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인문학

   
박병상
ǻ
이상북스
   
18000
2015�� 12��





■ 책 소개


 


동물과 사람이 공존, 생명체에 대한 인문적 성찰을 시도하다!


 


생태의 관점에서 여러 동물들을 살펴보면서 인간에게 성찰의 메시지를 던지는 책.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제대로 순환해야 건강하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생태계의 순환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사례들을 12개 항목으로 나누어 해안, 갯벌, 논, 과수원, 골프장, 4대강, 도시 주거지 등 모든 지역에 걸쳐 많은 동물들이 우리 조상과 어떤 평화 관계를 맺고 살아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이 이 대지에 언제쯤 왔는지에서 시작해 각 동물의 생활 특성, 또 사람에 의해 어떻게 참담하게 이 땅에서 쫓겨나고 있는지 등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40종 이상의 동물의 생활상과 과거 개발 전의 우리 부모 세대들과 공생했던 동물들의 모습을 이야기로 전하며, 이런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세계의 복원만이 우리가 이 땅의 모든 생물과 평화롭게 사는 방법이라고 역설한다.
 
■ 저자 박병상
도시와 생태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 헤매는 고집불통의 서생. 군 생활을 빼고는 태어나 한 번도 인천을 떠나지 않은 ‘환경운동을 하는 생물학자’다. 1976년 인하대학교에 입학해 학부와 석사와 박사과정을 1988년까지 마치고, 가톨릭 대학교 환경사회학 석사과정에 입학했으나 졸업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여러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생태적 시각으로 진지하게 혹은 무성의하게 수행하다가 숱하게 잘렸다고 착각하는 저자는 현재 인천 도시생태·환경 연구소 소장이다.


 


아내와 두 아들을 둔 가장의 책무를 망각하고 독자와 대중에게 ‘느림의 권리’를 함부로 주장하는 자신을 이중인격의 소유자로 생각하는 저자 박병상은 후손의 처지에서 생태계의 질서를 허무는 생명공학을 반대할 뿐 아니라, 생태계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개발과 지역의 소통을 거부하는 대형 중앙집중 편의 시설, 그리고 땅의 황폐화를 부르는 단작(mono culture)을 반대한다. 대신 제철·제고장 농작물 먹기, 생태계와 문화의 다양성 회복하기, 얼굴을 마주하는 대면사회 회복하기를 주장하며 언제나 힘에 부쳐 허덕거린다. 참여의 가치를 설파하고, 그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시민운동이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면서, 독립운동에 이은 민주화운동이 있었기에 환경운동도 가능한 시절이 왔으니 이제 후손의 건강한 내일을 위한 행동에 나서자고 여러 신문과 잡지에 환경칼럼을 연재하며, 토론회와 공청회에서 개발에 반대하는 자로 악명을 쌓고 있다.


 


『탐욕의 울타리』『파우스트의 선택』『내일을 거세하는 생명 공학』『우리 동물 이야기』『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녹색의 상상력』『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 등을 썼고, 다수의 공동 저서가 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brilsymbio
이메일: brilsymbio@hanmail.net
 
■ 차례
추천의 글_ 김경집
추천의 글_ 이경재
들어가는 글


 


1장: 공존이 두려운 해충 삼총사
2장: 지구온난화와 해안개발이 안긴 겨울철새 묵시록
3장: 천수답이 사무치게 그리운 동물
4장: 골프장이 몰아낸 동물
5장: 호수가 된 강을 떠난 물고기
6장: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원망스런 생선
7장: 숨죽이던 터전을 떠난 맹꽁이
8장: 입국사증과 달리 수난되는 안팎의 동물
9장: 유기농업의 확산을 기다리는 황새와 따오기
10장: 복원이 달갑지 않은 멸종 위기의 야수들
11장: 갯벌과 더불어 사라지는 연체동물
12장: 치르르, 맴맴, 귀뚤귀뚤, 계절을 여는 곤충


 


나가는 글




동물 인문학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원망스러운 생선

덕장을 잃은 황태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황태 덕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에서 트럭에 가득 실린 명태가 용대리 덕장에 풀려 영하의 날씨에 얼다 녹기를 거듭하며 누렇게 변신하다 내설악 백담사를 오가는 관광객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유명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 흰 눈을 뒤집어 쓴 덕장의 명태는 이제 우리 바다에서 거의 잡히지 않는다. 나중에 태어난 화천 산천어 축제가 부러운 듯, 해마다 2월 초순이면 고성군이 거진항에서 명태와 함께하는 겨울바다 축제라는 주제로 벅적지근한 명태 축제를 펼치지만 내용은 허전할 수밖에 없다.


