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기시미 이치로(역: 박재현)
ǻ
살림
   
13800
2015�� 01��



■ 책 소개

 

일본 최고의 아들러 심리학 권위자가 안내하는 아들러 심리학의 세계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우연히 만나게 된 아들러 심리학에 빠져들며 깨닫게 된 지식과 통찰, 그리고 수많은 상담을 통해 얻은 임상 경험과 사례들 중에서 독자들에게 꼭 전달하고 싶은 ‘정수(精髓)’만을 정리해서 명쾌하게 설명한 역작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히지만 우리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기시미 이치로는 이 책에서 알프레드 아들러의 삶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이 책에는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키는 데 꼭 필요하고 유익한 통찰과 사례가 담뿍 담겨 있다. 저자 역시 자신 또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아들러 심리학을 만나게 된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아직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이 책을 통해 반드시 아들러 심리학을 한 번쯤 만나보길 권한다.

 

■ 저자 기시미 이치로
1956년 교토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서양 고대 철학을 전공했다. 플라톤 철학을 공부하는 와중에 ‘어떻게 하면 우리는 온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됐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아들러 심리학에서 찾게 됐다. 이후 아들러 심리학 연구에 깊이 파고들어, 왕성한 집필 및 강연 활동과 수많은 청년들을 상대로 왕성한 심리 상담 활동을 펼쳤다. 그는 현재 일본 아들러 심리학회가 인정한 카운슬러이자 고문이며 일본 최고의 아들러 심리학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저서로는 2014년 일본에서 크게 사랑받았던 『미움 받을 용기』와 『아들러_인생을 살아가는 심리학』 『불행의 심리 행복의 철학_사람은 왜 고뇌하는가』 『곤란할 때의 아들러 심리학』 『아들러 심리학 실천 입문』 등이 있다.

 

■ 역자 박재현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상명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외국어전문학교 일한 통·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도서 저작권 에이전트로 일했으며, 현재는 출판 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 『니체의 말』 『괴테의 말』 『이성의 한계』 『뇌, 새로고침』 『뇌는 0.1초 만에 사랑에 빠진다』 『하루에 한 번, 마음 돌아보기』 『선을 넘지 마라』 『머리 청소 마음 청소』 등이 있다.

 

■ 차례
들어가는 말 어떻게 살면 좋을까?
아들러 심리학은 이 물음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

 

제1부 아들러에게 듣는 용기의 심리학

 

제1장 미움 받을 용기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인생의 의미는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chr(124)_pipe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 chr(124)_pipe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유 chr(124)_pipe 나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니다 chr(124)_pipe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chr(124)_pipe 인생의 거짓말 chr(124)_pipe 타인은 나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chr(124)_pipe 홀로 선다는 것 chr(124)_pipe 알아차림과 배려의 세계에서 벗어나라 chr(124)_pipe 원래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라 chr(124)_pipe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창조하라 chr(124)_pipe 낙천주의와 낙관주의 chr(124)_pipe 작은 한 걸음부터 시작하라


제2장 평범해질 용기
반드시 특별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자신감을 갖는 유일한 방법 chr(124)_pipe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는 이유 chr(124)_pipe 원인은 없다, 목적이 있을 뿐이다 chr(124)_pipe 주목을 끌고 싶은 아이들?행동 목적(1) chr(124)_pipe 실제보다 커보이고 싶은 아이들?행동 목적(2) chr(124)_pipe 문제의 원인을 찾지 마라 chr(124)_pipe 벌주지 마라 chr(124)_pipe 적절한 행동에 주목하되 칭찬하지 마라 chr(124)_pipe 용기가 꺾였을 때 chr(124)_pipe 우월 콤플렉스와 열등 콤플렉스 chr(124)_pipe 평범해질 용기 chr(124)_pipe ‘고맙다’는 말의 힘 chr(124)_pipe 그저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라 chr(124)_pipe 이것은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과제 분리 chr(124)_pipe 문제를 혼자 해결할 수 없을 때 chr(124)_pipe 결말을 체험하게 하라 chr(124)_pipe 지켜보라 chr(124)_pipe 온화하지만 단호하게


