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생애 한번은 누구나 철학을 찾는다!
들어는 봤지만 내용은 막연한, 모르고 살기에는 너무 아까운 우리 시대 대표 철학자들과 그들의 명작을 소개하는 책이다. 기원전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공자부터 17세기, 20세기를 거쳐 현대 사상가 마이클 샌델, 슬라보예 지젝까지 아우르는 이 책은 철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구축하고 현재에 영향을 미친 핵심 철학자 50명의 대표작과 사상을 저자의 통찰력 가득한 설명과 함께 각 철학자들의 약력, 한 줄 요약과 대표적인 인용문으로 정리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정신과 그들의 기념비적인 저작에 관해 읽다 보면 이 세계와 인간의 삶을 새롭고 독특하며 범상치 않은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것이다.
■ 저자 톰 버틀러 보던
철학, 심리학, 성공학, 영성을 망라한 다양한 분야에서 명저들을 가려 뽑아 현대인의 삶에 가치와 깊이를 더하는 안내서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첫 번째 책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은 ‘가능성의 학문에 결정적인 길잡이가 됐다’는 호평과 함께 벤저민프랭클린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주간지 「포워드 Forward」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 뽑혔다. 이후『내 인생의 탐나는 영혼의 책 50』『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을 연이어 발표하며 30만 부 이상 판매되는 큰 반향과 함께 전 세계 23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런던경영대학원과 시드니대학교를 졸업했고 영국과 호주를 오가며 꾸준히 집필과 세미나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역자 이시은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와 KAIST 경영대학원 MBA를 졸업했다. 대기업과 컨설팅사 등을 거쳐 현재는 바른번역의 전문번역가 겸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DK 출판사의 유소년판 『히스토리』 『시대가 선택한 미술』 『철학의 책』 『심리의 책』 『경제의 책』 『정치의 책』 『종교의 책』을 비롯해 <반드시 알아야 할 50> 시리즈 『위대한 정치』 『위대한 세계사』 『위대한 예술』 내셔널지오그래픽 『한눈으로 보는 과학과 발명의 세계사』 등이 있다.
■ 감수 김현철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볼링그린주립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시카고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학교의 Best Teacher로 선정되었고 ‘대한민국 최우수 인문학 강의 교수상’을 수상했으며, 세계철학자대회 상임위원, 연세대학교 리더십센터 소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현재 수요인문학콘서트 리딩 멘토로 활약하며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한국학술진흥원 선정 ‘국내 강의실력 베스트 7’에 뽑힐 만큼 명강사로 유명하며 ‘윤리경영 리더십’과 ‘변화와 혁신의 철학’, ‘CEO의 경영 철학’ 등을 주제로 LG, SK, 포스코, GS 등의 대기업과 주요 공공기관에서 자문과 강연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 차례
감수의 글 - 무엇하러 철학은 알아야 하는가?
들어가는 글 -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힘, 철학
1.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1958)
2.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기원전 4세기)
3. A. J. 에이어 『언어, 논리, 진리』(1936)
4. 줄리언 바지니 『에고 트릭』(2011)
5.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1981)
6.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1949)
7. 제러미 벤담 『도덕과 입법의 원리』(1789)
8. 앙리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1907)
9. 데이비드 봄 『전체와 접힌 질서』(1980)
10. 놈 촘스키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2002)
11. 키케로 『키케로의 의무론』(기원전 44)
12. 공자 『논어』(기원전 5세기)
13. 르네 데카르트 『성찰』(1641)
14. 랠프 월도 에머슨 『운명』(1860)
15. 에피쿠로스 『서간집』(기원전 3세기)
16. 미셸 푸코 『말과 사물』(1966)
17. 해리 프랑크푸르트 『헛소리에 대하여』(2005)
18. 샘 해리스 『자유 의지는 없다』(2012)
19. G. W. F. 헤겔 『정신현상학』(1807)
20.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1927)
21. 헤라클레이토스 『단편』(6세기)
22. 데이비드 흄 『인간의 이해력에 관한 탐구』(1748)
23. 윌리엄 제임스 『실용주의』(1907)
24.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2011)
25.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1781)
26. 쇠렌 키르케고르 『공포와 전율』(1843)
27. 솔 크립키 『이름과 필연』(1972)
28.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1962)
29.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변신론』(1710)
30. 존 로크 『인간오성론』(1689)
31.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1513)