한겨울 동해의 북쪽, 검푸른 바다에서 올라오던 명태는 함경도 명천군의 태가 성을 가진 어부가 잡았다 하여 이름을 그렇게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명태는 상태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꽁꽁 얼렸다 얇게 떠 전으로 부쳐먹는 동태와 소비자 손에 넘어갈 때까지 얼리지 않아 살이 부들부들한 생태, 햇빛이 강한 영하의 덕장에서 40일간 얼다 녹기를 반복해 부드러운 황색으로 말린 황태와 고성 해안에서 다짜고짜 두 달 동안 바싹 말려 단단해진 북어만이 아니다. 어린 녀석을 비쩍 말린 노가리와 노가리보다 조금 큰 코다리도 무시하면 안 된다. 주머니가 얇은 주당의 안주로 그만이 아닌가. 그토록 우리 삶에 밀착된 명태, 민속학자 주강현은 조기와 함께 제사상에 올라간다는 걸 상기한다. 인간에게 절 받는 지체 높은 생선이라는 거다.


요즘 명태는 금태다. 금처럼 귀하다는 뜻일 게다. 요즘 제사상에 올라오는 북어는 원양선단이 오호츠크해나 베링해와 같이 동해보다 더 추운 해역에서 잡아 가져온 그물태를 가공했을 것이다. 금태는  진태다. 진태는 원양이 아닌 우리 동해안에서 잡은 진짜라는 벼슬이다. 진태라고 다 최고급은 아니다. 진태 중의 진태는 낚시태이다. 그물로 잡은 진태는 아무래도 몸통에 흠결이 남을 터. 모름지기 값이 제일 나가는 최상의 자태는 낚시태 중에서 찾게 될 것인데, 강원도 고성 주변 해역에서 나오는 지방태는 도무지 알현하기 어렵다.


요즘 뜨는 벨리댄스로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명태축제 한마당에도 금테 두른 진짜 지방태는 쉽게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축제 한마당에 나들이 온 관광객은 원양태가 희미하게 풍기는 먼 겨울바다의 내음에 만족해야 속 편할지 모른다.


양면문의 시를 변훈이 1951년에 작곡한 가곡을 성악가 오현명이 불러 우리 귀에 익숙해진 명태를 들어보자. 명태는 아무래도 저음인 바리톤이 어울린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고"하며 넘어가는 가사는 "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 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던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캬~.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도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헛허허허허허, 명태라고 헛허허허허허.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하며 마무리한다.


당시 종군기자였던 양명문은 명태의 생태와 명태에 얽힌 우리네 정서를 재치 있게 묘사했다. 검푸를 정도로 깊고 차가운 바다에 떼로 이동하는 명태가 미라처럼 바싹 말라 안줏거리가 되면 외롭고 가난한 시인의 시로 승화한다고 노래하지 않던가. 한데 가곡의 가사에서 대구리는 뭘까, 대구리는 대가리의 사투리가 아닐까? 큰 대가리 앞의 명태 입은 얼마나 크던가. 쫙 벌리면 무엇이든 먹어치울 것 같은데, 입이 큰 생선의 대명사는 단연 대구다. 길이가 90센티미터에 달하는 대구와 40센티미터 내외에 불과한 명태는 같은 과에 속하는 사촌간이다. 대구도 찬 물에 떼 지어 이동하는데, 자원 독점을 노린 제국주의자의 분쟁을 유발했지만 명태는 외롭고 가난한 시인의 시로 환생했다.


명태, 아직도 시를 끌어낼 수 있을까?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사먹지 못할 정도로 비싸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바다에서 잡아오는 만큼 내 땅의 정서를 반영하지 못하는데 문화에 뿌리내리는 시어가 시인의 뇌리에 번득일 리 만무하지 않겠나, 대신, 전에 없던 생선이 동해안의 그물에 걸린다. 300킬로그램이 넘는 가오리나 보라문어가 대형 해파리와 함께 어민들의 골칫거리가 된다는 거다. 짐작하듯 바다가 따듯해졌기 때문이다. 급격히 감소하는 명태와 정어리는 우리의 식문화를 바꾸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예년에 비해 1℃ 이상 높아진 동해에서 이런 추세로 50년이 지나면 학자들은 어떤 생선도 구경할 수 없을 것으로 경고한다. 아직 러시아 해역에서 잡아오니 다행이라지만 언제까지 유효할까?


기상관측 이래 처음으로 눈 대신 비가 내리는 겨울철 모스크바를 다녀온 이는 눈이 내리지 않는 알프스가 남의 사정이 아니라는데 동의한다. 어떤 이는 2018년 동계올림픽을 강원도 평창에서 성공리에 진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지난 100년 동안 세계는 평균 0.7도℃, 한반도는 다른 지역의 두 배 이상 기온이 상승했다는데, 더욱 폭증하는 중국의 온실가스를 반영해 그런지 최근 10년 동안 평균 0.6℃나 누적 급상승했다는데, 이런 추세가 조금도 주춤하지 않는다는데, 앞으로 명태는 볼 수 있을까? 방사성 물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명태를 이참에 영영 포기해야 하나?