제3장 행복해질 용기
바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모든 사람은 대등하다?수평관계 chr(124)_pipe 말로 하라 chr(124)_pipe 남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을 때 우리는 편안해 진다?수직관계 chr(124)_pipe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라?자기 수용 chr(124)_pipe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고는 행복해질 수 없다?타자 신뢰 chr(124)_pipe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때 행복해진다?타자 공헌 chr(124)_pipe 행복의 세 가지 조건 chr(124)_pipe 타인을 생각한다는 것


제2부 아들러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제4장 용기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아들러의 생애 배경 chr(124)_pipe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다 chr(124)_pipe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과 결혼 chr(124)_pipe 프로이트와의 만남과 결별 chr(124)_pipe 개인심리학의 탄생 chr(124)_pipe 군의관으로서 참전 chr(124)_pipe 교육에 대한 관심 chr(124)_pipe 미국으로 chr(124)_pipe 그의 죽음 chr(124)_pipe 아들러 심리학 그 이후 chr(124)_pipe 보통사람을 위한 심리학자, 아들러 보통 사람에게 관심을 chr(124)_pipe 아들러의 저서 chr(124)_pipe 아들러의 영어


제5장 아들러 심리학 강의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용기다
그리스 철학과 아들러 chr(124)_pipe 행동 목적으로서의 선 chr(124)_pipe 우리는 각자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chr(124)_pipe 인생의 과제에서 도망칠 때 chr(124)_pipe 결정론에 반대한다 chr(124)_pipe 자신이 정한다 chr(124)_pipe 개인의 주체성


후기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어떻게 살면 좋을까?

아들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우리 마음이 상처를 입고 그 상처로 인해 고민과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서 “트라우마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프로이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심리학에서는 인과관계로 인간의 심리 상태를 설명한다. 트라우마 이론이 대표적이다. 아들러는 그런 인과관계 대신에 목적론을 내세웠다.


아들러 심리학이 다른 심리학과 크게 다른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아들러는 병이 낫거나 혹은 이상이 없어지면 정상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대신 끊임없이 ‘정상이란 무엇인가?’ ‘건강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했다. 이런 물음은 무척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정상 혹은 건강한 모습에 대하여 이해하고, 그런 상태를 목표로 스스로를 훈련해나가야 행복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러 심리학은 바로 그 목표에 대한 선명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까지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서 철학자인 나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전공인 철학 연구와 함께 아들러 심리학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게 됐다.


이 책은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인류의 오랜 물음에 대해 아들러 심리학으로부터 들은 대답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그 질문에 대해 어떤 식으로 답을 찾아갔는지를 살펴보고, 그 결과 ‘어떻게 살아가면 좋은가?’에 대해 어떤 지침을 내놓았는지,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리고자 한다.



미움받을 용기

인생의 의미는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49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는 스무 살을 넘긴 나이였는데도,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아이들이 다 크면 그때 마음껏 여행을 다니겠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단둘이서 여행을 떠났던 건 한 번뿐이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두 분이서 도쿄에 다녀왔던 적이 한 번 있었던 것이다. 그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아마도 당신은 아이들이 커서 자립을 하게 되면, 그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는 반신불수가 됐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렸던 것이다. 어머니가 인생을 누리려고 계획했던 그 시기에 거꾸로 인생을 잃어버리게 된 셈이었다. 서서히 당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한 어머니는 공황 상태가 되었다.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가 어떤 상태인지,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받아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만약 사실대로 알리면 불안하고 우울해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나와 아버지께 불같이 화를 냈다. 지금 그 당시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잘못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당신의 병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만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안 좋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해 들어야 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어머니의 과제였다. 그것이 나나 아버지의 과제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어머니는 완전히 의식을 잃게 됐다. 그때는 내가 어머니의 곁을 지키고 있어도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토록 꿈쩍도 못 하고 하물며 완전히 의식을 잃게 된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있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매일 어머니의 머리맡에 앉아서 그런 생각을 했다. 몸을 움직일 수 없고 의식도 없는 상황에서 돈이나 명예를 얻는다는 것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들은 인생에 그 어떤 의미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어머니는 지금 의식조차 없다. 그렇기에 건강이라는 것도 어머니의 인생에 있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비로소 깨달았다.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나 행복에 있어서 외적인 조건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어머니가 쓰러져서 돌아기시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명예를 얻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그런 명예조차도 내가 어머니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해야만 했다. 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간병으로 몇 개월간 대학에 다니지 못하는 동안 인생의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다시 등교를 시작했다. 물론 그때는 이미 그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

용기 부여에 대해서 강의를 하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그런데 강의를 하며 만난 사람들 중 상당수가 너무도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며 살아가고 있었다.


