단어로, 좆은 남성의 성기를 뜻하는데 좆나는 성기가 튀어나올 정도라는 의미의 성적인 욕설. 아주, 매우의 동의어가 되어버린 단어다.


의미도 모르는 단어들이 일상의 언어로

학생들이 가장 많이 쓰는 비속어 중 하나인 "존나"는 그 어떤 말보다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존나 짜증나", "존나 이쁘네", "존나 황당해", "존나 열받네" 등등. 이렇게 낯 뜨겁고 황당한 욕을 아무런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지도 않고 말하는 이유가 학생들의 성정이 나쁘기 때문은 아니다. 예전에는 이런 비속어들이 학교에서 좀 놀았다는 학생들의 전유물이었던 반면 요즘은 그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생활의 언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미도 제대로 모르는 단어들이 일상생활의 언어가 되어버리니 학생들은 비속어의 어감에 대해 점차 무감각해진다.


수업 시간에 가장 많이 듣는 비속어도 "존나"이다. "선생님 뒤에 애들이 존나 떠들어요", "선생님 칠판이 존나 안보여요!", "아, 교실 존나 더워!"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이다. 친구들끼리도 모자라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내가 우스워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없는 건지, 별 생각이 다 든다. 물론 고등학생이나 되어서 부끄럽게 이런 말을 입에 담느냐며 큰 소리로 호통을 치곤 하지만 이미 습관처럼 굳어진 그들의 언어에 내 잔소리는 힘이 없다. 더 황당한 건 보통 이런 말을 하는 학생들은 그나마 수업 시간에 잘 참여하는 모범생들이다. 보통 공부할 마음이 없으면 수업시간에 뭘 하는지 관심도 없고 선생님에게 질문도 없는 법이다.


결국 이 학생들에게 비속어의 어원을 가르쳐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시간 수업이 시작되면 5분 동안은 비속어 수업을 하게 되었다.


대체어 - 정말

"졸랭", "조낸"을 대신 쓰기도 한다. 언어를 고치려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이것은 "씨발" 대신 "ㅆㅂ"을 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존나" 대신 상황에 따라 "정말", "매우"라는 명사나 부사를 쓰는 것이 올바르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정말 고마워", "정말 짜증나"로 대체해서 쓰게 되면 고마운 마음은 배가 되고 짜증나는 마음은 반절이 될 것이다.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건방진 단어 - 쩐다

어원

배추가 소금에 절임을 당하는 것처럼 어느 한 대상에 푹 빠지거나 한 가지 일에 매우 능통한 것을 빗대어 하는 말.


쩌는 이중성

남학교여서 옷을 입을 때 항상 신경 쓰게 된다. 하루는 왠지 소녀 같은 옷을 입고 싶었다. 아껴두었던 분홍색 스웨터 원피스를 꺼내들었다. 평소에는 화장도 잘 안 하지만 특별히 화장을 하려고 30분이나 일찍 일어났다. 교실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어려 보여요!"라는 말만 들으면 미션은 완료! 그 말을 듣는다면 평소 잠이 많긴 하지만 30분 일찍 일어난 피로쯤은 다 떨쳐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앞문을 들어서니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순간 씨익 웃으며 역시 성공했구나 속으로 한껏 들떠 있는 찰나에 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오늘 쩔어요!"


모두 다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보다 예쁘다. 잘 어울린다. 정말 어려 보인다는 의미의 "쩔어요"일까, 아님 도대체 그 나이에 무슨 추태입니까? 정말 짜증나네요. 눈 뜨고 볼 수가 없습니다라는 의미의 "쩔어요"일까? 결국 수업 내내 "쩔어요"의 의미에 대해 머릿속으로 고민하느라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수업은 부자연스러웠고 학생들의 반응도 뜨뜻미지근했다. 가끔은 쩐다 같은 단어처럼 단어의 이중성 때문에 그 의미를 파악할 수가 없어서 정말 나도 쩐다.


사람이든 단어든 하나의 성질만 가지고 있어야 주변을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많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 하나에 충실한 것, 전문성을 가진 것에는 이기지 못한다. 인간의 이중성도 견딜 수 없이 나쁘고 싫지만, 단어의 이중성이란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해석 불가능해서 의미를 헷갈리게 만든다. 사람을 기대하게도 하지만 실망시키기도 해서 더 나쁘다. 쩌는 이중성은 버려야 한다.

 

대체어 - 멋있다. 구질구질하다

쩐다는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전달되기 때문에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건방진 단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에둘러서 쩐다를 애매한 곳에 갖다 붙이지 말고, 멋있으면 멋있다고 말하고, 구질구질하면 구질구질하다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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