고등어, 국민생선에 등극했어도

고등어는 高等漁가 아니라 高登漁다 어떤 이는 고단백에 등이 푸른 생선이므로 고등어라고 밑도 끝도 없이 풀이하던데 「동국여지승람」은 옛 칼을 닮았다 하여 고도어, 「자산어보」는 푸른 무늬가 있다 하여 벽문어로 칭했다고 한 해양 전문기자는 고등어의 편력을 소개한다. 어느새 고등어는 국민생선의 반열에 올랐다. 뭐, 고등어가 원 한건 아니다. 남획으로 사라진 조기와 자구온난화로 급격히 자취를 감춘 명태의 뒤를 이어 국민이라는 작위가 하사된 것이지만 언제까지 유효할까? 제사상에 오를 날이 머지않았건만 변고를 맞았다는 뜻일까?


1983년 산울림의 김창완은 「기타가 있는 수필」이라는 제목의 음반을 발표하면서 트로트 풍의 「어머니와 고등어」를 조용하게 불렀다. 가사는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보다. 소금에 절여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구이를 먹을 수 있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절여 놓고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구이를 먹을 수 있네. 나는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 봐도 좋은걸!"하며 마친다. 듣기만 해도 따듯한 내용의 담백한 가사, 그 노래가 나온 언저리부터 고등어가 국민생선의 지위에 다가간 건 아닐까?


한 10여 년 전? 국립수산과학원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을 네티즌에게 물었더니 10명 중 7명이 고등어를 꼽았다고 한다. 멸치, 갈치, 조기가 차례를 잇고 명태가 그다음이었다고 하니, 고등어가 명실상부한 국민생선이 된 셈인데,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은 간과 콩팥의 기능을 돕는 고등어는 뇌에 좋은 DHA가 풍부해 어린이의 지능을 높이며 시신경을 활성화하고 치매까지 예방한다고 했다. 高等漁 하고 해도 무방하다 하겠는데 2011년 3월 11일 이후 태평양으로 거침없이 확산되는 방사능이 우리의 국민생선을 성가시게 한다. 혈관의 피를 뭉치지 않게 하는 EPA가 많아 순환기에 좋고, 항산화제인 비타민E가 적지 않아 노화를 방지하며 아토피를 막을 뿐 아니라 중성지방까지 줄인다지만 방사선 물질을 포함한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별안간의 고등어, 걱정스런 국민생선이라는 저주를 떠안을 위기를 맞았다.


등 푸른 대명사 중의 하나인 고등어는 가을이 제철이다. 그간 잘 먹어 지방이 20퍼센트 가까이 축적될 테니 부드러운 감칠맛이 한결 높기 때문인데, 일찍이 정약전이 지적했듯, "수압이 낮은 얕은 물에서 살아 육질은 연하지만 쉬 상한다." 따라서 낚은 현장에서 진미를 확인해야 제격이겠지만 아직 후쿠시마 영향권에서 먼 우리 해역에서 잡은 고등어라야 한다. 지렁이와 새우도 물지만, 멸치 흉내낸 플라스틱 미끼만으로도 연실 낚을 수 있다니 초보자도 겨울까지 손맛과 입맛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고등어가 후쿠시마 연근해를 회귀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확신이 없다면 그림의 떡일 따름이다.


바닷물이 따듯해지는 5월에서 7월 사이, 수만 개의 알에서 부화한 고등어는 동물성 플랑크톤, 저보다 작은 물고기, 오징어와 멸치를 먹으며 무럭무럭 성장, 2년이면 알을 낳을 정도로 성숙하는데, 50센티까지 자라는 고등어를 우리는 그저 30센티미터에 싹 잡아들인다. 알 낳을 날이 많이 남은 어린 고등어마저 음파로 어군을 탐지하는 어선들이 싹쓸이하는 탐욕이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일본의 세계무역기구에 한국 제소였나? 우리 어장을 풍요롭게 하던 고등어가 남획으로 줄어들자 일본의 수입업자가돈을 반사적으로 벌어들였겠지, 자국의 고등어를 2011년 이전보다 덜 먹는 일본은 우리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는데, 우리 해역의 고등어는 일본의 세계무역기구 제소를 반겨야 할까?


따듯한 연안을 따라 이동하는 고등어는 대략 3센티미터만 넘으면 비슷한 개체들이 커다란 군집을 이룬다. 천적의 공격으로 인한 희생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겠지. 가는 나무에 실을 도톰하게 감은 듯, 어뢰처럼 둥근 몸이 방추형을 이루다 꼬리에서 가늘어지는 고등어는 돌고래나 물범과 같은 천적이 나타나면 즉각 목숨을 건 군무에 들어간다. 파도 무늬의 청록색 등을 별안간 돌려 은백색 배를 노출시키는 거대한 무리는 방향을 일제히 바꾸는데, 웬만한 천적은 정신이 쏙 빠질 것 같다. 막대한 그물로 바다를 둘러막는 어선만 아니라면.


