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깊을수록 삶은 단순하다

   
레베카 라인하르트 (지은이), 장혜경 (옮긴이)
ǻ
갈매나무
   
19500
2025�� 04��



■ 책 소개


인생에 위기가 닥쳐도 반드시 의미를 찾아낼
‘선의 평범성’에 관한 철학적 통찰

승진 소식에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귀가했는데, 수도관이 터져 집안 꼴이 엉망이다. 세상은 왜 이렇게 내 맘 같지 않은지! 현실 밀착형 철학자답게 저자는 평범한 일상 속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에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간의 행복은 사실 호르몬이 선사하는 좋은 기분에 좌우되기 마련이고, 금방 기분을 띄우는 행복은 빨리 오는 만큼 빨리 사라지는 법이다. 반면에 조용하고 나직하여 볼품은 없지만, 잘 고장 나지 않는 느린 행복이 있다.

선의 평범성부터 선한 영향력까지, 더불어서 상식, 올바름, 존엄성, 만족, 예의, 아름다움, 참여, 의미, 사랑, 시간, 신뢰 등 이 책은 우리가 인생에서 한 번쯤 반드시 숙고할 만한 철학적 가치들을 현실적 질문과 함께 다루고 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이 사상가들의 조언을 나침반 삼는다면, 손잡고 온기를 나누며 함께 걷는 사람들과 가끔 길은 헤맬지언정 적어도 방향은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레베카 라인하르트
저자 레베카 라인하르트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 베를린 자유대학 등에서 철학과 영문학, 이탈리아 문학을 공부했고 현대 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철학 컨설턴트 및 임상철학자로 상담소와 대학 병원에서 상담 활동을 하며 정신과 전문의와 글로벌 리더 등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왔다. 최근에는 독일 최초 AI 관련 잡지 ‘human’을 창간하고 편집장으로서 “Human is the next big thing”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인간성’을 탐구하며 다양한 글쓰기와 강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마음이 아픈데 왜 철학자를 만날까’, ‘철학하는 여자는 강하다’, ‘방황의 기술’ 등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 역자 장혜경
역자 장혜경은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독일 학술 교류처 장학생으로 하노버에서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현명한 이타주의자’, ‘자기만 옳다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차례
1부. 불안하다면, 오래된 지혜로부터
1. 빠른 행복과 느린 행복 - 선의 평범성에 관하여
‘좋은’ 사람이 많은데, 세상은 왜 이리 ‘나쁜’ 걸까?
얼마나 선해야 ‘선하다’고 할 수 있나

2.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중독 - 상식에 관하여
이토록 불안한 세상에서 아이를 낳아도 좋을까?
우리가 아는 바는 사실 많지 않다는 사실

3.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 - 올바름에 관하여
말들은 넘쳐나는데 대화는 왜 없을까?
한 편이 ‘피해자’라면 다른 편은 곧 ‘가해자’인가

4. 관계를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 - 가치에 관하여
인스타그램 친구는 참된 관계라 할 수 없는 걸까?
가짜에 익숙해져서 진짜를 망각하는 순간

- 에우다이모니아 : ‘다정’이란 서로의 불완전함을 털어놓는 일

2부. 세계의 허상은 디테일에 있다
5. 욕망과 필요 사이에서 - 선한 영향력에 관하여
파워 인플루언서의 힘을 어디까지 믿어도 좋을까?
진정으로 ‘함께’하는 자유를 경험한 적 있는가

6. 나르시시즘 시대에 살아남기 - 존엄성에 관하여
가짜의 가스라이팅을 알아챌 비결이 있을까?
현실을 외면한 채 환상을 끌어안고 있다면

7. 더 많이, 더 높이, 더 빨리, 더 새롭게 - 만족에 관하여
우리는 언제까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단 한 번도 도달해 본 적 없는 중용을 찾아서

- 메소테스 : 냉기와 열기에 치우침 없는 ‘온기’의 미덕

3부. 우리는 무력해도, 생각보다 용감하다
8. 소유인가 존재인가 - 미니멀리즘에 관하여
인생을 대차대조표로 정리할 수 있을까?
스토아철학 라이프스타일로 살아보기

9.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 예의에 관하여
누군가를 좋아해야만 존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조금 더 친절해도 괜찮다