32. 마샬 맥루한 『미디어는 마사지다』(1967)
33.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1859)
34. 미셸 드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1580)
35. 아이리스 머독 『선의 지배』(1970)
36.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1886)
37. 블레즈 파스칼 『팡세』(1660)
38. 플라톤 『국가』(기원전 4세기)
39. 칼 포퍼 『과학적 발견의 논리』(1934)
40. 존 롤스 『정의론』(1971)
41.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1762)
42.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1930)
43.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2009)
44. 장 폴 사르트르 『존재와 무』(1943)
45.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1818)
46. 피터 싱어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2009)
47. 바뤼흐 스피노자 『에티카』(1677)
48.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2007)
49.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1953)
50. 슬라보예 지젝 『종말의 시대에 살아가기』(2010)
또 다른 철학의 명저 50
용어 설명
찾아보기
짧고 깊은 철학 50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1958)
독일 태생인 한나 아렌트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지식인 중 하나로, 히틀러와 스탈린을 연구한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1951)으로 한계의 주목을 받았고, 나치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전범재판을 통해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등을 고찰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1962)으로 명성을 얻었다.
『인간의 조건』은 아렌트의 전반적인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학자의 저서답게) 학술적이고 난해한 면도 있지만, 참으로 독창적이다. 또 일종의 정치철학서이면서도, 인간의 잠재력을 강조하는 매우 고무적인 이론을 제시한다.
탄생과 행위라는 기적
아렌트가 보기에 자연은 본질적으로 순환적이고 삶과 죽음이 끝없이 반복되는 냉혹한 과정으로 반드시 죽을 운명의 인간에게는 그저 재앙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행위 능력을 통해 이 굴레를 벗어날 길이 있다. 자유로운 행위란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함으로써 이 냉혹한 사멸의 법칙에 개입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반드시 죽을 운명이라고 해도, 죽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기 위해 태어난다."
이것이 바로 아렌트가 말하는 탄생성(natality)으로,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의 유명한 금언 "만약 시작이 존재했다면 인간은 창조되었다"에서 영감을 얻은 개념이다. 아렌트는 이렇게 쓴다.
"이전에 발생한 그 무엇으로부터도 예상할 수 없던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게 시작의 본질이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각종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으로 확실성을 추구하는 통계법칙과 확률의 지배적인 가능성에 어긋나게 발생한다. 그래서 새로운 것은 언제나 기적으로 가장하고 나타난다. 인간의 행위 능력이란 인간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기대할 수 있고, 또한 인간이 한없이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모든 인간이 저마다 유일하고, 그래서 각 개인의 탄생과 더불어 유일하게 새로운 무언가가 세상에 출현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것 자체로도 기적이지만, 말과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때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영광을 누린다. 동물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생존 본능과 충동에 따라서 행동하지만, 인간은 뭔가 새로운 것을 사회적으로 공인된 가치로 바꾸기 위해 이기적인 생물학적 욕구를 뛰어넘는 행위도 할 수 있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독미나리즙을 마셨던 소크라테스처럼, 또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놓는 사람들처럼, 인간은 심지어 생존 본능에 반하여 행동하기도 한다.) 이처럼 진정으로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는 결코 예측가능하지 않다.
아렌트는 "이 세계의 추이가 자동적인 과정에 따라 결정된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행위는 마치 기적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은 심심찮게 발생하는 무한히 비개연적인 일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파시스트 정권은 이런 탄생성이나 개인의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그토록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아렌트는 다른 글에서 일갈한다.