냉장고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한밤중에 확인한 김창완은 자반고등어의 감칠맛을 즐길 게 틀림없지만 쉬 상한다. 어부들이 "살아있어도 부패한다"고 말하는 고등어는 푸른 등부터 상하면서 자칫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히스타민이 발생될 수 있다. 바다가 먼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명품이 된 이유는 정확하게 20그램의 굵은 천일염으로 부패를 막는 염장 고등어의 맛이 빼어나기 때문이리라.


우선 지느러미를 잘라놓고 비늘을 벗긴 뒤 배를 가른다. 솜씨 좋게 머리를 끊으면 내장이 붙어서 나올 터. 잘 씻어 용도에 맞게 토막을 내자. 레몬이나 청주, 생강즙으로 비린내를 없앴다면 거의 다 됐다. 파, 마늘, 깻잎과 같은 채소와 양념을 준비하고, 독특한 풍미를 원한다면 카레나 녹차가루를 추가해도 좋겠지. 고등어를 졸이는 거다. 무와 감자, 호박도 듬성듬성 잘라 넣으면 잘 어울린다. 묵은 김치와 졸이려면 양념은 좀 빼도 되겠지. 후추와 소금을 적당히 뿌린 뒤 튀김가루를 입히면 고등어 튀김으로 이어지고, 양념을 덮고 실고추를 뿌린 뒤 찌면 따끈한 자반고등어 찜이 밥상에 올라온다. 밥도둑이지만 당연히 방사성 물질이 없어야 한다.


모슬포는 방어를 사수하겠지만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장점이 많은데, 그중 하나는 다채로운 미각을 사시사철 만족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채소가 일찌감치 시들고 추수도 끝났다면 육지의 겨울은 저장식품이나 계절에 관계없는 축산물에 의존하지만, 우리나라 삼면을 광대무변하게 감싸는 바다는 어떨까? 모든 지역에 평등하고 정의로울까? 꼭 그런 건 아니다. 다채로운 어패류가 지역마다 다르고 자연재해의 크기와 빈도가 모든 지역에 평등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독특한 먹을거리를 지역에 따라 다르게 제공하므로 평등하다. 겨울에 제주도 남방 모슬포 해역에서 주로 잡는 방어도 그 특산물 중 하나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중요성이 커진 방어는 본의 아니게 제주도의 방어를 모처럼 유명하게 만들었는데, 일본인들이 외면해서 그럴까?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제주도 모슬포는 전에 없던 풍어를 맞는다.


참치처럼 꼬리가 잘록한 커다란 생선이면서 고등어처럼 등이 푸른 방어는 산지가 아니면 좀처럼 맛보기 어려웠는데, 풍어 덕분인가? 2011년 이전, 초대된 고급 식당에서 회로 대면하는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아니 못해야 한다. 불긋한 살점이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방어를 처음 맛보며 입맛을 다셨지만 2011년 이후 아쉬워도 참아야 했다. 이성은 감성을 이기지 못하나보다. 말초적 미각은 경각심을 무디게 한다. 바다와 연한 인천이므로 평소 우럭, 광어, 농어는 자주 먹어도 서해안으로 오지 않아서 그랬는지 존재를 몰랐는데, 방어 맛에 반한 사람이 늘어나면서 겨울마다 수도권의 횟집 수족관에 넘친다. 그것도 지나치게 어린 방어를, 운반트럭은 물에 항생제를 얼마나 넣을까?


고흥 앞바다에서 주로 잡히는 삼치는 여간해서 수도권까지 살아서 오기 어렵다. 대개 냉동 상태로 가져와, 주점은 구이로 손님상에 내놓는다. 부드러운 삼치회를 원한다면 고흥의 어촌을 찾아 가길 어부들은 권하는데, 삼치보다 통통한 모슬포의 방어도 사정이 비슷하다. 몸이 1미터 가까이 자라는 방어를 낚시로 잡아 뱃전에 올려놓으면 몇 번 펄떡이다 이내 조용해지고 마니, 얼음물에 담가놓던가 냉동해야 수도권 식당에서 선어회로 내놓을 수 있다. 강력한 지진과 쓰나미 뒤 후쿠시마 바닷가의 핵발전소 4기가 연달아 폭발하기 전부터 양판점에 낮은 가격으로 선보였던 방어회가 그랬다.