10. 당신의 인생이 작품이 될 수 있게 - 아름다움에 관하여
지는 해를 바라보기만 한다고 인생이 달라질까?
일상에서 초월성을 경험하는 마법

11. 우리에겐 삶을 사랑할 권리가 있다 - 참여에 관하여
나에게 소속감이란 어떤 의미일까?
시몬 베유, 한나 아렌트, 수전 손택처럼 사유하기

- 스프레차투라 : 무심한 듯 유연하게 나만의 ‘스타일’로

4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위하여
12. 현존에서 무위까지 - 의미에 관하여
‘자기 결정’으로 이룬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의미를 찾는 것은 의미 없지만 믿는 것은 의미 있다

13. 죽음은 준결승일 뿐 - 사랑에 관하여
삶도 벅찬데 왜 죽음의 의미까지 캐물어야 할까?
자기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남아 있는 것들

14.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대화 - 시간에 관하여
최악을 예상하며 최선을 바랄 수 있을까?
쇼펜하우어 또는 오프라 윈프리로 살아보기

15. 위험을 무릅쓰며 앞으로 나아가기 - 신뢰에 관하여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하찮은지 누가 결정할까?
더 가벼운 삶을 향한 긍정

- 메타노이아 : ‘성찰’이란 다른 쪽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철학이 깊을수록 삶은 단순하다


불안하다면, 오래된 지혜로부터

빠른 행복과 느린 행복 - 선의 평범성에 관하여

‘좋은’ 사람이 많은데, 세상은 왜 이리 ‘나쁜’ 걸까?

행복이란 인생의 매력 가운데 하나다. 종류도 참 다양하다. 행복은 금방 기분을 띄운다. 아기에겐 엄마의 품이, 십 대 청소년에겐 첫사랑이, 아픈 환자에겐 좋은 검사 결과가 행복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순수한’ 좋은 기분과 행복은 쉽게 얼룩이 진다.


예를 들어 당신이 회사에서 승진을 했다. 드디어!!!!! 신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수도관이 터져 집 꼴이 엉망진창이다. 당신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허둥지둥 인터넷에서 수리업체를 검색한다. 업체는 왜 그렇게 많으며, 후기는 또 왜 그렇게 제각각인지. 겨우 한 군데를 골라 전화했더니 오늘 일정이 많아 한참 기다려야 한단다. 기분이 곤두박질친다. 당신은 이미 행복했다는 사실을 까먹은 지 오래다. 조금 전만 해도 무지무지 행복했는데 말이다.


금방 기분을 띄우는 행복은 빠른 행복이다. 빨리 오지만 그만큼 가는 속도도 빠르다. 그 곁에는 조용하고 나직하며 느린 행복이 존재한다. 느린 행복은 볼품없지만 대신 고장이 잘 안 난다. 당신이 그 가치를 깨닫는다면 느린 행복은 당신의 모든 행동, 기분, 생각과 동행할 것이다. 구름과 안개를 뚫고 대지를 비추는 태양처럼 말이다.


이 두 번째 종류의 행복은 첫 번째 행복과 극적인 차이를 보인다. 일단 쉽게 ‘얻지’ 못한다. 우연으로도, 노력으로도 쉽게 얻기 힘들다. 느린 행복은 평생에 걸친 뇌와 심장의 참여를 요구한다. 우리는 빠른 행복을 소유하려 하지만, 느리게 행복해진다. 느린 행복은 보통의 시간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자식 때문에 괴롭고 힘들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아이를 바라보고 생각하며 품에 안으면 또 얼마나 행복한가? 첫 질문에는 달력을 보며 답할 수 있다. “지난 월요일이었지.......”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는 절대 바로 답할 수가 없다. 그것은 대체로 무한의 경험에 가깝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경우엔 빠른 행복이 망가지는 상황을 눈앞에 그릴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경우엔 전체가 드러난다. 아이들이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성공한 인생 전체가.


빠른 행복과 달리 느린 행복은 윤리적 태도를 기초로 삼는다. 선행을 할 때마다, 행동과 도덕을 결합할 때마다 조금씩 빠른 행복에서 독립한다. 선행을 자주 할수록 느린 행복이 자라난다. 결핍감이 줄어든다. 불안감도 상실감도 줄어든다.


윤리와 느린 행복이 이처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오래전부터 깨우쳤다. 힌두교를 시작으로 불교, 견유학파(Cynics), 스토아학파(Stoicism)를 거쳐 카발라(Kabbalah)에 이르기까지 모든 철학과 영적 가르침의 기본이 바로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철학자들은 느린 행복에 아주 듣기 좋은 이름을 붙여주었다. 바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다.


