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램프

   
이종환
ǻ
원앤원북스
   
13000
2006�� 04��



■ 책 소개
KT&G vs 아이칸, 외환은행vs 론스타, SK vs 소버린, 포스코의 향방 등 현재 우리 자본시장은 외국인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그들의실체와 적대적 M&A는 과연 무엇인가?

 


외국 자본과 국제 금융의 실체를 파헤치고 있는 본격 금융 소설로 막강한 정보력을 바탕으로전 세계를 대상으로 투자하는 진정한 글로벌리스트인 헤지펀드 회사의 투자 전문가를 주인공으로, 그가 벌이는 M&A 과정을 흥미롭게보여준다. 이는 곧 국제 금융의 정점에 있는 헤지펀드가 적대적 M&A를 실현하는 과정. 국제 금융전문가인 저자가 직접·간접 경험하고 행한사례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강점을 지녔다. 


■ 저자 이종환
서강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재무학 MBA를 받았다. 삼성물산 국제금융부에 입사한 후 Rainier National Bank 서울 및 시애틀에서금융·전자·건설 신용분석 애널리스트로 활동했으며, 쟈딘플레밍증권 아시아채권 딜러, 금융·전자·건설의 신용분석 애널리스트, 상무이사,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서울의 전무이사, 마이에셋자산운용(주)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006년 현재 마이에셋자산운용(주) 부회장으로있다.

■ 차례
추천의 말 -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한국 금융의 미래를 예고하는책!
지은이의 말 - 냉정한 국제 금융의 흐름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나?


프롤로그 - 조용한 시작
오디세이호의 출범, 그리고 운명적인 만남
은밀한제안
마지막 휴가
철저한 사전 준비
목표물을 찾아서
코드명 KP1과 KP2, 그리고 매직램프
순조로운출발
미끼를 문 물고기
짜릿한 손맛
배신의 계절
또 하나의 먹잇감
뉴욕 증시의 폭락
흐리고 비, 폭우 그리고해일
최악의 사태
정치적 사태 후 증시는 반등
세진 정 회장의 역공
중무장한 중세 기사가 죽은 이유
에필로그 -승자의 인터뷰


이 책을 읽기 위해 꼭 필요한 금융 용어들




매직램프

프롤로그 - 조용한 시작
2008년 봄,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신흥 헤지펀드 오디세이의 서울 사무실. 이재성에게 보고서를 넘겨받은 박지수는 오디세이의 회장인 오웬과 공동창업자인 루퍼트에게 연락을 했다. 매직램프라고 이름을 붙인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의 기업 두 곳을 사냥하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지수는 행동개시에 들어갔다. 지수는 홍콩 사무실의 부소장인 알프레드에게 여러 가지 사항을 지시했다. 알프레드는 한국의 한 증권회사를 통해 주식 사자 주문을 냈다. "오퍼튜니티 구좌로 100억 원, 이머징 구좌로 100억 원 사자 주문 부탁합니다. 어제의 종가 더하기 3% 내에서 시장 가격으로요. 그리고 전일 거래량의 10%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문 체결해주세요." 알프레드는 다른 두 군데의 증권회사에도 전화를 걸어 같은 주문을 접수했다.