지속 가능한 어업을 생각하는 소비자라면 한 번도 알을 낳지 않았을 게 틀림없는 어린 방어는 외면해야 옳지만, 더 큰 위험이 2011년 이후 생겼다. 방사선 물질의 내부피폭을 염려해야 했다. 내 노후와 후손의 건강을 위해 책임 있는 소비 행위가 중요하다는데 동의한다면 방어회로 우리 몸에 들어오는 방사성 물질을 최대한 피해야 하지 않나? 게다가 먹성이 빼어난 방어는 먹이사슬 최상의 어류에 해당한다. 먹이사슬의 단계가 더해질수록 방사선 물질의 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수 있으므로 방어를 반기는 겨울철 소비자들은 자신의 입맛을 자재해야 한다. 몸에 들어오는 방사선 물질이 플루토늄이라면 특히 위험하다.


지옥의 여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플루토늄은 원래 자연에 없었다. 플루토늄은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핵발전소의 핵분열 과정에서 형성되는 맹독성 방사성 물질이다. 핵연료의 97퍼센트를 차지하는 우라늄-238은 안정되어 핵분열에 능동적으로 동참하지 않지만 핵연료의 3퍼센트에 불과한 우라늄-235는 중성자를 맞으면 핵분열하며 막대한 열과 중성자를 내놓는다. 그 중성자 하나를 받은 우라늄-238은 이 플루토늄-239가 되는데 ,매우 불안전한 물질이므로 안정화되는 과정에서 막대한 방사선을 내뿜는다. "지옥의 여신"이란 별명을 가진 플루토늄 1그램이면 60만 명을 폐암으로 사망하게 만들 정도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플루토늄은 무척 무겁다. 쇠가 더 가벼우니 후쿠시마 해안 아래 상당히 가라앉았을 텐데, 바닥에 많은 어패류가 알을 낳으며 산다. 커다란 어류의 주요 먹이인 까나리와 오징어도 바닥에 사는 종류인데, 덩치만큼 먹는 양도 상당한 방어는 제주도에서 쿠로시오 난류를 따라 오호츠크 일원의 태평양으로 회유하는 도중에 동해안이나 후쿠시마 앞바다를 경유하며 바닥의 어패류를 허겁지겁 먹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플루토늄까지, 중성자가 느닷없이 하나 추가된 플루토늄은 알파선을 내뿜는데, 반감기가 무려 2만 4000년 이상이다. 전문가는 반감기의 20배 기간이 지나야 안심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대략 50만 년이다.


삼치구이가 제 맛이고 참치는 회를 비롯해 다양한 요리를 가능하게 하지만 방어는 오르지 회라야 제 맛이라고 미식가는 변별한다. 어느새 산지 직송 택배로 싱싱하게 거래되는 방어를 어떤 문인이 "두껍게 썰어 굽지 않은 김에다 싸 먹으면 싱싱한 사과를 한입 베어 문 것처럼 입안에서 아삭 거리고 김의 풍미와 어우러져 방어 특유의 진한 맛이 입안에 확 퍼진다"고 했다. 그래서 더 불안한 거다.


입맛 잃기 쉬운 겨울철의 싱싱한 횟감은 물론이고 초밥재료로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방어는 온대성 어류로 동해안에서 하와이 일원의 태평양에 두루 퍼져 산다. 우리 연안에서 잡히는 무리는 쿠로시오 난류의 영향권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2월에서 6월 사이 따듯한 바다에서 부화한 어린 방어는 수초에 모여 새우와 같은 무척추 동물을 먹다 4개월 만에 몸이 15센티미터에 이르고, 이른 여름이면 난류를 따라 캄차카 반도로 이동한다. 방어는 수온이 내려가는 가을이 되면 월동과 산란을 위해 따듯한 남쪽 바다로 내려오는데, 이른 겨울부터 제주도 모슬포 앞바다가 활기를 띄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물살이 거센 바다에서 시속 40킬로미터 이상의 속력으로 멸치와 오징어, 정갱이 같은 작은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먹으며 성큼성큼 자라는 방어는 5년이 안 돼 60센티미터를 넘긴다. 짙은 청록색 등과 은백색 배를 과시하는 방어는 눈부터 꼬리까지 옆구리에 노란색 띠를 비치며 1미터 이상 성장하는데, 산지 어부들은 4킬로그램을 기준으로 넘으면 대방어 모자라면 중방어로 구별한다.


DHA나 EPA와 같은 불포화지방산과 비타민D가 특히 많아 골다공증이나 치매를 막을 뿐 아니라 동맥경화나 각종 암과 같은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홍보하는 방어는 특이하게도 몸집이 클수록 빼어난 육질을 가진다. 캄차카 반도 해역에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방어가 먼 거리를 헤엄쳐 온 겨울철, 모슬포 해역의 방어는 찰진 육질이 더욱 탁월하다는 게 어민들의 자랑인데......