그것은 규칙적으로 실천하는 인간성을 통해 쉼 없이 늘어나며, 주관적 감정을 통해 이 세상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가치를 만들어 내는 행복이다. 모든 인간이 빠른 행복이 아닌 에우다이모니아를 추구한다면 시기심도, 다툼도, 증오도, 치명적 무기도, 불행도 줄어들 것이다. 느린 행복이 꾸준히 늘어나서 세상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너무도 매력적인 미래이지만, 그만큼 품기 힘든 전망이기도 하다. 인간은 인내심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인간은 상당히 어리석기 때문이다. 카르타고 전쟁 이후, 인간은 배운 것이 별로 없다.


모두가 그렇게 ‘선하다’면 세상은 왜 이리 ‘나쁜’ 걸까? 효과를 노리며 마케팅 기준에 맞춰 선전하는 도덕적 가치는 윤리가 아니다. 진짜 선과 도덕적인 척하는 가상 시그널링 사이, 우리의 행동과 말 사이엔 그랜드 캐니언 저리 가라 할 만큼 깊고 넓은 틈이 있다. 5분 동안 착한 사람이 되기란 식은 죽 먹기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자 수십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독일로 피난을 왔다. 그러자 독일인 모두가 선뜻 기부하고 제 집을 숙소로 제공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나 불과 몇 주 후 열기는 식었다.


도움은 빠른 행복을 선사한다. 뇌의 보상시스템을 자극해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이고 인도적인 헌신이 개인의 근심을 쫓아버릴 수 있다는 건 신경생물학이 가르쳐 준 사실이다. 우리 집 수도관 파열, 내 자식 걱정, 내 실직 걱정에도 인과법칙이 작용한다. 회사의 실적 악화에 따른 해고는 기분을 흐리고 빠른 행복을 망가뜨리며 느린 행복을 잊게 만든다.


얼마나 선해야 ‘선하다’고 할 수 있나

선하고도 행복한 인간이란 무엇일까? 그렇게 되기 위해 지금 당장 집을 팔고 디오게네스처럼 통 안에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얼마나 선해야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윤리는 경쟁이 아니다. 도덕화(Moralization) 즉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럴듯한 도덕적 이유를 만들어 내는 심리적 행위는 모든 인간의 행동을 선과 악으로 갈라놓을 뿐, 별 소득이 없다. 중요한 질문은 단 하나뿐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선행은 무엇인가? 지금 나는 어떤 선행을 할 수 있는가?


스스로 시작해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그토록 간단한 일이다. 선행은 고민하고 글을 읽고 쓴다고 해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일정표에 열심히 적어넣는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선행은 행동이고, 항상 지금에만 가능하다. 완전히 집중한 상태에서 말이다. 지금 내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오롯이 그의 말에 귀 기울인다면, 키우는 햄스터 걱정이나 연체된 은행 이자 따위 생각하지 않고 그에게만 시간을 선사한다면, 아마도 나는 갖고 싶은 것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그 대신 한 조각의 영원을 얻게 될 테다. 나의 일상을 천상으로 옮겨다 줄 영원의 조각을 말이다. 나는 일부만이 아니라 전체가 행복한 존재가 될 것이다. 느리게. 순간순간. 어떻게? 아래의 지극히 평범한 네 가지 방법이 바로 그 길이다.


- 다정(Friendliness)

세제가 떨어져서 마트에 가니 계산대의 아줌마가 당신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당신은 다가가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차린다. 그녀의 미소에 화답하고 싶은 것이다. 다정은 익명의 인간을 이웃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이 기본 덕목으로 당신은 너무도 평범한 마트를 느린 행복의 산실로 바꿀 수 있다.


- 온기(Warmth)

차가운 세상에 온기를 선사하자면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의 냉기가 기후온난화를 막을 수 있기라도 하듯 증오와 무관심이 따듯한 마음보다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치명적 착각이다. 인간의 온기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너지를 더한다. 온도가 영하로 떨어진 곳에 자그만 난로를 지피는 격이다. 윤리의 온도를 높이면 흑백논리와 독단을 녹일 수 있다. 다른 방식의 갈등 문화를 고민해 보자고 타인을 북돋을 수 있다.