‘혹시 저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게 되지는 않을까?’


늘 그런 걱정을 달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늘 신경 쓰고 살다보면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삶을 강요받게 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남을 전혀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늘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고 미움받지 않고 사랑해주길 바라기만 하며 사는 것은 불행한 삶이다. 애써 노력한 결과,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늘 좋은 사람을 연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럴 경우 우리는 스스로가 인생의 방향성을 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게 된다.


그런 사람은 한마디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적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다른 말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을 맞추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건 처음부터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원래 열 명이 있다면 그중에는 내가 무엇을 해도 나를 싫어할 사람이 한 명은 끼어 있다. 반면 열 명 중에서 최소한 두 명은 내가 무엇을 하든 나를 이해하고 좋아해준다. 우리가 좋은 관계를 가져가고 싶은 사람은 이 두 사람이다. 나머지 일곱 명은 그때그때 태도가 달라진다. 그 사람들의 입맛을 일일이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나를 싫어하는 한 명은 내가 뭘 해도 나를 싫어한다. 그러니 그가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 끙끙거리며 애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업무상의 관계는 더더욱 그렇다. 업무상의 대인관계를 교우관계로 보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그 업무상의 관계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다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옛날에는 한 직장에서 평생을 얼굴 맞대며 근무하는 업무상의 인간관계들의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그러니 업무상의 관계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한다. 교우관계처럼 여기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은 친구로서 관계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업무상의 인간관계와 교우관계를 구별하는 것은 유용하다. 어쨌든 업무상의 관계에서 역시 남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는 태도는 불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누군가에게 미움받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방식에 따라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내 뜻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미움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만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단연코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비록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도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부한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지 말 것을.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P>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자유롭게 튀어오르는 벼룩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벼룩을 유리병에 가두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이전처럼 높이 뛰어오르지 못할 겁니다. 유리병의 높이만큼만 튀어오를 수 있겠지요. 오랜 시간 유리병에 갇힌 벼룩은 유리병 높이만큼만 튀어오르는 데 익숙해집니다.


그러다 벼룩을 유리병 밖으로 풀어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벼룩은 유리병에 갇히기 전처럼 자유롭게 높이 튀어오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리병에 갇혀 있을 때처럼 유리병의 높이만큼만 튀어오를 뿐입니다. 벼룩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유리병 안에 스스로의 몸을 가두고 있는 겁니다. 한심해 보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보면 간혹 우리도 이 벼룩과 같다고 느끼지 않나요?“


『갈매기 조나단』을 쓴 리처드 바크는 “당신은 행복한가요? 지금 이 순간,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제 마음대로 살아가도 좋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온당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제각각 머릿속에 거피 새끼들처럼 어떤 범위나 제한을 그려놓고 그 범위나 제한을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그 대신 스스로를 설득한다. ‘모두가 자기 좋을 대로 마음대로 살기 시작하면 혼란스러워질 거야. 한 사람 한 사람 자유로워야 하지만 그래도 필요하다면 나를 억제하고 다른 사람의 뜻에 맞춰야지.’ 이렇게 마음먹는다.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려야 해. 친구들에게 인정받아야지. 내 아내를 실망시킬 수 없어. 우리 아이들의 날 원망하지 않을까?’ 이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가상에 지나지 않은 ‘유리병’ 안에 자신을 가둔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공으로 자유롭게 살아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자유에 대한 ‘책임’만 지면 된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완전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나의 어느 제자가 고등학생일 때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고 한다. 그 여성의 아버지는 딸의 진로에 대해서 몹시 걱정하면서, 딸에게 어느 대학이 좋다, 이 대학은 형편없다 등등을 이야기하며 잔소리와 설교를 끊임없이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 제자는 어느 날 도저히 아버지의 간섭을 참을 수가 없어서, 아버지께 참았던 한 마디를 전했다는 것이었다.


