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디의 중국고수들과 싸울 준비는 했는가

   
이병우
ǻ
멘토프레스
   
14000
2014�� 07��



■ 책 소개 


13억 인구 중 성공한 중국인들 


어찌 단순한 지략으로 돈과 명예를 거머쥘 수 있겠는가? 






40대 후반의 저자 이병우는 10여 년 전 어느 날 홀연히 중국 대륙의 땅으로 떠난다. 남아 있는 인생 후반을 중국이라는 넓은 땅에서 새롭게 도전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실전에서 만난 중국과 중국인은 이상을 안고 도착한 저자에게 참담한 실패를 안겨준다. 






이 책에는 바로 『삼국지』의 고향 중국 ‘우한’에서 악전고투하며 요식업으로 성공한 저자의 생생한 체험담이 담겨 있다. 관시로 시작해서 관시로 끝나는 중국사회. 본문에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관시이야기가 등장한다. 






서류 하나를 처리하더라도 관시가 유용하게 적용된다면서 중국에 이사 오면 먼저 집주인부터 초대하라고 권하는가 하면, 가족 6명에게 용돈 받는 중국자녀들이 당서기지위보다 높다면서 이들을 소홀히 다루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1년 이상 치밀한 계획으로 저자에게 접근, 한식당을 차린 중국아줌마 이야기도 등장하는 등 흥미로운 ‘관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남에게 듣고, 책에서 배운 단순한 중국 이야기와 지식이 아닌 저자의 10년간 생생한 체험이 담긴 이 책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현지 주재원, 한국기업가들, 큰 꿈을 안고 중국 땅에 진출하는 젊은이들에게 유익한 실전보고서가 될 것이다. 






■ 저자 이병우 


1959년생.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 의정부고와 외대에서 공부한 후 고려증권 기획조사부와 경제연구소에서 근무한 적 있다. 이후 대우금속에서 국내 및 해외 영업을 담당하는 임원을 역임하다가 회사의 독립계열사인 ‘대우메탈’에서 최고경영자를 지내기도 했다. 






증권회사에서 경제산업조사 및 상장회사의 재무 분석과 투자유망 종목을 분석하는 업무를 했다. 그 후 운영하던 회사가 신도시로 편입되면서 사업을 중단, 이후 중국시장의 무한한 잠재성을 감안하여 중국에 들어와 현재까지 약 7년 동안 거주하고 있다. 






중국에는 초기에 중국 우한시 정부의 초청으로 시정부에서 운영하는 중화문화원 중국어어학연수원장으로 초빙 받아 왔으며, 한편으로는 우창이공대학에서 중국학생들에게 한국어 및 한국문화를 가르치기도 했고 아내와 함께 한국식당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현재는 호북성 최대 한식당 체인점인 ‘한향삼천리 관리유한공사’의 전문경영인으로 있으며 호북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을 밟으며 ‘중국 중부지역 경제문화’를 중점으로 공부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 흑룡강신문과 재외동포신문 및 온바오닷컴(www.onbao.com)에 중국시장과 중국인에 관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인이 바라본 중국과 중국인(중국어)』이 있다. 






■ 차례 


서문 


추천사 






제1장 중국의 실전 관시 


실전 관시를 시작하며 


먼저 중국의 생활 관시를 이해하라 | 관시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 관시습성을 파악, 기회를 잘 포착하라 | 당서기보다 높은 사람은 그의 자녀다 | 중국 관시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먼저 투자하라 | 이사온 후 먼저 집주인을 초대하라 | 술과 담배가 관시의 전부는 아니다 |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공부하고 ‘코트라’ 인맥을 활용하라 | 중국의 시장개척 관시만으로는 절대 안 된다 | 관시를 동원해도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 멀고도 험한 중국의 내수시장 공략 | 중국법에 능한 변호사와 관시를 맺어두라 | ‘큰 관시’ 와 ‘작은 관시’ | 중국주재원 관시는 아스피린 같은 것이다 | 좋은 관시의 지름길, 중국어를 공부하고 중국인 속성부터 파악하라 | 중국인 아줌마가 내게 원했던 ‘관시’ | 중국인들의 친구관계 | 중국인의 접대문화 | 관시의 실체는 무엇인가 






제2장 한국인과 중국의 인연 


중국땅 ‘위해’에 첫발을 내딛다 


『삼국지』의 고향, 우한 입성 | 우한에서 청도까지30시간 기차여행 | 거듭되는 ‘우한’ 과의 인연, 아들의 중국유학 | 나는 이제 한국사람이 아니고 중국사람? 






