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야 내 길이다

   
민경희
ǻ
푸른길
   
15000
2015�� 03��





■ 책 소개


남의 이야기였던 백두대간 종주, 이제는 나의 이야기가 된다!
나를 찾기 위해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 이야기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로, 한 남자의 아내로, 세 아이의 엄마로 바쁘게 살아온 저자는 여느 오십대 후반의 여성들처럼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하는 삶을 지내는 평범한 주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고는, 자신을 좀 더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백두대간 종주를 결심한다.


하루에도 산봉우리를 몇 개씩 타고 넘었고,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1,700리를 걸었다. 무박 야간 산행을 감행하기도 하고, 퉁퉁 부은 다리를 끌다시피 하며 걷기도 했다. 남이 쉴 때도 그녀는 걸었지만 일행의 후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리산에서 출발하여 종착지인 설악산 진부령에 당도하기까지 일정마다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들을 모아 일기처럼 써 내려간 평범한 주부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 저자 민경희
1957년 대전 출생. 젊은 시절에는 간호사로 병원에서 환우들을 간호하였으며, 중년에 들어서는 독거노인을 위한 도시락 배달 봉사와 다문화 가정 돌보기 등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여 대전광역시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하였다. 50대 후반, 문득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백두대간 종주에 도전하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지금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향기를 직접 체험하려고 국토대장정을 계획하고 있다.
  
■ 차례
글을 시작하며


아들아 함께 가 줄래?
엄마, 힘 내세요
죽더라도 산에 가서 죽자!
산에는 꽃이 피네
저마다 별 하나씩 켜 들고
들꽃 한 아름 껴안고 산을 내려오다
길손인 나를 반갑게 맞아 주는 산!
맞아! 저 산을 지나왔어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뫼가 없다
소금과 물이 생명을 지킨다
내가 찾던 산이, 이제는 나를 부른다
는개 속에서 대간의 마루금을 걷다
대간 길은 솔 내음에 물씬 젖고
쪽빛 동해 바다가 보이는 해동삼봉(海東三峰)을 걷다
대간 길 잡목 숲에 핀 서리꽃의 아름다움
덕유산 대간 길은 산죽만 푸르러
바람의 길, 대간 길에는 단풍이 붉게 물들어
산이 나를 내뱉다
산이 내 몸을 일으켜 세운다
대간 길 마루금에서는 역사의 숨결이 느껴진다
백두대간 설경에 도취되다
대간 길에는 낙화담에 몸을 던진 여인들의 이야기가 꽃처럼 피고
기어이 봄은 겨울을 비집고 온다
이 아름다운 설원에 잠시 머물렀다는 기억만으로도 행복
노란제비꽃에게 인사하다
힘든 코스일수록 완주 후 기쁨이 더 크다
초록의 새순은 꽃보다 예쁘다
한줄기 빛의 고마움에 생이 보여
산새들이 아침을 깨운다
대간 길에는 홀로 산딸기가 익어 가고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이 내가 선다
무서움은 어둠이 아니라 마음에서 만들어진다
남편과의 사랑이 고랭지 채소처럼 푸르길
깍지벌레, 그 생명 키움의 신비를 배우다
석병산 일월문을 통해 본 신천지
태풍 속에 대간 길에 오르다
설악을 품다
태백산에 오르지 않고 누가 산을 말하는가
산은 안식년에도 쉴 수가 없구나
드디어 골인 지점인 진부령에 당도하다


 




걸어가야 내 길이다


글을 시작하며

가사 활동과 봉사 활동이 일상이던 내가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나는 보이지 않았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먼저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을 먹게 된 것이 한반도의 척추 ‘백두대간’ 종주였다.


지인의 소개로 백두대간 전문 산악회인 대전바위산장을 찾게 되었다. 산행 지식이나 경험이 전혀 없는 나에게 일천칠백 리에 달하는 백두대산 산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산봉우리를 몇 개씩 타고 넘어야 했으며, 전체 산행의 1/3에 해당하는 무박 야간 산행은 특히 많은 체력이 요구되었다. 하지만 이를 감당할 만한 체력이 없었다. 발톱이 빠지고 상처가 생기고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나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감기에 해열제를 먹으면서도, 진통제 주사를 맞으면서도 나를 백두대간의 산길에 던져 넣었다.