「세종실록」에 대구, 연어와 더불어 함경도와 강원도 해안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물고기 중의 하나로 기록된 방어는 1800년대 후반만 해도 끌어올리지 못할 만큼 그물에 걸려들었다고 한다. 그 후 어획고가 크게 줄어들었는지 제주도 일원의 시민이나 애호가가 아니라면 방어의 존재를 한동안 몰랐다. 멸치 떼 뒤에 몰려오는 여름철의 방어는 울릉도 일원에서 낚시꾼을 유혹했다지만 그 소문을 아는 미식가는 드물었다. 모슬포 이외에 방어를 조우하기 어려웠는데, 이젠 방사선 물질을 무시하는 미식가들 사이에 인기몰이를 한다. 택배 시장도 커졌다.


방어는 부사리, 잿방어, 참치방어와 더불어 4종류로 분리되는데, 횟감으로 그칠 수 없는 생선이라고 어부들은 귀띔한다. 살이 붉은 등과 기름기가 많은 배는 횟감으로 그만이지만 몸통은 반으로 갈라 구워도 맛이 향긋하고 묵은 김치를 넣어 매운탕을 끓여도 손색없다고 미식가들은 전한다. 일본인은 된장과 완두콩을 넣어 조려먹고 제주도 사람들은 소금에 절여 두고두고 먹는다는데, 회도 즐겼겠지. 위턱의 모서리가 칼 같이 각진 방어와 달리 둥글어서 구별되는 부시리는 여름에 먹어야 제 맛이라고 모슬포 어부들은 덧붙이지만 부시리도 회유한다. 방어와 생태조건이 다르지 않다.


최근 방사선 물질을 염려하는 일본인들이 외면하기에 그럴까? 모슬포 방어가 더 많이 모여든다고 한다. 어린 방어가 수도권의 활어회 수족관에 늘어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생계를 먼저 생각하는 모슬포의 활어회 운반업체와 택배자들이 일부러 무지한 척 하더라도 수도권의 소비자가 현명하면 좋겠는데,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수도권의 소비자들이 무책임할수록 모슬포는 방어를 더욱 수호하려 하겠지? 그래서 기막힌 맛의 겨울철 방어가 원망스럽다.


핵발전소가 다시 폭발한다면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중국 해역의 수온은 유난히 따뜻하다.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의 밀도가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높은 사실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터빈을 돌린 고압의 수증기를 식히는 물을 바다에서 퍼, 초당 50톤에서 100톤의 온수를 내놓지 않는가. 최근100년 사이 섭씨 0.7도 상승한 다른 해역보다 1.5도 이상 높아졌다고 전문가는 주장한다. 발전소의 온배수 때문이든 고도의 산업화로 온실가스 배출이 심한 지역이라 그렇듯, 한반도 인근 해역의 수온 상승은 한대성인 명태가 외면하고  싶을 정도일 텐데, 2013년 부경대학교 연구팀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다분히 의도적인 남획이었다.


2010년, 연간 30만 톤이 넘는 명태는 우리의 최대 소비 해산물이었다. 일본은 멘타이로, 중국은 밍타이위로 그리고 러시아는 민타이로 불렀으니 이웃나라 이름까지 선사한 명태는 명실상부한 국민생선이었는데 어떤 이유로 어획량이 1981년 16만 톤에서 2000년 1,000톤 이하로 급감했을까? 동해안의 수온이 아무리 상승해도 명태가 주로 사는 수심 200에서 350미터 깊이의 온도는 변화가 없었다는 걸 주목하는 부경대학교 연구팀은 1970년대 중반부터 노가리를 집중적으로 남획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원산 앞바다에서 산란하는 명태를 보호하면 북한만 살찐다는 냉전 논리가 작용해 1974년 수산 당국이 노가리 어획금지규정을 폐기했다는 게 아닌가.


산란장을 잃은 생선이 사라지는 예는 명태에 그치지 않는다. 광활하게 갯벌이 매립된 이후 조기도 우리 연안에 다가오지 않는다. 명태에 이어 국민생선의 반열에 오른 고등어의 어획량도 줄어들어 어느새 예년의 4분의1에 불과하다. 먼 바다에서 싹 쓸어와 소비를 충족시키지만 언제까지 가능할까? 그 먼 바다는 어디일까? 폭발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방사성 물질 영향권은 아닐까?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핵발전소 1호기를 폐쇄하라고 2015년 6월 12일, 우리정부가 공식 권고했으니 사고뭉치 하나는 사라지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낡아가는 나머지 핵발전소 역시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우리의 동해나 황해에 영향을 주는 핵발전소가 후쿠시마의 경우처럼 폭발한다면 남은 명태나 고등어마저 외면해야 하리라. 우리의 생존을 위해 바다를 버려야 할지 모른다.