제3장 중국과 중국인 


‘중국과 중국인’을 시작하며 


중국 우한사람들의 특징 | 한국에서 유학한 중국학생 | 중국인-물건 받고 배 째라 | 중국인처럼 난생처음 ‘워킹식사’ 해보니 | 중국인의 습관, 기다림의 미학 | 이해할 수 없는 중국인에 대한 나의 생각 | 중국인과 조선족 | 중국생활 ‘애증’ 의 눈물 | 중국 맛과 한국 맛 | 청년이 양국의 미래다 






제4장 장강의 물결 


‘장강의 물결’을 열며 


중국의 ‘특색 사회주의’ | 중국의 가정주부 | 녹차맛과 중국인| 때를 기다리자 | 중국에서 여름나기 | 무서운 중국아줌마 | 중국에서 운運이란 없다 | 8월에 핀 목련꽃 | 중국아줌마와 라이터 | 중국인의 사고방식, 짝퉁의 나라? | 잃어버린 반지 | 문득 떠난 홍콩여행 | 아내의 글- 중국아파트 베란다 | 제갈량의 공성계空城計 | 중국의 반부패운동과 식당 






후문




만만디의 중국고수들과 싸울 준비는 했는가


중국의 실전 관시

관시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우선은 초창기에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해야 한다. 사람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는 일을 부지런히 해야 한다. 언젠가 어느 분이 중국 사람들은 도대체 일은 안 하고 매일 밥만 먹고 다닌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외람되지만 이 사람은 아직 중국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중국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했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은 이랬다. "중국에서 하는 일이 밥 먹는 일 말고 또 있나!" 맞는 말이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한 말일까? 아니다. 중국에서 사업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의 주요업무는 중국 사람들과 밥을 잘 먹는 일이다. 나머지 일은 실무자가 하면 된다. 모든 중요한 결정과 상담은 대표가 중국 사람과 밥 먹으면서 하는 것이다.


중국 관시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먼저 투자하라

중국에서 사업하는 사람들 차 트렁크에는 항상 한 병에 수십만 원씩 하는 술과 고급담배가 서너 박스씩 있는 것을 본다. 그들은 언제 있을지 모르는 전투를 이렇게 대비하는 것이다. 전투하러 나간 사람이 무기가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중국에서의 전투는 항상 사전에 예고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의 노련한 사업가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관시를 만드는 데는 선투자가 필요하다. 중국인들은 유별나게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선물을 받으면 갚아야 한다는 사고가 강하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아무런 조건 없이 주어야 한다. 주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중국관시는 영원히 생길 수가 없다.


중국의 시장개척 관시만으로는 절대 안 된다

이상하게도 관시로 사업을 하던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오로지 관시로 풀려는 경향이 있다. 관시로 하면 단간에 해결이 가능하고 기타 중국시장에 관한 여러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쉽게 비켜나갈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아마 겪어보면 알겠지만 우리를 만난 중국인 중에서 관시가 안 좋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사람의 관시는 별 볼일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대인 중국인의 관시는 나를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정부의 정책을 위반하면서 나와의 우정을 위해 자기의 관시를 동원해줄까? 그래서 관시를 믿고 사업을 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관시를 동원해도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어제는 안 되다가 오늘은 되는 일이 중국에는 많다. 어제 안 되던 일이 오늘 저절로 된 것은 아니다. 관시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조급함이다. 중국에서는 조급하면 지는 것이고 망하는 것이다. 관시를 동원했다고 해도 절대로 서두르면 안 된다. 일을 맡긴 친구에게 부담을 주어서도 안 된다. 중국인들은 그들 나름의 접근방법이 있고 당사자와 만나서 표현하는 방법이 우리와는 다르다. 중국인의 특성상 누구에게 재촉을 받고 부담을 안으면 남을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기다리다가 그쪽에서 연락이 오면 그 사람은 관심이 있다는 표시를 한 것이다. 시작은 그때부터 하는 것이다.