사랑을 통해 우리의 영광이 드러난다
인간의 주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모든 자연과 사물을 알 수는 있어도, 인간 자신에 대해서는 결코 충분히 알 수 없다(아렌트의 말대로 "자신의 그림자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우리가 무엇인지는 우리의 신체로 드러나지만, 우리가 누구인지는 우리의 말과 행위에서 드러난다. 어떤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면 그에게 동조하거나 맞서지 말고 그냥 함께 시간을 보내보면 된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함께 살아가면서 단지 정신적·물질적 지원만 받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본성이 드러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순진한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행위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드러내는 행위 주체이다. 한 사람이 최고로 드러나는 것을 우리는 영광이라 부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누구인지는 타인에게만 온전히 드러날 뿐 본인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 "사랑은 비록 인간사에서 드문 일이긴 하지만 비할 데 없이 강력하게 자기 현시를 부추겨 그가 누구인지를 가장 극명히 드러낸다.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인지에 대해, 즉 상대의 장점과 단점, 업적과 실패, 죄에 대해서는 완전히 초탈한 경지까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열정은 우리를 타인과 결합시키거나 분리시키는 중간 영역을 파괴한다."
우리의 행위 능력은 우리 모두의 삶에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여, 희망과 믿음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하다. 믿음은 왜 정당화될까? 우리가 만일 인간이 행위를 통해 변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깨닫고 나면, 자연히 그들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간 종 전체를 믿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우리에게 남긴 아름다운 역설은 오직 (본질적으로 비세속적이고, 사적이며, 비정치적인) 사랑을 통해서만 공적 영역에 진정한 영향을 미칠 만한 활력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간추린 평
지난 30년간 생물학자와 사회학자들이 도달한 결론, 즉 인간이 과거의 예상보다 신경회로·유전자·환경에 훨씬 더 많이 좌우된다는 결론은 아렌트의 행위 및 결정 이론에 찬물을 끼얹는 듯 보일지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 수많은 개인들이 내린 결정의 총화라 할 역사적 관점에서 보자면, (헤겔과 마르크스의 이론처럼) 인류의 역사에 특정한 필연성이 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그보다는 아렌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마르틴 하이데거의 주장처럼, 각 개인들이 중요하다. 아렌트에게 역사란 예상을 뛰어넘는 일들의 연대기이다. 인간은 종종 본인조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을 해내곤 한다.
『인간의 조건』의 끝부분에서 아렌트는 오늘날은 직업인 사회로 바뀌어가면서 사람들이 진정 자신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며 삶의 고통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성을 포기하고 단순한 기능의 일부로 살아간다고 지적한다. 이런 자들은 의식과 결단력이 있는 진짜 인간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을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고등 동물에 불과하다. 아렌트가 생각하는 위대성이란 우리가 단순히 각종 생존 욕구로 가득 찬 동물이나 취향과 기호를 가진 소비자만이 아님을 자각하는 것이다. 우리의 탄생은 진정으로 새로운 시작이었고, 이전까지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낼 기회였던 것이다. 『인간의 조건』은 인간의 행위 능력과 예측불가능성에 관한 확신을 통해 독자에게 진정한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작품이다.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1781)
임마누엘 칸트는 자연·법·정치 등 모든 것이 냉철한 이성의 빛에 종속되던 계몽주의 시대의 산물이다. 그에 앞서 뉴턴·흄·루소·라이프니츠·스피노자의 연구는 중세 시대의 광신적 미신과 비합리성에 종말을 고했다. 칸트는 과학적 세계관을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태양계의 기원 등에 관한 과학서를 집필하여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이 시계태엽장치처럼 돌아가는 우주에서 과연 도덕이 설 자리가 있을지 의문을 느꼈다. 물질계와 형이상학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는 실현불가능해 보였지만 이것이 바로 『순수이성비판』의 야심찬 목표였다.
칸트는 우리가 감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이 지식이라고 주장하던 흄 같은 경험주의자와 인간의 이성은 우주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막강하다고 믿던 합리주의자 모두에게 불만을 느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칸트의 제3의 길은 이성이 우리를 상당히 발전시킬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엄연히 시공간의 제약 내에 존재하는 우리가 어떤 형이상학적 문제든 확실히 알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성의 힘을 이용해 자연과학에 접근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형이상학에 접근해왔다. 그렇다면 물질계의 경험적 문제에 대한 우리의 추론은 옳은데도 도덕·신·영혼에 관한 추론만 그토록 형편없이 잘못될 수 있는 걸까?
