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던 그 사람이
종착역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애틋한 이별과 화해, 가족애를 되새기는
올겨울 단 하나의 힐링 소설
시즈오카 서점 대상 ‘영상화하고 싶은 도서 부문’
사상 최초 2회 수상 작가
이누준의 기대작
시즈오카의 작은 노선, 덴류하마나코 철도의 종점 가케가와역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추억 열차’를 타고 누군가를 간절히 만나고 싶어 하면 그 사람이 종착역에서 기다린다는 것. 기적의 역무원 ‘니토’ 씨의 안내를 따라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거나 멈춰 선 네 명의 주인공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끝내 찾아가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손녀,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서 진심을 놓쳐 버린 약혼자,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준 상처에 갇혀 버린 딸,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의 마지막 도전을 이어받은 아내까지 추억과 후회, 용서와 사랑이 교차하는 그들의 여정은 종착역 개표구 앞에서 ‘기적’과 ‘현실’ 사이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 순간 인생의 두 번째 기차가 조용히 출발한다.
이 소설의 진정한 힘은 작가 이누준의 삶에서 비롯된다. 나라현에서 태어나 시즈오카에 거주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 온 그는, 주임 간병사로서 수많은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은 현실감과 인간적인 따뜻함을 더했다.
그의 문장은 단순한 서술을 넘어 인간의 감정과 관계의 본질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마지막 한마디’를 주제로 한 그의 시선은 따뜻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으며, 독자들이 각자의 기억과 상처를 조용히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데뷔작 『언젠가, 잠드는 날』로 주목받은 이누준은 이후 『이 겨울 사라질 너에게』와 『이 사랑이 이루어진다면』으로 시즈오카 서점 대상 ‘영화화하고 싶은 도서 부문’ 사상 최초 2회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번 신작 『종착역에서 기다리는 너에게』에서도 그는 진정성과 완성도를 바탕으로 이별과 화해, 가족애를 그린 휴먼 스토리의 정수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눈물 폭탄 판타지’로 불리며 일본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진정한 메시지는 눈물 너머에 있다. 그 핵심은 마음속 깊은 후회를 치유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전하는 것이다.
주인공 아키가 마지막 순간, 어머니와의 재회 대신 현재의 가족에게 돌아가기를 선택한 것처럼 작가는 독자에게 과거의 상처가 아닌 앞으로의 행복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건넨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멈춰 있던 삶의 기차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따뜻한 울림이 당신의 마음에도 전해질 것이다.
■ 작가정보
이누준
나라현에서 태어나 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드라마로도 제작된 『언젠가, 잠드는 날』로 제8회 일본 케이타이 문학상 대상을 받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대표작 ‘겨울 4부작’ 중 『이 겨울 사라질 너에게』가 시즈오카 서점 ‘영화화하고 싶은 도서’ 부문 대상에 선정되었으며, 2년 뒤 『이 사랑이 이루어진다면』으로 같은 상을 받으며 일본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감성 소설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국내 출간 도서로는 『무인역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 『이 겨울 사라질 너에게』 『오랜 거짓말이 끝나는 날에』 『북상 증후군』 『어서 오세요, 여생 은행입니다』가 있다.
그의 작품은 늘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마지막 한마디’를 다루며,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한 그리움과 후회를 섬세하게 길어 올린다. 이번 소설 『종착역에서 기다리는 너에게』도 시즈오카의 덴류하마나코 철도 종점, 가케가와역을 배경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을 향한 간절한 기다림과 기적 같은 재회의 순간을 그려 낸다. 따뜻하면서도 눈물겨운 문장으로, 독자의 마음 깊은 곳에 오래도록 남는 여운을 전한다. 그의 이야기를 펼치는 순간 당신도 언젠가의 소중한 기억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번역 이은혜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엔지니어로 일했지만, 행복한 인생을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엔터스코리아 일본어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역서로는 『무인역에서 널 기다리고 있어』 『이야기를 파는 양과자점 달과 나』(전 2권) 『102세 할머니, 나 혼자 산다』 외 다수가 있다.