좋은 관시의 지름길, 중국어를 공부하고 중국인 속성부터 파악하라

중국에 와서 느낀 점은 성공한 기업의 대표일수록 초창기에 중국어를 열심히 배운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일수록 중국어를 뒷전으로 미루는 습성이 있다. 중국 사람들은 중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을 아주 인상 깊게 본다. 중국어가 유창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중국 사람들 자신도 중국어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중국인들은 아주 속이 깊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은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중국어가 안 되면 이런 접근이 안 된다. 형식적인 관계 그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안 되는 것이다. 관시는 이렇게 형식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더 좋고 더 튼튼한 중국 관시를 원한다면 중국어는 필수적인 동시에 불가피한 요소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인과 중국의 인연

『삼국지』의 고향, 우한 입성

첫발을 내딛은 우한공항의 풍경은 참으로 낯설기 그지없었다. 무장경찰이 여기저기 서 있고 군용기 여러 대가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우한에 외국인이 아주 드물었다. 그래서 나의 중국친구는 자기친구들을 저녁에 초대하면서 반드시 나를 소개하곤 했다. 내가 우한에서는 일종의 관광 상품이 된 것이다.


첫 번째 우한방문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중국친구네 집에 놀러간 일이었다. 나를 초대한 중국친구는 당시 중국은행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는 서예에 뛰어난 재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친구는 맛있는 음식과 여러 과일을 준비해 놓고 나를 맞이해 주었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중국 사람들은 처음 손님을 맞이할 때 참으로 정성스럽게 대한다.


이렇게 우한에서의 시간은 꿈같이 흘러갔다. 시내에 있는 인력거도 타보고 『삼국지』유적에도 가보았다. 이렇게 『삼국지』의 고향인 우한에서 내가 어린 시절 읽어보았던 『삼국지』는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나는 다시 한 번 장강의 물결을 쳐다보았다. 황토색을 지니며 다른 한편에서 내려오는 한강과 합류하여 장엄하게 흐르는 장강은 멋이 있었고 깊은 맛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장강의 물결을 뒤로한 채 우한을 떠났다.


거듭되는 우한 과의 인연, 아들의 중국유학

한국에 도착한 나는 다시 일상 업무로 복귀했다. 바쁜 시간이 몇 년 흘러갔다. 그러나 늘 내 상상의 날개 속에는 황허루가 있었고 아름다운 동호의 달빛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나는 회사의 여름휴가를 이용하여 다시 한 번 우한을 방문하기로 하고 인천에서 위해로 향하는 배에 아내와 함께 몸을 실었다.


다시 찾은 우한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중국의 개방과 개혁의 열기가 어찌 우한에는 없으랴! 사실 이번에 우한에 온 목적은 딸아이의 교육문제도 있었다. 그 당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딸에게 장차 중국에서 중의를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운명을 누가 알겠는가. 어느 날 갑자기 딸은 나에게 중국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자기는 중의학보다는 패션 쪽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싫다는 것을 억지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다시 2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졸업을 앞두고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넌지시 아들의 중국유학 문제를 꺼냈다. 10년이 다 된 나와 우한의 인연은 이렇게 식었다가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예정에도 없던 아들의 중국유학으로 다시 연결된 것이었다.


나는 이제 한국사람이 아니고 중국사람?

어느 날 우한의 친구에게서 연락이 오고, 다시 그것을 아들이 통역하여 내게 전해주었다. 꼭 한 번 시간을 내서 우한에 와달라는 것. 고민 끝에 나는 다시 우한행 비행기를 탔다. 우한에 도착하여 친구이야기를 들어보니 나보고 거기 와서 어학연수원을 하라는 제의였다. 시정부 산하의 중화문화원에 한국학생들을 데려다 중국어연수를 하고 중국 사람들에게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마침 나도 마음 저편에서는 기회가 오면 한국 사업을 정리하고 나이 더 먹기 전에 3년 정도는 중국시장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던 참이었다.


나는 다시 『삼국지』를 생각했다. 대륙 평원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수많은 영웅들 얼굴도 그려보았다. 영웅의 기질과 타고난 본능은 이런 난관 앞에서 헤치고 나가는 용기와 결단일 것이다. 우리는 그저 내 앞에 놓인 알 수 없는 운명과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길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이다.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삶에서 인생의 깊은 맛을 깨달으며, 아픈 가슴을 다시 희망의 가슴으로 돌려놓는 과정에서 진실한 사랑과 우정도 맛볼 수 있다. 이리하여 나의 질기고 질긴 우한과의 인연은 다시 시작되었다.