당일 거래에 대한 보고를 받은 지수는 매일 이 정도 선에서 주식 매수를 마칠 것을 알프레드에게 지시했다. 조금 더디기는 하지만 이처럼 천천히 주식을 사 모으면 주식의 취득 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불필요한 시장의 관심도 피할 수 있었다. 보름간 계속해서 주식을 사 모으고 있던 오퍼튜니티펀드와 이머징펀드는 어느 날 조용히 세진자동차부품회사와 마이티솔루션의 주요 주주가 되었다. 세진자동차의 지분 4.8%, 마이티솔루션의 지분 4.7%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지분이 5%를 초과하면 감독기관에 주식을 사는 목적을 밝혀야 하고, 이후의 지분 변동도 일일이 신고해야 하기 때문에 주식을 더 사지 않기로 했다. 알프레드는 대주주인 오퍼튜니티펀드와 이머징펀드의 운용전문가 자격으로 세진자동차부품회사와 마이티솔루션 두 기업의 경영층과 수시로 접촉하며 정확한 회사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오디세이호의 출범, 그리고 운명적인 만남
7년 전, 월가의 한 증권회사에 다니던 아놀드 오웬은 부하직원 프레드 루퍼트와 합심해 헤지펀드를 창업했다. 이로써 오디세이펀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본점은 세금과 규제가 덜한 바하마에 개설했고, 자본금은 1천만달러였다. 처음에 오웬은 경제 위기에 처한 멕시코 정부 채권을 사들였다. 회사의 자본금은 물론이고 몇몇 투자가의 돈 2천만달러,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 7천만달러를 합해 자본금의 10배에 가까운 총 1억달러를 가지고 풀배팅을 한 것이다. 한 달 만에 자본금의 30%인 3천만달러를 챙길 수 있었다. 대출금에 대한 이자비용을 지급하고도 100% 가까운 투자 수익을 챙겼다. 두 번째 목표물은 중국이었다. 증권 발행 시장에서 기업공개를 앞두고 있는 기업에 접근해 공모 예정가의 1/3 가격에 주식을 미리 사 모았다가, 그 주식이 상정될 때 비싼 가격으로 처분해 큰돈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디세이는 그들에게 자금을 제공하고 이익금을 나눠가졌다. 세 번째 목표물은 유럽이었다. 이자율이 높은 이탈리아 국채와 이자율이 낮은 독일 국채를 동시에 사고판 후, 일정 시점이 지나면 그것들을 동시에 팔고사는 금리와 외환 파생 거래를 통해 큰 수익을 올린 것이었다.


현재 오디세이는 전세계적으로 5개의 지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직원 수는 50명쯤 된다. 2억달러(2천억 원)로 증가한 자본금과 고객이 맡긴 예탁금 10억달러(1조 원), 몇 개 은행으로부터 빌려 투자하고 있는 돈 50억달러(5조 원)는 오디세이펀드, 오퍼튜니티펀드, 이머징마켓펀드 등 세 군데로 나눠 투자운용 중이다. 오디세이의 목표는 절대수익의 창출이었다.


은밀한 제안
런던에서 각 지역본부장이 모여 회의를 끝낸 뒤, 오웬은 지수에게 따로 만나자고 제안했다. 오웬은 지수에게 미국의 저명한 왓슨컨설팅이 만든 한국의 M&A시장에 대한 연구서를 건네주며 늦어도 연초에는 한국에 가서 사무실을 열고 당분간 한국과 홍콩 두 군데를 동시에 관리하라고 했다. "우리가 인수할 만한 우량기업을 몇 개 찾아보게. 이 중에서 실제로 한두 개 기업의 주식은 매수해 경영권을 인수할 생각이네. 꼭 우량기업이어야 하네. 최악의 경우 경영권 인수에 실패하더라도 우리가 매수한 기업의 주가가 폭락할 가능성이 작아야 하니까. 예전에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가 오른 적이 있는 기업은 피하도록 하게. 그런 주식은 꼭 가격이 떨어지거든. 우리의 일차적인 목표는 경영권 자체가 아니라 경영권 거래를 통한 수익 창출일세. 우량기업의 주식을 매수해 주요 주주가 된 다음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주주와 협상할 생각이네. 상당수 한국 기업의 대주주 주식 소유 비율이 낮아서,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걸세. 투자금은 총 10억달러 정도. 즉 1조 원에서 많으면 2조 원까지 생각하고 있네. 자금 동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네." 한국의 기업은 민영화 과정에서 잘게 쪼개져 잘 분산된 기업의 소유 구조를 갖고 있어 M&A의 좋은 목표물이 된다. 한국에는 현재 규모가 큰 토종 자본이 없으므로 당분간 해외자본들이 그런 기업들을 사겠다고 설치고 다닐 것이다.


철저한 사전 준비
지수는 스트래티지앤서치 서울사무소의 더그 로렌트 소장에게 연락해 서울사무소 오픈을 위한 준비를 맡겼다. 감독원에 제출할 지점 개설 신청과 사무실 임대 계약, 채용 등 모든 준비가 끝났다. M&A에 대한 보고서도 받았다. 잠재적인 M&A 대상 기업은 100여 개였다. 


목표물을 찾아서
지수는 스트래티지앤서치와 함께 M&A 보고서를 작성한 이재성을 따로 만났다. 이재성은 순수 국내파지만 상당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보고서에도 언급했듯이 한국의 M&A 시장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교과서적인 적대적 M&A 방어책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뭐랄까, 나름대로 독특한 방어전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호 지분, 위장 지분, 여론과 언론, 악성 루머 퍼뜨리기 등을 적절하게 조합해 그들의 경영권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영권 분쟁에서 설사 패배하더라도 대주주가 깨끗이 승복한 경우는 거의 없었죠."