남이 쉴 때도 나는 걸었지만 늘 후미를 면치 못했다. 그래도 지리산에서 출발하여 마침내 종착지인 설악산 진부령에 골인하는 데 성공하였다. 골인 지점에서는 힘들었던 지난 순간들이 오히려 그리워졌다. 내 자신이 대견했다.



아들아 함께 가 줄래?

사람들은 곧잘 아들을 보고 조각상 같다고 한다. 올해로 24살인 그는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 아들이 약대 편입 시험에 낙방한 뒤로 의기소침해지고 말았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음먹고 있던 나는 아들과 함께 가고 싶다는 충동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웬만한 산꾼들도 지레 겁을 먹는다는 백두대간 종주를 오십대 후반의 여자가 꿈꾼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겨우 동네 가까이에 있는 산 몇 번 올라보고……. 가족에게 백두대간 종주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남편은 말없이 웃기만 한다. 남편의 웃음 속에는 가소롭다는 속내가 숨겨져 있다.


‘아들과 함께 걷는 백두대간 종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찼다. 40구간, 총 735.6km를 아들과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렇게 가슴 설레기를 몇 주가 지나서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들아! 엄마가 백두대간을 종주하려고 하는데 함께 가 줄래?” 아들은 처음에는 놀라는 듯했지만 흔쾌히 좋다고 했다. 이제 산행 날만 기다리면 되었다.


3월 10일, 첫 산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첫 산행은 남원 사치재 주차장에서 출발했다. 아막성(阿幕城), 낯익은 이름이다. MBC 기획특집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했던 아막성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해발 601.4m인 복성이재를 넘고 있다. 사리봉과 봉화산을 잇는 복성이재는 전북 남원시 야양면과 장수군 번암면의 경계이며 백두대간의 고개이며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능선을 20여 분 올라가자 백두대간 길과 만난다. 봉화산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이며 덕유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 남부구간의 중간 지점이다. 봉화대에 다다르자 어깨동무를 한 지리산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부지방산림청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지리산 삼봉산에서 반야봉까지 무려 16개의 봉우리가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다.


광대치에서 월경산 갈림길까지는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이다. 아들은 지친 나와 걷는 것이 답답한지 먼저 앞서갔다. 아들의 뒷모습에서 젊은 패기가 느껴진다. 월경산 갈림길에서부터는 30여 분 급경사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다. 이 내리막길에는 잡목과 잣나무가 우거져 있다. 아들은 저만치서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매만지며 서 있다.


지지리 계속 건너편 도로변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산행이 끝났다. 우리는 맨 뒤에 처지기는 했지만 22.3km를 완주한 것이다. 나는 아들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우리 대단하지?” 아들이 웃어 보였다. 그 웃음에는 완주에 대한 기쁨과 보람이 차 있다. 

  

 

저마다 별 하나씩 켜 들고</P>지리산 종주를 2박 3일 또는 3박 4일에 했다는 말은 들어 봤지만 무박 2일에 종주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던 터라 걱정이 앞선다. 밤새 걷고, 뒷날까지 걸어 18시간 내에 37km를 종주해야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산악회가 불가능한 일을 계획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야간용 헤드랜턴과 구급약, 두 끼 먹을거리, 바람막이와 몇 가지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기고는 잠깐 눈을 붙였다.


밤 11시 무렵 아파트 앞에서 지리산으로 떠나는 산행 버스를 기다렸다. 새벽 2시 10분에 지리산 중산리에 버스가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칼바위, 망바위, 법계사, 천왕봉 정상, 제석봉, 삼신봉, 촛대봉, 연신봉, 칠선봉, 덕평봉, 형제봉, 명선봉, 토끼봉, 삼도봉을 거쳐 성삼재까지의 백두대간을 걸어야 한다. 이 엄청난 고난의 길을 앞에 두고 나는 새벽 계곡물 소리와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의 아름다움에 빠져 넋을 잃고 만다.