해마다 11월 중순이면 제주도 모슬포는 최남단 방어축제를 연다. 맨손으로 잡고 실컷 먹는 대회, 노래와 장기자랑으로 떠들썩한 축제의 내용이 천편일률적이지만 해마다 30만 가까운 인파를 끌어들였다고 자랑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재고가 남아돌아도 전국적으로 날개 돋친 듯 택배로 팔려나가므로 걱정이 없다지만, 그건 위험한 생각이다. 후쿠시마 연근해의 방사성 물질의 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면 최소 수십만 년이 지나야 한다. 그 사이 다른 핵발전소의 사고가 반드시 없어야 하는데 핵발전소들은 낡아간다. 그뿐인가? 핵발전소마다, 감추려드는 고장이 잦다. 명백한 발암물질인 방사성 물질의 내부피폭이 계속되면 몸에 축적되고, 나이 들면 암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는데, 방어축제라니?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방어를 일부러 먹어 내부피폭을 굳이 걱정해야하나?


북어는 3일에 한번 패야 한다고? 딱딱한 북어를 연실 패대기치고 끓여야 국물 뽀얀 북엇국을 쇠주잔을 꺽은 뒤에 맛볼 수 있지만,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머지않아 언감생심이 될 테지. 명태든 북어든 자제해야한다. 노가리나 코다리도 마찬가지이다. 제주도 인근에서 잡히는 대구와 고등어는 후쿠시마 해역을 외면했을까? 그렇다면 감지덕지인데, 바다로 하루 수백 톤 흘러나가는 것으로 알려진 후쿠시마의 방사선물질은 오늘도 일본 정부의 방임 하에 줄기차게 확산된다. 우리 바다는 언제까지 안전을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 식욕은 제주도에 머물지 않는데.


불과 수 십 년 전, 동해안의 어진 어부에게 걸린 명태는 파란 하늘 아래 자작나무가 눈부신 용대리의 눈 덮인 덕장을 아름답게 빛냈는데, 요즘은 수입 명태를 걸어도 그 양도 줄어들었다. 차라리 다행인가? 이래저래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만든 현실이 원망스럽다.



입국사증과 달리 수난되는 안팎의 동물

적응력을 과시하는 겨울의 뉴트리아

해충구제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개구리를 도입한 칠레는 비상이 걸렸다. 농작물을 그 자리에 심었기에 축냈을 따름인 곤충, 그래서 악명을 뒤집어 쓴 해충은 물론 토착 곤충까지 잡아먹으며 폭발적으로 늘어난 그 개구리들이 비 내리는 밤, 도로를 덮으며 이동하는 게 아닌가. 개구리를 밟고 미끄러진 자동차 사고로 교통이 마비될 지경이었다는데, 오죽 해충이 들끓었으면 외국 개구리의 도입을 모색했을까?


토종 개구리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해충, 아니 어떤 곤충이 늘어난 건 대부분 거대한 규모로 경작한 단일 농작물 탓이다. 삽시간에 늘어나는 그 곤충을 살충제로 감당하지 못하자 황급히 외국 개구리를 도입했는데 그게 화근일 줄이야! 도입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겠지.


2008년 10월 제10차 람사총회, 다시 말해 "물새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 총회가 열린 경남 창원의 우포늪은 용늪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지정된 람사습지고, 1973년 전까지 천연기념물이었다. 일제가 1933년 지정했으나 철새가 줄어들었다며 취소했는데, 보전 가치를 되새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천연기념물로 다시 등극했다. 한데, 그 언저리, 초대받지 않은손님 때문에 난감해졌다. 노랑부리저어새와 큰고니 같은 겨울철새가 답지하는 습지에 뭐라고? 늪너구리가 출몰한다는 게 아닌가.


늪너구리? 너구리가 늪에 적응해 나타난 건 아니다. 남미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일원에 분포하는 뉴트리아를 엉겁결에 그리 부른 모양인데, 사실 생김새는 물론 사는 방식이 우리나라 너구리와 달라도 한참 다르다. 흙탕물처럼 보이는 연갈색의 통통한 몸은 50센티미터 이상 자라지만 기다란 앞니를 드려낸 머리는 영락없이 쥐를 떠올리게 한다. 뉴트리아는 40센티미터에 달하는 꼬리가 쥐처럼 가늘기 그지없다.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지만 일단 호수와 같은 습지에 들어가면 거칠 게 없다. 발가락 사이의 물갈퀴로 제 세상을 만끽한다.


어쩌다 모습을 드러내던 뉴트리아가 우포늪 전역에서 활개를 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황소개구리나 베스가 퍼져나간 시나리오와 비슷하겠지. 사육으로 한 밑천 잡으려다 시들해지자 관리가 소홀해졌고, 그러자 몇 마리가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급격히 퍼져나간 거다. 1985년 프랑스에서 모피와 고기를 위해 100여 마리 수입해 경상남도 일원에서 사육한지 이제 30년. 수명이 10년인 뉴트리아는 천적이 없는 늪에서 마음껏 증식, 그 주변의 습지를 거의 잠식했다. 머지않아 금강과 한강으로 세력을 넓힐 태센데, 거긴 아직 춥다.