지수는 2월 초에 오웬을 만나 보고할 내용을 정리했다. 오웬이 요구한 대로 다섯 회사를 골라내는 작업이었다. 약 1조 원 정도로 51%의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회사 중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회사를 찾아내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주가의 움직임, 대주주의 지분 현황, 위장 지분과 우호 지분, 회사와 대주주의 특수 거래, 회계장부에 잘 나타나지 않는 부외부채, 대주주와 경영층에 대한 여론과 평판 등을 동시에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코드명 KP1과 KP2, 그리고 매직램프
긴 회의를 거쳐 사냥 목표가 정해졌다. 세진자동차부품회사와 마이티솔루션. 세진자동차부품회사는 설립된 지는 40년이 넘었지만 한 번도 손실을 기록한 적이 없었다. 창업주의 타계로 아들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에 임원진을 대거 교체하고, 의류 쪽으로 사업 영역을 다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주력 제품은 자동차 부품이고,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마이티솔루션은 코스닥의 간판기업으로 주력 사업은 인터넷 상의 보안과 검색이다. 7년 전 KAIST 수석 졸업생들이 창업투자회사의 자금을 지원받아 창립했다. 보안과 검색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술 수준이 매년 향상되고 있는데, 최근 일 년간 주가 상승이 가장 두드러진 기업 중 하나다.  


"앞으로 대화나 교신을 하면서 항상 코드명을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이제부터 세진자동차부품회사는 KP1(Korea Project 1), 마이티솔루션은 KP2(Korea Project 2)로 부르도록 하겠네. 그리고 이들 회사의 주식을 매수해 이익을 챙기고 자금을 회수할 때까지의 세부 일정과 행동 지침을 나타내주는, 일종의 마스터플랜은 매직램프라 부르기로 하겠네." 오웬이 말했다.


순조로운 출발
세진자동차부품회사의 정기용 회장은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며 파리에서 공부하다 부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경영권을 잇게 되었다. 그가 갑자기 회사 경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약혼녀 김희숙 때문이었다. 김희숙이 앙리패션을 경영해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2천억 원에 달하는 투자자금을 어디서 만들어내느냐였다. 정회장의 지분은 생각보다 많았다. 정 회장과 모친 명의로 된 지분이 14%, 위장지분이 4~5%, 전임회장과 특별히 친분이 있던 국내의 삼영전자가 9%였다.


마이티솔루션은 대개 신생기업이 그렇듯, 이사진들의 업무 분담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KAIST 출신으로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정홍식과 이혁재가 전반적인 회사 관리나 경영보다는 연구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래서 전문 경영인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대주주는 20%를 보유한 동북아기술개발창업투자와 5%를 보유한 정부의 중소기업진흥청이었다. 정흥식과 이혁재는 각각 3%를 보유하고 있었다.


미끼를 문 물고기
루퍼트는 홍콩에 있는 세계적인 투자회사 제니스 사모펀드 아시아본부의 폴을 찾아갔다. 2천억 규모의 펀드를 모으는데 오디세이가 1800억 원을, 제니스 사모펀드가 200억 원을 대고, 이 돈으로 세진이 발행하는 전환사채를 인수하기로 했다. 이자율은 파격적인 3%. 이자 수입은 오디세이가 1, 제니스 사모펀드가 2를 갖고, 주식의 전환권리는 모두 오디세이가 갖기로 했다. 다음날 폴은 제니스 호라이즌펀드의 설립 신청서를 당국에 접수했다. 수일 내로 또 하나의 펀드가 탄생하는 것이었다. 이 펀드가 세진자동차의 전환사채를 인수할 것이었다.

오디세이 서울사무소의 부지점장인 신우성은 세진자동차의 김경무 전무를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 이때 신우성은 홍콩의 펀드회사 제니스 호라이즌이 한국에서 투자처를 찾고 있다는 말을 흘렸다. 김 전무는 이 투자가 성사되면 앙리패션을 인수할 자금이 부족해 고심하던 정 회장에게 점수를 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짜릿한 손맛
2주일 후, 홍콩에서 조인식이 있었다. 정 회장의 생각에 이번에 발행하는 2천억 원짜리 3년 만기의 해외전환사채 조건은 아무리 봐도 괜찮아 보였다. 지금 오디세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과 전환사채를 전환해 생길 주식을 합하면 세진자동차의 주식을 13% 정도 보유하게 된 셈이었다. 정 회장의 지분보다 조금 적었지만 매직램프를 실행하기에는 전혀 모자라지 않았다. 지수는 알프레드에게 전화를 걸어 세진의 주식을 더 사라고 지시했다.