결국 이 질문은 형이상학의 타당성 여부가 아니라 엄정하고 과학적으로 형이상학을 전개해나갈 방법을 묻는 것이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우리가 감각의 제약 내에서 비물질적인 세계(예컨대 신)에 대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를 탐구해 나간다.
도덕은 실재한다
칸트는 우리가 이성을 잘 사용할수록 보다 객관적인 도덕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만약 어떤 행위를 이성적으로 옳다고 볼 수도 없고 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도 없다면, 그것은 아마 좋은 일이 아닐 터였다. 이것이 바로 칸트의 유명한 정언명령이다.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보편적인 입법 원리로 통용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
만일 모든 사람이 우리와 똑같이 행동했을 때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을지 여부에 따라 우리의 행위는 판단되어야 한다. 사람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여겨져야 한다. 물론 이것은 대부분 종교의 기본 원칙이지만, 칸트는 이 원칙이 철학적으로도 이성적이고 타당하다는 것을 굳세게 입증해냈다.
칸트가 보기에 정언명령은 이성에 기초한 도덕이기 때문에 정언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나 사회는 결코 심각하게 잘못될 수 없었다. 칸트는 우리가 자연계의 모든 법칙과 신비를 밝혀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옳지만, 도덕률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 역시 인간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칸트 연구자인 세바스티안 가드너는 칸트의 입장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합리적인 세계의 일원으로서 뉴턴의 법칙에 따르고 정신적인 세계의 일원으로서 도덕률에 따른다."
도덕은 과학에 떠밀려 힘을 잃어가는 사안이 아니라 인류가 이룩해놓은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도덕이 이성에 근거하는 한에서 말이다. 칸트의 묘비에는 (『실천이성비판』에서 따온) 이런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그것에 대해서 더 자주, 더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새롭게 늘어나는 경탄과 외경으로 마음을 채워주는 두 가지가 있다. 내 머리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도덕은 인간의 경험과 비물질적 세계를 연결하는 일종의 가교이다. 어떤 것이 옳거나 그르다는 느낌은 거짓되거나 임의적인 느낌이 아니라 우리가 형이상학적 원칙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도덕률은 딱 행성과 별만큼 실제적이다.
칸트의 행복론
행복의 추구는 자기 의무를 수행하고 우주 안에서 제 위치를 지키는 것에 비해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던 스토아 학파와 달리, 칸트는 행복이 인간의 정당한 목표이자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물질적 본성의 일부라고 믿었다. 다만 행복의 추구는 도덕적 탁월성을 추구하는 더 큰 범주의 일환으로 보아야 했다. 이에 칸트는 "스스로 행복해질 가치가 있도록 행동하라"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이 말은 마치 그의 경건주의(Pietist, 17세기에 일어난 종교적 부흥운동)적 배경에서 나온 듯 들리지만, 본뜻은 신이 시켜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이성적인 차원에서 행복을 얻을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덕률을 거스르면 우리는 불행해질 운명에 처한다. 그러나 옳은 일을 행하면 우리 자신을 위해 질서 있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룩할 수 있다. 칸트는 실제로 매우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인간됨의 영광
칸트는 마지막 저서 『학부들의 논쟁』(1798)에서 철학이 관념에 대한 학문이나 모든 학문들에 대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학문, 즉 인간의 표현·사유·행동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인간을 그 모든 구성요소에 따라 인간이 존재하고 또 존재해야 하는 대로, 즉 인간의 자연적 규정뿐 아니라 인간의 도덕성과 자유의 관계에 따라 기술해야 한다"고 설파하려 애쓴다. 고대 철학은 인간을 우주의 한낱 수동적인 일부분으로 여겼지만 칸트는 인간이 이 세계 내에서 철저하게 능동적인 지위를 갖는다고 보았다. "인간은 그 자체로 자신의 모든 표상과 개념의 본원적인 창조자이고, 자신의 모든 행위의 유일한 창시자여야 한다."
우리는 뉴턴식의 기계적인 세계에서 굴러다니는 공도 아니고 외부의 신에게 행동을 통제당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인식을 갈고 닦아 자신을 개선하고 그럼으로써 긍정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율적인 존재이다.