중산리 통제소에서 산불 교육을 받고 4시가 되어서야 산으로 들어섰다. 걱정이 되었는지 대장이 후미 그룹인 우리와 함께 했다. 얼마를 걸었을까? 칠흑처럼 어두운 산 속에 앞에도 뒤에도 산을 오르는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뒤따라와야 할 대장도 기척이 없다. 갑자기 무서움이 밀려왔다.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버려진 듯, 공포감에 사로잡혀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한다.


휴대폰에 대장 전화번호가 있어 다행이다. 대장은 내가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다며 올라갔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라고 한다. 허겁지겁 뛰어서 한참을 내려오자 불빛이 보인다. 대장이 기다리고 있다. 빠르게 가겠다는 욕심이 하마터면 큰 화를 부를 뻔했다.


칼바위를 지나 망바위(1,177m)에 다다랐다. 중산리를 출발한 지 2.4km를 온 것이다. 법계사까지는 아직 1km를 더 가야 한다. 어둠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다. 법계사에 당도하자 지리산 구석구석 아침 햇살이 번지기 시작한다. 나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한다. 무엇보다 나는 짧은 시간에 지리산의 밤과 새벽과 아침이 어떻게 변하는지 경이로운 광경을 볼 수 있었던 것에 감사를 하며…….


중산리를 출발해서 3.4km, 앞으로 2km를 더 가야 천왕봉에 당도할 수 있다. 드디어 도착한 지리산의 정상 천왕봉(1,815m)에는 많은 등산객이 운집해 있다. 천왕봉에서 장터목으로 가는 길은 눈 쌓인 겨울철에 걸어야 제맛이라고 한다. 해발 1,898m 제석봉에서부터는 완만한 돌길이다. 장터목에서 바라본 백무동 계곡은 깊어 보인다. 백무동이나 피아골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때문에 낯익은 이름이다.


장터목에서 잠시 아침 허기를 채우고 2km를 걸어 촛대봉에 도착했다. 촛대봉 내리막길 습지에 노앙동이나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연신봉(1,651m)에서 바라본 세석평전에는 진달래가 붉게 물들어 있다. 뒤돌아보니 지나온 천왕봉이 운무에 갇혀 멀어져 가고 있다. 선비샘에서 목을 축이고 물통에 물을 채웠다. 나란히 서 있는 바위 형제봉은 바위 틈새에 자란 형제 소나무가 더 눈길을 끈다.


삼도봉에는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를 아우르고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 됨을 기리기 위해 1993년 10월에 세웠다는 삼각형 표지판이 있다. 삼도봉에서 보면 북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반야봉이다.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일품이라고 한다. 밤 9시, 노고단을 거쳐 성삼재에서 지리산 종주가 끝났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뫼가 없다

오늘 야간산행은 버리미기재를 출발해서 대야산, 조항산, 청화산을 거쳐 늘재에서 산행을 마감하는 총 17.5km. 빠른 걸음으로 9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코스다. 특히 대야산은 백두대간 중에서도 오르기 힘든 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1시 50분에 버리미기재를 출발했다. 버리기미재는 480m의 한적한 고개다. 속리산국립공원 측에서 희귀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버리미기재에서 문장대 구간에 안식년을 선포,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입산 금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감시원의 눈을 피해서 밤에 몰래 도둑 산행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약간은 부끄러웠다.


랜턴 불빛들이 산속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얼마 걷지 않아 암벽 지대가 나타난다. 곰이 넘어 다녔다고 해서 붙여진 곰넘이봉에 도착했다. 낮에는 장성봉과 막장봉, 애기암봉을 볼 수 있는 조망 터라는데 구름마저 가득 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는 지척을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불란치재에서 반 시간 정도 가파른 길을 올라서자 촛대봉이다. 시간은 3시 50분. 그런데 선두가 길을 잘못 잡은 것인지, 20여 분을 힘들게 걸었는데 다시 촛대봉까지 돌아오는 일이 생겼다.


속리산국립공원 구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대야산(930.7m)은 소문만큼이나 험난한 코스였다. 하지만 천태산에서 밧줄을 탔던 경험이 도움이 되어서인지 오히려 밧줄을 타고 암벽을 기어오르는 것은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다.