나와 아내와 프랑스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딸애는 생각보다 우한생활에 잘 적응했다. 다만 문제는 중국어였다. 우리 부부의 당면과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오로지 중국어공부에 매진하자." 이런 목표를 세우고 죽기 살기로 중국어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1년쯤 지나니 제법 기본회화가 가능해졌다. 이제 우한생활 7년으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한과의 인연을 내 마음대로 끊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안다.



중국과 중국인

중국 우한사람들의 특징

중국 우한이라는 곳을 처음 와본 지는 꽤 오래 전이다. 그런 숙명 같은 우한과의 만남은 끝내 나로 하여금 이곳에서 자식을 교육시키고 아내마저 불러오게 했다. 그래서 우한사람들의 특징과 성향은 늘 관심의 대상이고, 연구대상이었는지 모른다. 먼저 그 소개를 두서없이 해볼까 한다.


첫 번째 특징은 우한사람들은 머리가 좋고 재치가 있으며 장사에 아주 밝다고 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기술과 전략, 계산을 요하는 두뇌게임인 마작(麻雀)을 남녀노소 모두 즐긴다. 장사에 밝고 능하다는 것은 나쁘게 표현하자면 단돈 1원이라도 손해 보기 싫어한다는 의미다.


우선 편리한 교통은 우한사람들을 개방적이고 장사에 능한 사람으로 만들었는데, 이들은 돌아다니기를 좋아하고 다른 지역에 가서도 생활력이 아주 강하다고 한다.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기도 하는 등 부정적인 면에서 장사셈이 아주 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우한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의심 많은 그들에게 내가 먼저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고, 머리 좋은 그들에게 물질보다는 때로는 진정한 우정과 의리가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중국인의 습관, 기다림의 미학

우선, 중국인은 절대로 웬만해서는 남의 일에 간섭하기를 꺼려한다. 중국친구에게 그와 상관없는 다른 일로 상의하거나 부탁하더라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길거리에서 누가 몰매를 맞더라도 그 많은 구경꾼 중에 말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중국인에게 돈은 곧 신앙(?)이다. 단돈 1원이라도 손해나는 일은 절대 안 한다. 중국인을 상대로 이익을 보려는 생각보다는 최소한 손해는 안 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 모든 중국인은 돈을 받을 때 반드시 위조지폐인지 살피고 받는다. 당연히 계산하는 데만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오로지 인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중국말의 마상(馬上)을 단순히 바로 지금, 금방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운전사나 기차차장에게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마상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1~2시간 걸린다고 봐야한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일단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가 하루 정도면 처리되겠지 하는 것은 아예 일주일 예상하는 것이 속 편하다.


우리가 흔히 중국인들은 느려터지다는 의미에서 만만디(慢慢的)라고 한다. 중국에 있다 보니 처음에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일처리가 느리고, 그래서 결론을 기다리는데 보통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급한 만큼 중국에서는 손해 볼 확률이 아주 크다.


중국인과 조선족

10여 년 세월동안 중국을 오가며 조선족 동포들과 여러 사업적인 관계를 맺어오면서 이제야 느끼는 것은 그들도 똑같은 보통의 우리 한민족이라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도 더 순박하고 더 여리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더 지키고, 어렵고 힘들어도 참을 줄 아는 우리민족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조선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왜 자꾸 조선족에 대한 안 좋은 소리가 나는 걸까. 우선, 우리의 시작이 조금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다. 처음부터 우리는 조선족을 조금 우습게 본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관념 또는 인식의 출발이 아주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중국에서 진짜 실력이 있는 사람은 조선족일 수 있다. 왜냐하면 조선족은 중국어가 모국어이면서 한국어도 잘하는 실력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조선족들의 교육수준은 일반중국인보다 아주 높은 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머슴으로 본다. 통역으로 부려먹고 심부름이나 시키고 관광안내나 시키려 한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인식이고 출발이다. 왜 그들이라고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 그들이 왜 한국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머슴 같은 대우도 마다하지 않고 인내하며 일을 하겠는가. 부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고 돈을 벌고 싶기 때문이다.