칸트는 인간의 행동이 종종 무의식적 성향에 좌우되어 자유의지란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을 인정하여 프로이트의 전조가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인간은 분명 이성적 능력을 바탕으로 더 높은 이상과 관념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잠재력을 실현하고 인류 발전에 공헌할 수 있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됨의 본질은 자유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이성과 경험을 기초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세계를 구성한다. 어떤 동물이라도 이런 인간을 흉내조차 낼 수 없다. 사실상 인간의 최대 성취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속성 때문에 다른 세상에서 온 듯 보이고 그래서 기꺼이 신이라 믿을 수 있는 보편적인 도덕률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다. 신이 객관적인 실재인지 아닌지는 끝내 알 수 없겠지만 여기서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이 세계를 의미 있게 만들어갈 강력한 자유가 있다는 사실이고, 여기에는 보편적인 도덕률에 기초하여 윤리를 개발해갈 자유도 포함된다. 이것이 인류의 숙명이고 칸트의 핵심적인 메시지이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유롭고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며, 문화적·정치적인 맥락과는 별개로 볼 수 있는 존재라는 칸트의 사상은 프랑스혁명에도 철학적인 영감을 불어넣었다. 현대의 자유의지 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칸트의 입장이 아주 견고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만일 우리가 개인의 본질적인 자유를 믿는다면, 이런 단순한 개념을 충분한 논거를 갖춘 철학적 논의로 전환시켰다는 점만으로도 칸트는 위대한 인물일 것이다.
간추린 평
칸트 같은 최고 철학자가 형이상학을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보았다면, 극단적인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진영에서 바라듯이 형이상학이 그렇게 쉽게 묵살될 만한 사안은 아닐 것이다. 또 조지 버클리와 라이프니츠 같은 선대 철학자들은 실재 세계가 형이상학적이고 우리가 지각하는 자연계는 이 중요한 실재의 표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신을 철학의 중심에 놓았으나, 칸트는 양쪽 다 똑같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칸트에게 종교는 (불가능하게도) 영적인 진리로 연결되는 통로가 아니라 신중하게 추론한 도덕적 입장을 검증하는 기제였다. 칸트의 생각대로라면 과학과 논리를 수용하는 이성적이고 현대적인 사람이라도 삶 속에 영성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칸트는 또한 (신학은 알 수 없거나 적어도 감각을 기초로 말하거나 쓸 수 없는 주제나 실체를 연구하는 분야이므로) 신학에 대해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논리실증주의자와 비트겐슈타인을 포함한 현대 철학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칸트의 연구는 양 진영에 모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여전히 흥미롭고 영향력을 지닌다. 경험주의자들은 칸트가 신이란 온통 말뿐이고 신학이란 본질적으로 실없는 소리임을 입증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반면 신앙인들은 칸트의 저작에서 도덕률과 형이상학의 합리적 기반을 찾을 수 있다. 어느 쪽에 속하건 칸트의 체계는 워낙 공고하고 포괄적이며 내적인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 그 이후로 어떤 철학자도 감히 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1962)
토머스 쿤은 하버드대학교에서 이론 물리학을 전공하던 대학원생 시절 박사논문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 비과학도를 대상으로 실험적인 과학 강의를 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래서 이때 처음 과학사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 강의는 쿤의 과학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고, 그 결과 그의 진로도 물리학에서 역사학으로, 그리고 과학철학으로 급선회했다. 쿤은 30대 중반에 코페르니쿠스 연구서를 집필했고 5년 후에 『과학혁명의 구조』를 발표했다. 겨우 170쪽짜리 전공논문인 이 책은 1백만 부가 넘게 팔렸고 24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통틀어 지금껏 가장 많이 인용된 저서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성공은 학술 논문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이었고 쿤 자신에게도 대단한 충격이었다.
과학은 과학자가 만든다
쿤은 우선 기존 과학 교재에서 과학 발전을 설명하는 방식이 관광안내책자에서 한 나라의 문화를 설명하는 수준 이상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교과서는 점진적으로 축적되어 온 사실들을 설명하고, 지식을 확대시킨 성공적인 실험에 근거한 이론들을 소개한다. 그렇지만 과학이 정말로 그렇게 깔끔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걸까?