5시, 정상에 오르자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한다. 여명 사이로 백화산과 조령산 그리고 멀리 월악산이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낸다. 앞으로 가야 할 조항산과 청화산이 나를 향해 가물가물 손짓을 한다. 6시 30분, 집채바위에서 아침을 먹는다. 암벽을 오르고 내리기를 여러 차례, 고모령에 도착한다. 고모령은 고모치라고도 하는데, 전설에 따르면 고모와 질녀가 서로 의지하며 살다가 질녀가 그만 병이 들어 죽자 슬픔에 식음을 전폐한 고모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말았다고 한다.


빗속에 조항산을 향해 걸었다. 고모령에서 30분여 힘들게 오르자, 조그마한 암봉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조항산 정상(951m)이다. 희양산 바위벽을 조망해 본다. 한때 채석장으로 파헤쳐진 모습이 흉물스럽다. 조항산에서 청화산까지는 멀기만 하다. 크고 작은 봉우리를 수없이 넘는다. 지친 몸은 이미 내 몸이 아닌 듯 앞을 향해 본능처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12시, 드디어 청화산에 도착했다.


청화산에서 늘재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이다. 얼마전까지 바위를 오르면서 힘들어 포기하려 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없어지고 ‘나는 백두대간을 종주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이 다시 생긴다. 능선은 완만하지만 체력이 모두 소진된 듯 늘재가 멀게만 느껴진다. 늘재로 가는 길에 정국기원비를 세워둔 곳에 이른다. 비석에는 “靖國祈願壇 白頭大幹中元地”라 쓰여 있다. 아마도 이곳이 백두대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곳이기에 나라가 조용하고 평화스럽기를 기원하는 제단을 만든 것 같다.


긴 산행이 끝나 늘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11시간 30분의 대장정이 끝났다. 버스에 오르자 이번에도 먼저 오른 일행들이 박수로 맞아 준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이번에도 해냈다는 자랑스러움이 가슴을 뿌듯하게 해준다.



산이 나를 내뱉다

어제까지 김장을 힘들게 한 탓인지 몸이 예전 같지 않게 무겁다. 그래도 버스에 오르면 갈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서 밤 11시에 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2주 전에 날머리였던 삼수령을 들머리로 건의령(한의령), 구부시령, 덕항산, 지각산, 지암재, 큰재, 황장산, 댓재로 이어지는 총 26km의 구간이다.


새벽 3시 50분, 삼수정이라는 육각정자로 이어지는 돌계단에 올라선다. 왼편으로 3개의 기둥으로 된 조형탑이 있는데 대간 길은 조형탑 뒤 숲길로 이어진다. 어디다 정신을 놓았는지 랜턴 충전기도 준비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온 것 같아 다른 때와 다르게 착잡하다.


5시 30분, 건의령에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삼수령에서 출발하여 6km를 지나고 있다. 여기서부터 구부시령까지는 6.9km이다. 가파른 경사를 한참 올라선다. 대간 길은 우측 90도 방향으로 꺾어서 급경사로 내려간다. 좌측으로 목장이 보인다. 다시 급경사 오르막길을 오른다.


구부시령에 거의 다 왔을 무렵,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땅에 나뒹굴고 말았다. 전날 너무 힘들게 일을 해서 다리에 힘이 풀린 것도 있겠지만 산에 취해 잠시 긴장이 풀린 탓에 넘어지고 만 것이다. 왼편 허벅지에 감각이 없다. 일행의 도움으로 일어나 절뚝거리며 걸어 본다. 어디를 다쳤는지, 얼마나 아픈지를 걱정하기보다는 뒤처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절뚝거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긴다. 잡목 지대를 지나 아홉 명의 지아비를 모신 여인의 한이 서려 있다는 전설의 고개 구부시령에 도착하여 습관처럼 돌탑에 돌 하나를 올려놓는다.


감각이 없던 허벅지가 시간이 갈수록 부어오르기 시작하더니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 이를 악물고 덕항산(1,071m)에 도착한다. 볼품없이 조그마한 표지석만이 덕항산 정상임을 알려 준다. 산불 감시 초소만이 덩그렇게 있을 뿐 잘 알려진 이름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우측 절벽 밑으로 환선굴 주차장이 보이고, 우측 시계 방향으로 대간 능선 자락의 고랭지 채소밭이 보인다.