- 스타일(Style)

스타일에는 두 차원이 있다. 윤리적 스타일과 미적 스타일. 스타일이 넘치는 사람은 취향과 태도가 분명하다. 스타일을 통해 당신은 매일매일의 혼돈을 우주로 바꿀 수 있다. 질서 정연하고 의미 가득한 우주로 말이다. 선해 보이고 싶은 욕망. 집을 멋지게 꾸미고 싶은 욕망, 느린 행복을 키워가고픈 욕망은 서로 별개가 아니다. 외적인 아름다움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멋진 취향’만으로는 스타일이 완성되지 않는다. 진과 미와 선의 합일이 중요하다.


- 자기성찰(Retreat)

나는 지금 어떤 선행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고 그 답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것은 계획된 행동이 아니다. 자기성찰과 회귀에 바탕을 둔 행동이다. 당신은 온전히 자신에게로 돌아가며, 늘 다니던 내면의 길을 바꿔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너무 피곤하지만 마음을 내어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고마운 상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동료의 잘못을 용서한다. 언니에게 잘못을 사과한다. 그렇게 하여 당신은 이기심과 독선을 방지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에 맞춰진 듯한 소셜 미디어 세상에선 선한 사람들 틈에 끼기가 무척 쉽다. 모두가 자신은 선하다고 자부하며 호르몬을 뿜어낸다. 그러나 그건 진정한 선이 아니다. 자기 집단에만 선한 사람은 윤리보다 미덕 과시(Virtue Signalling)에 더 정신을 판다. 반면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음을 함께 공유할 수도 있다. 언제든 선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에우다이모니아 : ‘다정’이란 서로의 불완전함을 털어놓는 일

다정은 길모퉁이에 오줌을 갈기는 강아지, 마트로 향하는 발걸음, 남모르게 코 파기만큼이나 평범하다. 하지만 ‘평범하다’ ‘일상적이다’라는 말에 가장 위대한 신비가 숨어 있지 않던가? 개는 왜 존재할까? 인간은 왜 존재할까? 인간이 존재한다면, 왜 선한 인간만 존재하지 않는 걸까? 왜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때리고 쏘고 죽이는 인간도 존재하는 걸까? 선하면서도 악한 인간은 왜 존재하는 걸까?


답은 하나다. 우리는 모른다.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변호사, 종교학자, 생물학자 등 전문가들이 모두 정답이라며 온갖 말을 던진다 해도 이들 또한 인간이다. 그들에게도 좋고 나쁜 순간이 있고, 그들도 우리처럼 사랑하고 미워하며, 남이 안 보면 코를 파기도 한다.


우리가 아는 건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살아 있음은 알지만, 언제 죽을지는 모른다. 반드시 죽는다는 건 알지만 삶이 바로 다음 순간 어떤 계획을 품고 있는지는 모른다. 불의와 증오, 폭력과 전쟁이 왜 꼭 있어야 하는지도 이해 못 한다. 당신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며 그런 취급을 받고 싶지도 않고, 미워하고 싶지도 미움을 받고 싶지도 않다. 사실 당신은, 아니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바란다. 더 많은 빛, 더 많은 인류애, 더 많은 느린 행복, 더 많은 지극히 평범한 친절을 바란다.


다정은 절대 사소하지 않다

다정은 미소로 시작한다. 한 사람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죄송해요” “실례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다. 다정은 흔히 여성들이 하는 몸짓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은 잘 웃고, 감사 인사를 잘하며, 생일을 잊지 않고 챙기고, 은퇴한 어른에게 안부 전화를 건다. 하지만 여성만 그런 건 아니다. 다정은 재능이 아니라 인간 능력이다. 전 세계 수많은 남성도 똑같이 행동한다. 심지어 아이들도 길을 걷다 누군가 말을 걸면 걸음을 멈추고 헤드셋을 벗는다.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공격적이거나 무관심하지 않다.


다정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건네는 값진 선물이다. 아량의 가장 평범하고 단순한 형태이며, 쪼잔한 계산의 반대말이다. 당신이 내게 미소를 지을 때 좋아하는 나의 반응을 보고 기쁠 테지만, 처음부터 그런 나의 반응을 계산한 건 아니다. 나는 당신과 전혀 다를 수 있다. 지금 엄청 슬프거나 화가 났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인지 스트리밍에 붙들려 있을 수도 있다. 안면 마비 탓에 아예 웃지 못할 수도 있다. 설사 그렇다 해도 다정은 보람이 있다. 당신과 타인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그건 절대 사소한 게 아니다.