“제 인생이니 제가 결정하고 싶어요. 만일 제가 아버지의 의견을 따라 이 대학에 가고 4년 뒤에 ‘이 대학에 다니는 게 아니었다’며 후회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 저는 아버지를 평생 원망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래도 좋으세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덕분에 그녀는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대신 그녀는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됨으로써 겪게 될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그게 자유로운 것이다. 자유롭게 자기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그것에 동반하는 책임까지 같이 짊어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스스로 진로를 선택했기에, 그로 인한 결말을 스스로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살아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라. 대신 그렇게 살게 됨으로써 겪게 되는 일들을 감내해 나가면 된다. 주변 사람들이 찬성해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을 용인해줄 경우에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는 선택지는 단언컨대 없다고 보는 것이 낫다. 실제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평범해질 용기

아이가 숙제를 하지 않는 이유

아들러는 인간의 고민은 모두 대인관계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아들러의 말을 빌리자면 ‘개인은 단지 사회적인 (대인관계적인) 문맥에서만 개인이 된다.’


어떤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아무도 없는, 소위 진공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 말과 행동에는 ‘상대’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상대로부터 어떤 응답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유치원에서 아이가 선생님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아이가 숙제하지 않는 것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면 좋을까? 두 가지 경우 모두 아이의 행동이 누구를 ‘상대’로 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유치원 선생님에게 아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떤 기분인지를 물었다.


“그럴 때, 선생님은 어떤 기분이 드나요?”

“화나죠.”


아이가 상대인 선생님에게서 ‘화난다’는 응답을 이끌어냈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꾸짖었어요. ‘잘 듣고 있니?’라고요.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은 제 앞에 와서 앉는데, 몇몇 아이들은 (이 중에 내 아들도 있다) 교실 가장자리에 앉아요. 눈에 띄죠. 가끔이라면 상관없지만, ‘늘’ 그래요. 오랜 시간 유치원에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집중력을 키울 수가 없어요. 저로서는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수업 참관을 하러 갔을 때, 칠판에 아이의 이름이 많이 적혀 있더군요.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아, 그건 제가 기억하기 위해서예요. 숙제를 해오지 않는 아이가 너무 많아 누가 무슨 숙제를 안 했는지 저도 기억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칠판에 적어둔 거예요.”


그러나 만일 선생님이 말한 목적 때문이라면 특별히 칠판에 이름을 적지 않고 자신의 노트에 메모해도 좋지 않았을까? 그런데 칠판에 이름을 적으면 어떻게 될까? 숙제를 하지 않아 다른 애들보다 더 많이 칠판에 이름이 적힌 내 아들은 아이들 사이에서 영웅시된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집중력이 없고, 게으르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신에게 주목하지 않고 숙제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선생님과 자기 사이에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여겼던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찾지 마라

아이의 행동 목적이 상대를 짜증 나게 하거나 화나게 함으로써 주목을 끄는 것이라면 그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지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행동의 ‘원인’을 찾기에만 급급하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가 유치원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벽을 돌아앉는 행동의 ‘원인’으로, 여동생이 태어나 정신적으로 불안전하다는 것과 그로 인해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지적했다면?


사실, 문제는 사랑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지 않다. 보통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금방 아이와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있기에 좋은 커뮤니케이션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커뮤니케이션이 있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태어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원활한 대인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 커뮤니케이션은 기술이다. 사랑을 배울 수는 없다. 하지만 기술이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아이가 일으키는 문제의 원인을 과거나 외적인 데서 찾는다면, 그 문제 행동을 바꾸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제 행동을 일으킨 아이의 부모가 어린 시절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도 소용없다. 또한 부모의 육아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해봐야 타임머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과거로 돌아가 원인을 해소하거나 바꿀 수 없다. 예를 들어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원인을 가정환경이나 학교 체제, 교육정책 때문이라 한다면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아이의 행동 목적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대처법이 나온다. 목적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있기 때문이다. 아들러는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라고 말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외적인 원인은 바꿀 수 없지만 목적은 마음먹기에 따라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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