지수는 세진의 최동창 사장을 만나 자신이 세진의 경영권을 인수하려 한다고 말하며 최 사장의 자리를 보장해주는 대가로 협조해달라고 한다. 정 회장의 선친과 함께 일생을 바쳐 세진을 만들어온 최 사장이지만 이대로라면 자신의 자리가 없어질 것을 염려한 그는 오디세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배신의 계절
정기용 회장은 김희숙과 자축의 밀월여행을 떠난 뒤였다. 김 전무는 급하게 정 회장에게 연락했다.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에는 오디세이가 세진을 인수하려 한다는 기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세진의 주가는 폭등하고 있었다. 정기용은 이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당장 여행에서 돌아온 정 회장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정 회장은 다음날 아침, 회사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삼영전자 박정근 회장을 만나기로 했다. 2대 주주인 삼영전자의 협조만 있으면 경영권 방어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확답을 하지 않았다.


오디세이는 세진에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경영진의 교체와 신임 이사의 선임을 요구할 참이었다. 최동창 사장은 이제 오디세이를 편들고 있었다. 정 회장 측은 관계 기관에 진정하거나 여론을 통해 오디세이에게 압박을 가해보는 것을 생각해보았지만 별로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오디세이 서울사무소가 고문으로 선임한 전직 3선 국회의원 출신 허달풍이 이미 전방위 로비를 펼친 뒤였기 때문이다.

세진은 불스앤베어스라는 세계적인 증권투자 회사와 M&A 자문계약을 체결했지만 오디세이에 대항할 뾰족한 수가 없었다. 불스앤베어스는 표 대결을 대비해 대주주만이 아니라 소액 주주들과도 접촉해야 한다고 했다. 전환사채를 갖고 있는 홍콩의 폴 사장은 오디세이에 손을 들겠다고 했다. 주식으로 전환하면 7.5% 정도 되는 물량이었다. 지수는 세진의 주가가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주식을 2% 정도 더 샀다.


또 하나의 먹잇감
유니버스오라클의 척 웨인이 오웬에게 마이티솔루션을 인수하겠다고 했다. 지수는 동북아창업투자의 하진태 대표를 여러 차례 만난 뒤 거래 조건을 제시했다. "저희들의 거래 조건은 다음 번 주주총회에서 저희가 원하는 사람을 대표이사로 선임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동북아창업투자가 보유 중인 마이티솔루션의 주식을 전량 저희에게 적당한 가격으로 넘겨주십시오. 주식이 280만 주, 20%가 맞지요? 대신 3천억 원의 투자 자금을 모아 동북아창업투자에 지원하겠습니다." 한번 돈을 투자하면 3~5년 정도는 투자금을 환수하지 않는 창업투자 업계의 관행으로 보아 3천억 원은 굉장히 큰 규모였다. 얼마 후 협상이 이뤄졌다. 동북아창업투자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신임 대표이사가 선임되고 한 달 이내에 지수 측이 인수하기로 했다. 인수 가격은 그날을 기준으로 직전 일주일의 평균 주가로 정해졌다. 지수는 3천억 원의 자금을 대는 것은 넥스트제네레이션펀드라는 외국계 자금이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자금 납입은 펀드 설립 후 한 달 내로 전액 불입 완료하겠다고 했다. 


마이티솔루션의 공동대표인 정 사장과 이 부사장은 전문 경영인이 경영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 쉽게 따랐다. 대신 연구개발비의 인상을 보장해달라고 했다. 지수는 기존의 이머징펀드가 아닌 새로운 펀드를 동원해 주식을 추가로 매수했다. 사실 지수는 이미 마이티솔루션의 등록 폐지에 대한 방안을 확정해놓은 상태였다. 코스닥 기업의 등록 폐지 사유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여러 가지 있다. 주식 소유의 미분산으로 인한 유동성 부족도 그 사유로 인정되었다. 즉 대주주가 전체 주식의 80% 이상을 소유하면 시중의 유동 주식이 줄어들어 주식의 거래량이 현저하게 줄게 된다. 이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코스닥위원회는 해당 기업의 코스닥 등록을 취소할 수 있었다.