근로자를 모시고 귀하게 대접해야 공장이 살아남는 시대가 왔다. 우리가 앞으로 조선족을 모시고 가야 하는 시대는 이미 벌써 왔는지도 모르겠다. 협력의 동반자적인 인식이 필요하고 그런 인식의 전환에서 중국 사업은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장강의 물결

중국의 특색 사회주의

지난 세월동안 중국에 살면서 실로 많은 중국의 변화를 겪었다. 지금도 그 변화는 진행 중에 있고 나의 현장목격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이 거대한 대륙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더 오랫동안 이런 빠른 발전을 지속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시적 관점으로 보면 확실히 중국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한 해가 지나고 다시 또 1년이 지나면서 변화되는 커다란 거시적 측면에서의 중국은 여전히 숨 가쁜 동력으로 발전되고 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개방 30년의 지속적인 성과로 중국의 지도부는 선거로 날이 새는 민주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성장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다. 실질적으로는 경제의 개방과 자본의 도입이라는 서구 자본주의를 모방하면서도 국가의 틀은 아주 점진적으로 보완되고 민주화되는 사회, 이것이 중국적 특색 사회주의라는 의미다.


빠른 성장이 가져다주는 빈부의 격차와 인민들의 불평불만이 언젠가는 터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중국의 지도부는 이런 중국이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차피 우리가 중국에 와서 살면서 중국이라는 나라와 국민을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차라리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중국의 개혁은 현재도 중국인 특유의 돌다리도 두드려 가면서 진행 중이다.


녹차맛과 중국인

내가 사는 중국도시 우한의 4월 밤공기는 참으로 좋다. 온도도 적당하여 덥지도 춥지도 않다. 저녁을 먹고 밖에 나가서 걷고 생각하기에는 더없어 좋은 날씨다. 이런 4월의 어느 날, 한 중국친구가 자기가 운영하는 카페에 놀러오라고 해서 간 적이 있다. 친구는 내게 녹차를 한 잔 마시라고 주었다. 입속에 들어가는 순간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 녹차의 맛이 이렇게 훌륭하고 감미로운 것인가? 맑은 밤공기가 충만한 4월 중순 밤, 중국친구가 조용한 카페에서 직접 타준 녹차를 마셔본 순간, 이제야 비로소 왜 중국인들이 이 맛을 즐기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랬다. 세월이 흘러간다. 이방의 땅 중국에서 어느덧 많은 세월이 흘러간다. 이런 무심한 세월이 오늘도 흘러간다. 그래서인지 중국친구가 타준 녹차는 더 맛있고 가슴 깊이 스며들었는지 모른다. 짙게 우러난 차맛을 느끼면서 불현듯 많은 세월이 인생에서 갔구나 생각이 들었다. 순간, 중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이제야 겨우 차맛을 알다니, 이런 애꿎은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중국인을 상대로 돈만 벌 연구를 했지 정작 중국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연구는 전혀 없었구나, 한탄이 나오더란 말이다. 중국생활, 맹탕 살아온 느낌이 들었다. 중국인, 이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나를 다시 원점에서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미흡하나마 중국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리를 한 번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쉬운 숙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중국 땅에서 살면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숙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중국의 반부패운동과 식당

알다시피 2012년 시진핑 정부는 집권과 동시에 반부패 정책을 가장 먼저 꺼내들었다. 이른바, 고가 고무차량과 접대금지, 회의시간 단축, 호화 정부청사 금지 등 8항의 규정을 발표한 것이다. 이어 지난 2013년에는 신년선물, 호화 장례, 공공장소 흡연금지 등을 규정한 금지령을 7차례나 발표했다.


중국은 예로부터 상다리만 빼고 다 먹는다고 할 정도로 먹거리 사랑은 유별나다. 거기다가 중국인들의 모든 업무와 사업 그리고 경조사와 자녀문제 등은 어떤 경우가 되더라도 소위 관시를 통해 이루어지는 나라다. 이런 모든 종류의 관시가 제일 먼저 이루어지는 곳이 식당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이토록 도도하게 흘러가는 관시 물결에 제방을 쌓고 거대한 댐을 만들고 있다. 공무원사회에 급제동이 걸린 것이다. 음식으로 말하면 체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같이 중국에 와서 식당을 경영하는 교포들이다. 국가정책을 반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그동안 문지방을 닳도록 오가던 공무원들이 안 온다. 중국에 사는 한국 사람으로서 이런 현상을 그냥 쳐다만 보고 있을 수도 없다. 조금 힘들어도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한 우리도 중국정부의 좋은 정책은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먹고사는 일은 나름대로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 식당을 하는 모든 한국교민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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