세계의 허상은 디테일에 있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빨리, 더 새롭게 - 만족에 관하여

우리는 언제까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볼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허공을 떠다니는 시대정신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느낄 수 있다. 바로 불안이다. 한동안 제법 수굿하던 불안이 다시 고개를 치들고 앞으로 나선다. 어쩌면 당신은 월세가 오를지 불안해하거나 직장에서 잘릴지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승승장구하던 친구가 갑자기 돈 걱정을 한다. 당신도 따라 걱정이다.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지?” 반드시 그렇진 않겠지만, 그럴 수도 있다. 불안은 엄청난 방해꾼이다. 승진 기쁨을 망치는 수도관 파열과 비슷하다. 둘 다 당신의 행동반경을 근심으로 한정시킨다. 다만 수도관 파열이 구체적이라면 불안은 상당히 추상적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2020부터 ‘뉴 노멀’이라는 슬로건이 유행한다. 심층 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개념이 흥미로운 이유는 옛것을 멋들어지게 리메이크하고픈 무의식적 소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불안의 정반대 말,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당돌한 불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 더 많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은, 아니 지금이야말로 ‘새롭게’가 추가되어야 한다. 우리는 불안하다. 기후변화와 전쟁, 난민 물결의 결과가 두렵지만 어떻게든 안전하고 싶다. 이에 정치는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경제가 성장하며 모두 다시 예전 같아졌다고, 아니 예전보다 더 낫다고 외쳐대며 새로운 디지털화 공세와 막대한 지원금으로 대응한다. 그런데도 불안이 여전하다면? 우리는 만족하게 될까?


‘충분하지 못하다’는 불만은 불안의 샴쌍둥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불러오고, 둘 다 더 많은 걸 바란다. 더 많은 안전, 더 많은 돈, 더 많은 사랑, 더 많은 인정을. ‘더 많이’는 결코 ‘충분’할 수 없다. 당신이 배우자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바란다면, 당신이 원하는 건 이미 명확하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랑이다. 하지만 배우자가 인간인 이상, 당신한테 확실하게 더 많이 줄 수는 없다. 그는 인간으로서 사이사이 실패할 것이다. 당신에게 충분한 키스와 충분한 포옹을, 혹은 당신이 항상 ‘더 많은 사랑’과 연결 짓는 그 무엇도 채워주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절대로 ‘더 많은 것’이라는 목표, 즉 절대적인 것에 이르지 못한다. 그것은 ‘꿈의 배’ 같은 환상이다. 절대적인 건 과도하고 극단적이다. 당신은 충분히 지성적이기에 그것을 의식적으로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는 그것을 찾아 헤맨다.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과도함은 수천 년 전부터 인류 문화의 특징이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를 ‘탐욕(Pleonexia)’이라 일컬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용(mesotes)’이라 일컬은 미덕, 예를 들면 사치와 인색, 과대망상과 자기비하 사이 균형에 인류는 지금까지도 도달하지 못했다. 3,000년의 세월도 우리에게 중용을 선물하지는 못한 셈이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올바르게 질문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하다.


올바른 질문을 잊는 것은 우리 자신이기를 잊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1미터 72센티미터 키에 마흔아홉 살인 남성이고 배가 약간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사실 당신은 키, 나이, 몸무게에 만족한다. 그런데도 마음 어딘가에서 불평이 끊이지 않는다. 충분히 크지 않고, 날씬하지 않으며, 젊지 않다고 우겨대는 목소리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불평은 계속된다. 당신이 충분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고, 충분히 재빠르지 못하며,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이 말을 들었다면 아마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당신의 ‘자아 이상(Ich-Ideal)’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유년기 잃어버린 나르시시즘의 대체물로서” 모든 인간이 “자신의 이상으로 삼아 남몰래 투사하면서” 비교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무의식적 모델이라고 말이다. 자아 이상은 과대망상에 빠진 아이처럼 불만의 세계 챔피언이다. 중용의 도를 비웃는 나르시시스트 괴물이다. 그것의 탐심은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에게 초인적 힘을 내어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명령한다. 미학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당신과 당신 삶에서 모든 것을 만들어 내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무엇일까?