■ 목차
첫 번째 이야기 | 이번 역은 종착역인 가케가와역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 이별 선언
세 번째 이야기 | 종착역의 전설
네 번째 이야기 | 명탐정에게 보내는 도전장
종착역에서 기다리는 너에게
이번 역은 종착역인 가케가와역입니다
“추워 죽겠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아야가 가방을 손에 든 채 다가왔다.
“미쿠, 집에 안 가?”
“응, 조금만 더 있다 가려고.”
“아아, 너희 엄마 오늘 쉬시나 보네. 그래서 집에 가기 싫은 거지?”
“같이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게 서로를 위해서 좋아.”
“너희 엄마가 옛날부터 잔소리가 좀 심하기는 하셨지.”
기타자토 아야,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라 어릴 때 집에 자주 놀러 왔던 아야는 우리 엄마가 얼마나 엄한지 잘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너희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시고부터 엄마랑 사이가 더 나빠진 것 같아.”
“맞아.” 대답 뒤로 한숨이 이어졌다.
다정한 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바쁜 부모님 대신 나를 키워 주신 분이다. 웃을 때마다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 잡히고, 따끔하게 꾸지람할 때조차 자분자분한 말투에서 따스함이 묻어나곤 했는데... 하지만 지금은 같이 살지 않는다.
작년 봄, 할머니는 이곳에서 열차로 한참을 가야 하는 곳에 있는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 요양원의 이름은 여러 번 들었지만, 왠지 모를 거부감 때문에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
“아무튼 이제 곧 봄방학이니까 뵈러 다녀오면 되잖아.”
“아마 못 갈 거야. 그동안 한 번도 안 갔는걸.”
“왜?”
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언제 왔는지 스도 하루토가 서 있었다. 줄곧 육상부 활동을 해 온 탓에 여름도 아닌데 피부가 까맣게 그을려 있다. 짧게 깎은 헤어스타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키는 혼자 쑥 자라서 차이가 계속 벌어지는 중이다.
“뭐가?”
“왜 하루 할매를 만나러 가지 않느냐고.”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남 얘기에 끼어들지 마.”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같은 학교에 다니고 집도 가깝다. 그저 그런 사이였을 뿐인데 이 학년이 되면서부터 이상하게 자꾸 신경이 쓰인다.
“하루 할매, 편찮으신 거지?”
“응.”
삼 년 전부터 깜빡깜빡하는 일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연예인 이름이 생각나지 않거나 엄마에게 부탁받은 일을 잊어버리는, 사소한 건망증 정도였다. 그러다 가스불을 켜둔 채 잊어버리는 일이 잦아졌고, 병원 검사 끝에 알츠하이머형 치매 진단을 받았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나를 볼 때마다 무서워했다. 그다지 사이가 좋지도 않았던 엄마 뒤에 숨어서 나와는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요양원으로 만나러 가도 그때와 똑같을 뿐이다. 더는 예전처럼 할머니와 마주 보고 함께 웃을 수 없다. 그것이 현실이라면 차라리 만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럼, 건강했을 때의 하루 할매를 만나러 가는 건 어때?”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하루토가 눈을 크게 떴다.
“기억 안 나? 종착역의 전설. 하루 할매가 들려줬잖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하루토가 눈빛을 반짝이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추억 열차를 타고, 보고 싶은 사람을 간절히 그리며 종착역까지 가면,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
“너 내가 그런 얘기 싫어하는 거 몰라? 그리고 우리 할머니는 아직 돌아가시지 않았거든!”
욱하는 마음에 눈을 뾰족하게 뜨고 노려봤지만, 하루토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빙긋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는 너야말로 그 전설대로 해서 할머니를 만나면 되겠네.”