쿤은 과학의 진보를 개인들의 위대한 발견의 관점에서보다는 기존 데이터의 재해석을 허용(또는 불허)하는 당대의 지적 풍토와 과학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보다 개방적이고 겸손한 입장을 추구했다. 그의 핵심은 과학자들이 단순히 자연의 작동 방식을 설명함으로써 발전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는 패러다임 내에서 활동하는 것이고, 그 패러다임 자체도 일단 현상을 미흡한 것으로 판명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된다는 개념이었다.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이란 어느 일정한 시기에 전문가 집단에게 모형 문제와 풀이를 제공하는 보편적으로 인식된 과학적 성취들을 의미했다.
이런 과학적 진보관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기존의 관점에서는 한쪽에 사실이 있고, 다른 한쪽에 그것을 발견하는 우리(과학자)가 있다. 그러나 사실이란 관찰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이 말은 과학자의 관심이 현행 과학을 구성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과학의 진보에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뿐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안다고 생각하던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도 포함된다. 쿤은 일례로 X선이 기존의 어떤 이론에도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움뿐만 아니라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전한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뀔 때에는 세계 그 자체가 변하는 듯 보인다. "혁명 이전의 과학자 세계에서는 오리였던 것이 혁명 이후에는 토끼로 둔갑하는 것이다."
쿤의 획기적인 통찰 중 하나는 패러다임이 당대 대부분의 질문에 대부분의 대답을 제시할 만큼 정합성이 있으면서도 근본적으로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천동설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며 훌륭한 우주론으로 인정받았으나, 어느 순간 그 가설에 맞지 않는 이상 현상이 무시하기 힘들 만큼 많아지면서 지동설의 패러다임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확실성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성상 패러다임의 혁명은 언제나 저항을 유발한다. 진정한 발견은 자연이 예측과 다르게 움직이는 이상 현상의 감지에서 시작된다. 과학자들은 새로 알게 된 사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 사실을 기존 이론에 끼워 맞출 수 있을 때까지 과학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다.
패러다임은 스스로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점점 불안해질 때 흔들리기 시작한다. 전문가들이 계속 틀린 대답을 내놓는 것이다. 패러다임이 위기 상태에 빠지면, 그때 비로소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이나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가능해진다.
쿤의 관찰에 따르면 새로운 분야의 초기 단계에는 보통 확립된 패러다임이 없고, 단지 자연의 일부 측면을 설명하려는 견해들이 서로 경쟁한다. 설령 이런 견해들이 전부 기존의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고 있더라도 그중 하나만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모든 사람이 그 견해에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일한 패러다임을 유지하는 쪽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정하려는 수준보다 훨씬 더 크게 인간의 심리가 작용하는 셈이다. 그래서 쿤은 과학이 그 자유의지에 따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간추린 평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이 우리에게 경험적 관찰을 축적함으로써 세계의 실재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탄탄대로를 제시하는 것 (이른바 계몽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실은 인간의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큰 충격을 던졌다. 만약 과학이 우리의 이론에 자연을 맞추려는 시도라면, 우리가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흔히 과학적 이해가 늘어나거나 변화하는 것을 거대한 진보의 일환으로 여기지만, 쿤에 따르면 과학 자체는 아무런 목표가 없고 그저 과학적 설명과 실재를 최대한 일치시키려 노력할 뿐이다. 이 책의 2판에서 쿤은 자신이 상대론자가 아니고 과학적 진보를 믿는다는 점을 분명히 못 박았다. 그러면서도 과학은 마치 진화론처럼 뭔가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 진화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최종 목표나 지향점이 있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쿤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패러다임이 나쁘다는 것이다. 패러다임 때문에 사람들의 시야가 편협해져, 지배원리의 기저를 이루는 패러다임에 의문을 갖지 못하게 된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쿤은 패러다임이 정립되었다는 것은 그 분야가 어느 정도 성숙해졌다는 신호라고 말한다. 적어도 그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동의할 만한 일련의 규칙이 형성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은 결코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단지 우리에게 세계를 바라볼 프리즘을 제공할 뿐이다. 그 진정한 가치는 패러다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우리의 진실이 가정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데 있을 것이다.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2009)