얼마 후 마이티솔루션의 임시 주주총회는 조용하게 끝났다. 신임 대표이사로는 지수가 내세운 대기업 CEO 출신인 홍기호 회장이 취임했다. 기존 이사 중 한 명이 퇴진하고 대신 오디세이 홍콩지점의 알프레드가 새롭게 이사로 선임되었다. 동북아창업투자의 제청으로 주요 주주인 이머징펀드를 대표한 선임이었다. 그동안 넥스트제네레이션펀드라는 생소한 이름의 스위스 국적 펀드가 4.7%를 매수해 주요 주주로 등장한 것도 대부분 몰랐다. 게다가 이 펀드의 소유주가 미국의 유니버스오라클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동북아창업투자에 3천억 원의 자금을 대는 원래 출처가 유니버스오라클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뉴욕 증시의 폭락
정상이 코 앞에 있었다. 오웬과 루퍼트, 지수는 함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금요일 뉴욕시장의 주가는 FRB(연방준비은행)가 조만간 또다시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FRB는 모처럼 살아난 경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금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본격적인 경기 회복과 함께 치솟는 물가와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금리를 대폭 인상할 것이라는 얘기가 떠돌면서 주가가 급락한 것이다.


흐리고 비, 폭우 그리고 해일
텔레비전을 바라보던 세 사람은 동시에 경악했다. 미국 증시가 월요일 아침 문을 열자마자 폭락한 것이다. 지난 주말 큰 폭으로 하락한 증시가 또다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만약 오늘도 뉴욕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진 채 마감한다면 전 세계 증시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인권 유린과 위조 지폐 문제로 사사건건 대립하던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해묵은 핵과 미사일 문제로 다시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북한은 북태평양 모처를 향해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감행했다. 미국과 일본은 즉각 반응했다. 태평양 지역에 주둔하는 전 미군에게 비상령이 떨어졌고, 남서 태평양을 순항 중이던 주력 항공모함은 이미 한반도로 이동을 시작했다. 일본의 자위대도 출동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대기 중이었다.


증시는 하락하고 국제 금값과 유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공황 상태였다. 세진자동차와 마이티솔루션의 주가도 40% 정도 하락했다. 오디세이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현재 자금 상황을 물어보는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원금을 회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한 곳이라도 원금을 회수한다면 오디세이는 끝장이었다.


최악의 사태
모건은행이 오디세이의 실시간 자산과 부채현황표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모건은행은 오디세이의 최대 대출은행이었다. 실시간 자산과 부채현황표를 받은 헤지펀드는 2주일 이내에 정확한 자산, 부채의 현황과 변동사항을 요청한 은행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거짓 보고나 보고 지연은 형사처벌 대상이 되었다. 한 달 전과 비교해보면, 오디세이의 부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증시 폭락 때문에 자산 규모는 거의 30% 이상 줄어들어 있었다.


퍼시픽퍼스트은행(PFB)이 오디세이에게 대출금 1억달러 전액을 일주일 내로 갚으라고 통보해왔다. 대출금을 조금이라도 회수하기 위해 다른 은행보다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PFB은 대출계약서의 불가항력 조항을 들고 나왔다. 그 조항에 의하면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의 사태가 발생하면 즉각적인 대출금의 상환을 요구할 수 있었다. 오디세이는 만사를 제쳐두고 새로 자금을 대줄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웬은 홍콩의 알프레드에게 연락해 홍콩과 중국의 10대 부자리스트를 보내달라고 했다. 오웬은 하버드대학 동기이며 북경대학의 국제경영대학원 원장인 첸에게 리스트를 불러주며 절친한 사람이 있으면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첸은 홍콩의 부동산재벌인 홍콩 4위의 거부 항룽을 소개시켜주었다. 오웬과 지수는 선전(심천)으로 항룽을 찾아갔지만 항룽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오디세이는 칠레 정부 채권투자와 홍콩 주식을 대상으로 한 시장 중립형 차익 거래를 처리했다.    