자아 이상은 환상이다. 그것은 당신을 속여 당신이 충분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절대 충분해질 수 없다고 믿게 만든다. 외모건 내면이건, 승진했건 월세가 밀렸건 상관없다. 그 목소리는 늘 새로운 이유를 들이대며 당신이 불안하다고 속삭인다. 당신은 이상에 비해 열등하다고 느끼며, 당신 자신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까먹는다. 당신 자신이 된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뜻이다. 좋다는, 충분히 좋다는 뜻이다.


고대 스토아학파는 불안과 불만을 대하는 가장 유익한 깨우침을 이미 얻었다. 당신 능력과 가능성 밖에 있는 건 무엇이든 결국 아무 상관이 없다는 깨달음이다. 외부 사건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게 좋다. 외부 사건이 당신에게 무심하니, 당신도 그것에 무심해야 마땅하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에게는 고장난 세탁기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장 작은 악과 가장 큰 악에 대한 무관심이 지혜의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지금 혹은 앞으로도 쭉 자신의 영향권 바깥에 무심할 때만 당신은 만사를 실제 모습대로 볼 수 있다. 그래야만 주관적 불만의 망루에서 내려와 지상의 일을 우주적 관점에서 정돈하는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시야를 얻게 된다. 우주에서 보면 모든 건설 현장, 온갖 문제, 모든 충격은 작은 점 하나로 축소된다.


반면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뇌와 심장에서 나오는 인간성 행위가 온 태양계로 자라나 세상을 행복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고 믿었다. 따뜻한 몸짓 하나, 정직한 도움, 뜻밖의 경제적 지원 등, 아무리 역경이 닥쳐도, 아니 역경이 닥쳤기에 그 무언가는 항상 가능하다.


단 한 번도 도달해 본 적 없는 중용을 찾아서

변치 않는 것,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자신을 잃지 않는 최고 방법이다. 무엇이었건, 무엇이건, 무엇이 될 것이건 자신으로 남는 방법이다. 불만을 끝낸다는 측면에서 죽음마저 좋은 점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당신 마음엔 변화가 일어난다. 온기가 돌아오고, 불안을 없애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아주 또렷이 보게 될 것이다. 불안을 없애려면 자신의 자유를 책임감 있게 써야 한다. 끝없는 경제 성장이건 끝없는 자기 최적화이건, 둘 다 자연과 정의, 인간성 자체를 희생시킨다. 당신의 책임은 자유의 결과가 아니라 자유의 기초여야 한다. 자신의 느린 행복에 책임감을 느끼는 순간, 당신은 타인을 책임질 자유를 얻는다. 자기 능력에 맞춰 타인을 지원하고, 그들 곁을 지키며 그들의 말을 경청할 자유 말이다. 그런 순간에는 더는 불안하지 않다. 당신은 충분히 가졌고, 당신은 충분하다. 충분히 선하며, 충분히 행복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진정으로 공감하는 마음도 필요하다. 아침 6시에서 저녁 8시까지 혹은 그 이상으로 불충분하다는 불만에 젖어 있다면 당신 기분은 ‘피곤’과 ‘스트레스’와 ‘짜증’이라는 기본 레퍼토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더 버텨라. 더 회복탄력성을 가져라.” 당신의 자아 이상이 그렇게 외친다. 그러나 그 말은 힘들고 불안한 시대를 어떻게든 견뎌낼 뿐 아니라, 제발 더 강해지라는 뜻이다. 그게 잘될 리 없다. 타인에게 선하려면 먼저 자신에게 선해야 한다. 지금 당신이자 앞으로도 당신일 불완전하고 연약한 인간에게 느끼는 책임감 있는 공감이 ‘더 많이’의 종말이자 내적 변화의 시작일 터이다.


자아 이상을 버려라. 아주 간단하다. 자신으로 관심을 돌려보자. 몸의 각 부분, 팔과 다리, 발과 손바닥, 이마와 목을 느껴 보려 노력하자. 그것이 당신의 목, 당신의 이마, 당신의 입술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이 부위마다 생명, 즉 당신의 온기가 깃들어 있음을 명심하자. 의식적으로 느낀 생명력과 자유가, 특히 당신이 완전히 지쳤을 때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무의식적 자아 이상의 입을 틀어막아 줄 것이다. 많아도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기에 자아 이상은 당신의 숨통을 조인다. 자신이 될 수 있으려면 꼭 필요한 마음의 공간을 빼앗는다. 자신의 몸속에서 사는 법을 다시 배워서 이 공간을 되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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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