마이클 샌델의 그 유명한 하버드대학교 정치철학 강의는 영원한 골칫덩어리인 정의의 문제를 현대의 사례를 통해 재조명함으로써 새로운 세대가 도덕적 추론에 열광하게 만들었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상당 부분 아리스토텔레스, 벤담, 밀, 루소, 칸트, 롤스의 사상에 관한 논의로 채워지는데, 이런 장들은 그 자체로도 뛰어나지만 샌델 자신의 철학을 펼쳐나가기 위한 사전 지식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대상이 아닌, 인간의 정의
샌델에게 공동선의 정치란 시민의식·희생·봉사의 가치를 인정하고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우리 시대의 병폐는 대부분 시장과는 거리가 먼 영역에 시장 중심적 사고가 파고드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국가가 병역을 민간 도급업체에 아웃소싱하고, 공개시장에서 신장을 사고팔며, 좋은 성적을 내는 학생에게 상금으로 포상하고, 영리 목적으로 감옥을 운영한다. 그러나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라고 샌델은 말한다.
샌델은 한 미국 여성이 불임 부부를 위해 아기 아버지의 정자를 받아 대리 출산을 하기로 합의했던 아기 M 사건을 예로 든다. 이 여성은 출산 후 도저히 아이를 넘겨줄 수 없다고 고집하면서 아이 양육권을 놓고 일련의 소송이 벌어졌다. 자유지상주의 입장에 따르자면 대리모가 자발적으로 아기를 포기하겠다는 계약을 맺었고, 법의 주된 목표는 계약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국가는 이 계약을 강제 시행해야 한다. 한편, 대리모와 아기 부모 사이의 본래 거래에 대한 공리주의적 입장은 만약 이것이 양 당사자에게 모두 이로운 거래라면,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식이다.
샌델이 주장하듯이 이 사건은 인간을 목적을 위한 수단(대리모)이나 상품(아기)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칸트의 입장을 완벽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아기는 그 자체로 목적이고, 아기와 여성의 출산 능력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포함시켜야 한다. 결국 이 사건은 공리주의적 사고의 결함, 즉 우리가 사용가치로만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이런 것들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소중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하고, 우리 자신도 대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샌델은 국가에서 대리 출산·장기 매매·매춘·낙태 등의 금지법을 제정할 때에는 확고한 도덕적 기반에 근거를 둔다고 주장한다. 낙태의 경우 현대 사회는 당연히 어머니의 선택권이 더 중요하다고 판결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칸트식 도덕적 추론에 맞선 변론의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샌델은 도덕이란 최종 결과와 무관하게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적절한 방식을 포함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기본권은 어떤 종류의 계산도 뛰어넘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가 넓은 의미의 공리라야 하고, 진보하는 존재인 인간에게 영원히 이익을 줄 수 있는 공리라야 한다"고 선언하여 공리주의에 인간적 성격을 부여했다.
샌델은 밀이 "공리주의가 모든 것을 단순히 쾌락과 고통으로 이분해 계산해버린다는 혐의를 벗기려 했지만, 도리어 공리와는 무관한 인간의 존엄성과 개성이라는 도덕적 이상을 강조한 꼴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결국 공리주의조차도 그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고차원적인 도덕적 논리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간추린 평
샌델은 옳은 행위에 대한 서로 다른 확신과 충동에서 빚어지는 혼란이 철학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그는 분명히 우리의 선택안을 도출해내고 가능하다면 중도에 바꾸는 일이 결코 쉽지 않고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는 아이리스 머독의 결론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과정을 거친다면 우리의 관점이 단순히 샌델의 표현대로 편견의 타래나 심지어 시종일관 아무 모순도 없는 상태로 머물지는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자면 사고하고 추론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가 족적을 달성해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기존의 가정을 되짚어보고 편견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며, 소비자의 삶과 시민의 삶이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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