우리 생태계에 없으므로 호감가지 않아도 장점이 한두 가지 아니라며 도입했다. 습지의 척추동물답게 털이 치밀하면서 고와 모피의 질이 좋을 뿐 아니라 기름기가 적고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고기가 부드러우면서 쫄깃쫄깃하니 일석이조라고 띄웠다. 면역력이 강해 질병이 거의 없고 사료도 아무거나 잘 먹으며, 마구 자라는 늪의 수초도 거뜬히 먹어치우는 뉴트리아는 세심하게 관리하지 않아도 1년에 두세 차례, 한 배에 서너 마리 이상 새끼들을 낳아 잘 자란다고 광고하지 않았나?


그러니 축산 실패로 시름에 잠긴 이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육장에 악취가 발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배설물은 양질의 비료가 되어 수초와 벼 생산에 도움이 된다니 들여놓기만 하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았겠지.


2000년 무렵, 8000마리 이상 증식된 뉴트리아는 남미나 유럽처럼 각광 받지 못했다. 혐오스런 모습 때문에 모피와 고기마저 소비자가 외면한 건데, 돈벌이에 실패한 사업자가 방치하자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물고기의 산란장인 수초를 마무 먹어댈 뿐 아니라 우포늪의 멸종 위기종인 가시연을 뜯는데 그치지 않았다. 가시연에 앉은 철새의 다리를 물고 잠수, 질식시킨 뒤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게 아닌가. 먹이를 습지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인근의 밭으로 들어가 감자나 당근을 거덜내더니 논으로 들어가 익어가는 벼까지 훑어냈다.


제 몸무게의 4분의 1을 하루 만에 먹어치우는 뉴트리아에게는 천적이 없으니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 악어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수를 조금씩 늘리는 수달은 맑은 하천을 떠나려 들지 않는다. 물수리는 태화강에서 숭어 잡는 데 여념이 없고, 참매는 늪까지 염탐하지 않는다. 뉴트리아는 늪을 외면하는 삭이나 오소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영하로 치닫는 겨울 추위가 두렵지만 그것도 호수 가장자리에 20미터 이상의 굴을 파면서 극복했다. 겨울이 따뜻해지면 굴에서 나와 철새를 물어뜯으니 우포늪 관계자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천적 눈치 볼 일이 없으니 뉴트리아는 우포늪에서 다른 습지로 퍼져나갔다. 참다못한 밀양시와 부산시도 포상금을 내걸고 포획에 나섰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민원에 호응한 환경부가 2009년 6월 유해조수로 지정했으니 뉴트리아가 눈에 잘 띄는 계절에 맞아 대대적인 퇴치 작전에 돌입한 것인데, 그런 사정은 우리나라만이 아니었다. 일찌감치 수입해 사육하다, 모피산업이 시들해지자 숲으로 내버린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뉴트리아가 루이지애나 늪지대에 퍼지며 수중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하기에 이르자 꼬리 하나에 5달러의 포상금을 내걸었지만 결국 실패했고, 소시지와 버거 같은 메뉴를 개발해 식용을 위한 사냥을 유도했지만 워낙 뛰어난 번식력 때문에 그마저 소용없었다고 한다.


얼음이 약해지는 우리 겨울에 완전히 적응한다면 4대강 사업으로 대구 언저리까지 호수가 이어진 낙동강 주변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리라. 이미 비슷한 민원이 유발되었듯, 낙동강 주변의 비닐하우스에 대거 들어가 겨울딸기를 축낼지 모른다.


걱정은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다. 거대한 호수의 제방에 복잡한 굴을 길게 파놓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집중호우로 제방이 붕괴된 연천댐처럼 낙동강을 넘어 금강과 영산강에서 재현될 수 있다. 4대강 사업 낙동강 구간의 가장 하류인 함안에서 발생한 사고의 예후가 심상치 않다. 함안보로 물길이 이어지는 호수에 빗물이 순식간에 모여들자 뉴트리아가 파 놓은 굴 때문에 제방이 붕괴된 것이다. 그때 발생한 겨울딸기 농부들의 민원은 애교에 불과할지 모른다.


퇴치한다는 건 결국 죽여 없애자는 뜻인데, 들어올 때 그리 애지중지하더니 이제와 죽이겠다고? 뉴트리아는 억울하겠지. 하소연할 데가 없는 뉴트리아를 우리는 어떻게 구제해야 할까? 서해안의 무인도에서 흑염소를 잡는 우리 맹금류를 초청해야 하나? 남부 지방의 늪에서 뉴트리아를 퇴치할 수 없다면 황소개구리나 베스처럼 어쩔 수 없이 최소 범위에서 공존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뉴트리아가 퍼져나갈 환경 조건을 최대한 억제시키고, 우리 자연에서 천적이 나타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텐데, 4대강 사업은 그 의지를 소용없게 만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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