덕항산에서부터 1시간, 사고 후 3시간이 지나 환선봉(1,079m)에 올랐다. 이제 다리는 내 몸이 아니라 거추장스런 고통의 덩어리로 느껴진다. 속이 메스껍고 식은땀이 난다. 지암재까지는 1시간 이상 가야 한다는데 허벅지는 입고 있는 바지가 터질 정도로 부어 있다. 대장이 걱정이 되는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면 구조 헬기를 부르겠다고 한다.


대장은 후미 일행을 보내고 나를 부축해서 하산을 한다. 운이 좋았다고 할까? 내려오다 대간 길이 아닌 산골 도로를 만나 걱정을 한시름 놓고 있던 차에 마침 지나는 트럭이 있어 얻어 타고 귀네미마을 입구까지 올 수 있었다. 그곳까지 산악회 버스를 불러 타고 댓재까지 왔다.


댓재에는 선두 그룹의 10여 명이 벌써 도착하여 뒤풀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뒤풀이를 준비하던 일행들이 약과 붕대를 챙겨다 주는가 하면 얼음주머니를 만들어 와서 허벅지 위에 올려주고 간다.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또 사고로 인해 따뜻한 동지애를 느끼게 된 것도 이번 등반의 소득이다.



드디어 골인 지점인 진부령에 당도하다

오늘이 장장 천칠백 리 백두대간을 완주하는 날이다. 들머리인 미시령을 출발, 상봉, 신선봉, 암봉, 대간령, 마산봉, 알프스리조트, 흘리마을을 거쳐 진부령까지 가야 한다. 백두대간 마지막 코스라고 했더니 친구가 따라나선다.


대장이 나눠 준 지도를 보니 처음부터 오르막길이다. 새벽 3시 30분 안식년으로 통제구간인 미시령 입구의 철책을 넘자 정말 급경사 오르막인 깔딱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절개지 경사를 오르고 우측으로 이동통신지국을 지나 능선봉에 오른다. 암봉에 내려서면 바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너덜지대와 숲길이 반복된다. 나무들이 물기를 머금고 있어 미끄럽다. 상봉에서 신선봉으로 가는 길은 암벽이 가파르고 좁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상봉(1,239m)에 올라서자 먹빛 밤바다를 배경으로 속초 시내의 야경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상봉에서 신선봉으로 가는 대간 길은 로프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직벽이 대충 6~7개는 되는 것 같다.


화암재를 지나면 다시 가파른 바위들이 널려 있는 너덜지대를 오른다. 신성봉(1,203m) 표지석이 커다란 바위에 부착되어 있다. 신선봉에서의 조망은 백두대간의 마지막 산행이라는 아쉬움 때문인지 눈에 깊이 담아 두기로 한다. 신선봉을 내려서 급경사의 너덜지대를 지나자 완만한 숲길이 나온다. 산길은 마치 인생길과 흡사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험한 너덜길이 있으면 완만한 숲길이 있다. 산길에서 인생의 이치를 깨닫는다.


산양과 담비와 수달과 가막딱따구리 같이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과 박쥐나무와 정향나무 등 희귀목 보호구역인 대간령과 산수화를 품에 안고 있는 듯한 병풍바위봉을 차례로 오른다. 그리고 진행할 마산봉과 멀리 금강산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백두대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마산봉에 오르자 지리산에서 출발해서 우리 땅, 한반도의 척추 마디마디인 수많은 봉우리들을 걸어 이제 그 마지막 봉우리에 올랐다는 감회에 잠시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봉우리를 내려 진부령에 당도하면 백두대간의 대장정이 끝나게 된다.


백두대간 종주는 내 인생에서 아주 작은 목표였다. 이제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고 싶다. 도전은 내 자신이 살아 있다는 확신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인 듯하다.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을 걸었던 마음이면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백두대간을 종주할 수 있도록 용기와 도움을 준 후미 그룹 일행과 특히 산악회 대장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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