정치적 사태 후 증시는 반등
한국의 신임 대통령이 지난 주에 비공식 채널을 통해 내놓은 남한과 북한, 미국과 일본의 4자 정상회담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정상회담에서는 북미 간 국교 수립 추진, 북한의 핵 프로그램 전면 폐지, 북한의 경제 발전을 위한 100조 원 규모의 기금 설립, 북한의 국경지역 전면 개방, 일본의 핵 보유 금지 확인 등을 합의했다. 대부분 기업의 주가가 하루 상승 제한 폭인 15%까지 올랐다. 정치적인 사태나 테러 사고로 인해 하락한 주가는 곧 반등한다는 속설이 입증된 것이다.


주가 조작으로 오디세이를 감독원에 고발했던 세진자동차의 주주들은 민원을 철회했고, 모건은행도 부채현황표 작성이 필요하지 않다고 알려왔다. 주가 상승으로 파산의 위험이 없어진 마당에 굳이 오디세이를 자극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얼마 후, 마이티솔루션의 최대주주가 동북아오디세이 조인트펀드(동북아창업투자+오디세이)에서 넥스트제너레이션으로 바뀐다는 보도가 나갔으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지수는 오웬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이제 유니버스오라클의 마이티솔루션 인수 계획은 거의 완성 단계에 와 있습니다. 아마도 연말 이전에 넥스트제너레이션펀드는 지분의 80% 이상을 인수하게 될 것이고, 그 다음 이 회사의 등록을 취소시킬 겁니다."


세진 정 회장의 역공
오디세이는 북미 정상회담과 주가 상승으로 사회 분위기가 다소 이완된 이때 세진의 주식과 홍콩의 전환사채를 처리하려 했다. 그러나 정 회장이 계약을 보류하자며 심하게 낮춘 가격을 제시했다. 그 가격에 거래를 하지 않는다면 오디세이를 주가 조작과 불공정 거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했다. 정 회장은 제니스 호라이즌펀드를 통해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전환사채를 발행하게 한 오디세이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경영 능력이나 인수의사가 없는 오디세이가 M&A를 언론에 흘려 주가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지수는 내부에 밀고자가 있음을 직감했다. 지수는 직원들을 모두 모아놓고 말했다. "우리들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세진의 주식을 계속해서 매수할 생각입니다. 지금 있는 주식에 조금만 더 보태면 확실하게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영권을 인수하고 나면 당분간 최동창 사장 체제 그대로 갈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적당한 기회에 외국의 메이저 회사와 연대하는 방향으로 갈까 합니다. 오늘 추가로 주식을 사기 위해 곧 세진자동차의 2대 주주인 삼영전자의 박정근 회장을 만나볼 생각입니다. 박 회장과의 거래가 여의치 않으면 현 주가보다 20~30% 정도 높게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주식의 공개 매수를 실시할 생각도 있습니다."


다음날 점심, 세진의 정 회장 측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어제의 얘기는 없던 것으로 하고 정상가격에 원안대로 계약을 하자며 정 회장이 사인한 계약서 2부를 보내온 것이다. 최 사장의 자리도 보장해주기로 했다.


중무장한 중세 기사가 죽은 이유
계약이 체결되고 며칠이 지난 후 증권거래소를 통해 2가지 공시사항이 발표됐다. 하나는 세진의 이사회가 비상장 기업인 앙리패션을 인수하기로 결의했다는 것이다. 인수대금은 총3천억 원이며, 그 자금을 반반씩 댄 세진과 제니스 호라이즌펀드가 각각 그 회사 주식을 50%씩 보유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단 경영권은 세진 측이 갖는다는 조건이었다. 두 번째 공시사항은 이미 홍콩에서 발행되어 있는 자기들의 해외전환사채를 환수하고, 그보다 나은 조건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다음날 세진의 임시 주주총회가 2주일 후에 개최된다는 공시발표가 있었다. 임시 주주총회의 개최를 요구한 오디세이는 이번 주총의 의제로 현재 공석 중인 감사 자리에 자기들이 추천하는 사람을 앉혀야겠다며,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젊은 회계사 한 명을 추천했다. 이에 맞서 정 회장 측은 판사 출신인 김진영 변호사를 감사 자리에 추천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정 회장 측은 임시 주총의 주요 안건으로 대표이사의 교체를 추가했다. 현 대표이사인 최 사장을 퇴임시키고 정기용 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공시 발표를 본 투자자와 언론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언론은 경영권의 향배를 두고 양측이 격돌하는 것이라며 흥분했다.