“나야 직접 가서 하루 할매를 뵙고 있으니까 전설의 힘까지 빌릴 필요 없지.”
“뭐?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에 갔다고?”
“모리마치까지 너무 멀어서 자주는 못 가지만 가끔. 네가 직접 뵈러 가면 나도 이런 얘기 꺼내지 않아.”
명색이 손녀이면서 단 한 번도 할머니를 찾아뵙지 않았다. 입원하셨다는 소식조차 모르고 있었다. 하루토가 나를 위로하려 한 말일 텐데 퉁명스럽게 받아치기만 했을 뿐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일요일 새벽 다섯 시 반, 결심을 굳힌 나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밖은 아직 깜깜한 밤이다.
어제 엄마가 오늘은 무조건 할머니를 뵈러 가야 한다고 못을 박았기에 부모님이 일어나기 전에 집을 나섰다.
삼월 하순인데도 한겨울처럼 쌀쌀하다. 니트 카디건을 단단히 여미고 자전거에 올라타서 밋카비역을 향해 달렸다. 첫차를 타려면 아직 한 시간 가까이 남았으니 일단 역사 계단에 앉아 기다릴 생각이었다.
할머니 만나기 싫어서 가출까지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매정하기 짝이 없는 손녀다. 하지만 도저히 지금의 할머니를 마주 볼 자신이 없다.
그때 길 건너편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운동복 차림의 하루토가 내가 여기 있는 줄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히 인사를 건넸다.
“안녕...이 아니라, 네가 여기는 무슨 일이야?”
“여기? 내 조깅 코스거든.”
계단을 올라온 하루토가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뛰어와서인지 가쁜 숨을 짧게 몰아쉰다.
“하루 할매한테 가기 싫어서 임시 가출이라도 했냐? 설마 첫차 타고 하마마쓰로 도망칠 계획은 아니지?”
하루토는 옛날부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어 보곤 했다. 그러니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더 필사적으로 감출 수밖에.
“너희 집 우편함에 넣으려고 갔는데, 자전거가 없더라고.”
하루토가 내민 하얀 봉투에는 “미쿠에게” “하루토가”라고만 적혀 있었다. 안에는 ‘1일 정액권’이라고 찍힌 승차권 한 장만 들어 있었다.
“이 표가 있으면 하루 동안 덴하마선 열차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어. 가케가와역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거지.”
“그 말은....”
“유효기간은 삼 개월이니까 오늘 꼭 쓰지 않아도 돼. 아니면 지금 요양원으로 할머니를 만나러 가도 되고.”
그 말을 끝으로 계단을 내려간 하루토는 계단 아래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해 볼까? 해 보고 역시 전설은 그저 전설일 뿐이었다고 말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멀리서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위아래는 녹색, 가운데 부분은 오렌지색으로 칠해진 열차가 천천히 승강장으로 들어왔다.
일요일 첫차라 그런지 승객이 거의 없었다. 자리에 앉자 덜컹하는 작은 흔들림과 함께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분 좋게 떨리던 진동이 멈춰 눈을 떠 보니 열차가 역에 도착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었나? 둘러보니 드문드문 앉아 있던 다른 승객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역은 종착역인 가케가와역입니다.”
“뭐?”
기관사의 안내 방송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허둥지둥 열차에서 내려 승강장에 섰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추억 여행을 하던 중에 잠들어 버리다니, 설령 전설이 진짜라고 해도 이래서는 기적을 바랄 자격이 없다.
허탈했다. 그때 문득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젊은 역무원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추억 열차에 탑승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가 남색 모자를 벗자 머리칼이 바람에 스치듯 가볍게 들썩였다. 호리호리한 몸에 어울리는 상냥한 눈매를 가진 남자가 열게 미소 지었다. 가슴 부근에 ‘덴류하마나코 철도’라는 글자가 수 놓여 있었다.
그제야 추억 열차가 하루토가 말했던 전설에 등장했던 열차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저는 안내를 담당하는 니토라고 합니다.”