임시 주총은 오디세이와 세진 측이 미리 짜고 연습한 대로 끝났다. 다음 날 아침 언론은 세진에 대한 기사를 짤막하게 보도했다.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정기용이 새 대표이사에 선임됐다는 것과, 당초 예상과는 달리 오디세이는 주총장의 분위기에 눌린 듯 조용히 앉아 새 대표이사의 선임을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큰 전투를 앞두고 시작된 전초전 성격의 감사 선임에서도 정 회장 측이 일방적으로 승리했다는 보도였다.


지수는 신우성에게 지시했다. "사흘쯤 후에 오퍼튜니티 이름으로 감독원에게 세진자동차의 주식 보유 목적을 경영권 취득에서 단순 투자 목적으로 변경하는 신청서를 내세요." 실제로 오퍼튜니티의 주식 보유 목적 변경 신청이 있은 후, 세진자동차의 주식은 하루 이틀 약한 모습을 보이며 떨어졌다. 오퍼튜니티가 주식을 처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진의 주가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외국인 투자자가 세진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에 국내 투자자가 가세해 주식을 샀고, 세진의 주가는 곧 안정을 되찾았다. 사실 오퍼튜니티가 판 주식을 오디세이 측이 동원한 5개의 해외 펀드가 산 것이었다. 그리고 훗날 정 회장 측은 이들 펀드로부터 주식을 하나씩 사갔다.


정 회장은 또 다른 적대적 M&A 시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회사 정관에 황금낙하산(적대적 M&A로 기존 경영진이 실직할 경우 M&A를 시도하는 측이 이들에게 통상적인 수준의 몇 배가 되는 퇴직 위로금을 지불하도록 한 것)과 특별다수결(M&A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보통의 안건보다 더 많은 수의 지지를 얻도록 한 것) 조항을 도입했다. 오웬이 지수에게 말했다. "세진의 앞날이 더 어두워지는군. 과잉 보호를 받는 사람이나 기업은 자생력이 없어지지. 중무장한 중세의 기사가 멸망한 것과 같은 이유지."


마이티솔루션과 관련해 동북아창투 지분과 오디세이가 들고 있는 주식을 조만간 넘긴다고 보면, 넥스트제너레이션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약 57%정도였다. 3~4개월 더 사면 80%까지도 가능했다. 조금 지나면 주식이 잘 나오지 않으니 나중에는 상당한 프리미엄을 지불하더라도 공개매수를 해야 할 것이었다.  

지수가 혼자 중얼거렸다. "올해 내 성과급은 최하 300억 원은 되겠군." 보너스를 받으면 우선 20%는 부모님을 위해 쓸 생각이었다. 그 다음 20%는 애인인 로라와 자신을 위해 사용할 생각이었다. 나머지 60%는 한국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었다. 지수는 최 변호사를 통해 찾아낸 장학재단에 돈을 기부할 생각이었다.


에필로그 - 승자의 인터뷰
훗날, 한국인 최초로 국제 금융가의 거물이 된 박지수를 특집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을 찾아왔다. 그들은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마이티솔루션에 관한 것이었다. "마이티가 미국 기업에 넘어가고 난 후에 박지수 회장님을 비난하는 여론이 비등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업을 넘겨주고 인재도 빼앗겼으므로 그것은 바로 국부 유출이요, 인재 유출이다, 그래서 박 회장님을 외자의 앞잡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다는데요."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런 비난에 크게 신경 써본 적은 없었습니다. 나쁜 짓을 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셨습니까?" "당시 국제 금융가에서 두드러진 몇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보편화되고 있던 M&A이고, 또 하나는 금융과 IT의 결합이었죠. 저희가 손대지 않았더라도 다른 누군가는 마이티에 손을 댔을 것입니다. 질 나쁜 해외투기자본이 손을 댔다면 아마도 마이티는 지금쯤 공중 분해돼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KAIST 출신의 천재들도 한국에서보다 더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끝에 인터뷰는 끝이 나고 있었다. "끝으로, 지금 한국에서는 박 회장님을 모델로 삼아, 박 회장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많은 후진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글쎄요. 젊을 때부터 틈나는 대로 독서를 많이 해야 합니다. 진정한 글로벌리스트가 되기 위해선 독서만한 것이 없어요.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인다면 Think Big 하라는 것이죠. 왜, 사람들은 사실을 다 보려고 하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지 않소. Think Big 해야 많은 것을 볼 수 있소. 또 이것은 승자들이 늘 생각하는 방식이지요."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