“아..., 저는 시노다 미쿠예요.”
“만나고 싶은 분이 있으신가요?”
“전설이 실제로 일어난단 말인가요?”
“전설이라고 웃어넘기는 사람에게는 그저 전설일 뿐이죠.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현실이 되기도 한답니다.”
“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무서워요.”
나는 좋은 손녀가 아니었다. 자라면서 점점 할머니를 무시하고 버릇없이 굴기만 했다. 그러니 할머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 와서 깨달은들 너무 늦었지만.
“할머니는 저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눈꼬리를 부드럽게 내린 니토 씨의 얼굴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내 사정을 전부 알고 있다는 듯 편안하게 웃는다.
“저는 상대도 만나고 싶어 할 때만 안내할 수 있거든요.”
“할머니도... 저를 보고 싶어 하신다고요?”
“현실 세계의 할머니는 그대로 요양원에 계시고 의식만 이곳으로 올 겁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살아 있다면 반드시 만날 수 있어요.”
돌아서서 개표구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니토 씨의 뒷모습을 멍하니 눈으로 좋았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서. 표를 들고 개표구를 통과하기 직전에는 눈을 감고 빌었다.
‘보고 싶어, 할머니. 보고 싶어.’
순간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뒤를 돌아봤지만 개표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맞은편 집 벽만 보일 뿐이다.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내가 우리 집 앞에 서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 얼어붙은 듯 굳어 있는데 갑자기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열린 문으로 얼굴을 내민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머니....”
“시방 귀신이라도 본 것이여? 얼릉 안 들어오고 뭐하냐?”
달려가 와락 품에 안겼다.
그리운 할머니 냄새. 나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할머니 품에 안겨 있다.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몇 번이고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의 따스함은 분명 현실이었다. 나를 꼭 안고 있는 이 사람은 분명 건강했을 때의 할머니다.
“자, 자, 모처럼 만났는다, 귀한 시간을 요로콤 써불면 안 되는 것이여. 할매가 만주도 사 놨당께.”
할머니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며 내 팔을 잡아 끌었다.
꿈이 아니다. 전설은 사실이었다.
할머니는 집을 떠날 때만큼 마르지 않았고 그때보다 젊어 보였다. 확실히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할머니 모습에 가까웠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고기 감자조림을 만들었다. 나란히 주방에 서 있는 동안에도 추억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이어졌다.
유치원 입학식에서 대성통곡을 했던 일도, 졸업식 날 입학식 때보다 더 크게 울었던 일도 이제는 내 기억 너머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 할머니의 기억이 더해지자, 잊고 있던 시간들까지 사랑스러운 추억으로 완성되었다.
“저기, 할머니.”
“오늘이 우리가 만나는 마지막 날이여.”
지금 뭐라고?
“가는 날은 스스로 알 수 있다 하더라고. 할매 명은 오늘밤까지여.”
시야가 일그러지고 슬픔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기적은 아무한테나 막 일어나는 게 아니여. 우리한테 이런 귀한 기회가 찾아온 것에 참말로 감사해야 한당께.”
“응, 알았어....”
“미쿠야, 할매랑 약속 하나 허자.”
“약속?”
“옆에 있는 사람한테는 늘 솔직해야 한당께. 그래야 언젠가 헤어질 날이 와도, 쬐끔이라도 덜 후회할 수 있지라.”
진짜 할머니는 지금 요양원에 누워 있다. 눈을 감고 곧 다가올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였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지만, 현실 세계로 돌아가면 아직 오전일 터였다.
“할머니,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 줄 거지?”
“기다리는 동안 니 아부지, 엄니한테 작별 인사하고 있을 텐께. 말은 못 하겠지만....”
“내가 전해 줄게. 할머니가 하고 싶은 말 내가 대신 전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할머니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가야겠다. 줄곧 나를 기다렸을 소중한 사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