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중앙은행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움직이는 거대한 힘
스테이블코인이 바꾸는 금융과 경제의 질서
가상자산의 시대가 열린 지 10년이 지났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디지털 금’으로 주목받았지만, 일상에서 널리 쓰이는 화폐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이제 그 빈자리를 빠르게 메우는 존재가 있다.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의 대체물이 아니다. 가상자산과 법정화폐, 블록체인 기술과 금융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디지털화폐 모델이다. 달러, 금, 국채 같은 실물자산에 가치를 연동하는 ‘페깅(Pegging)’ 구조를 통해 변동성을 낮추고, 일상적인 결제와 금융 거래에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
이 책은 ‘스테이블코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정부, 기업, 금융기관이 왜 주목하는지를 살핀다. 저자들은 “스테이블코인은 단지 새로운 코인이 아니라, 돈의 개념과 금융 시스템을 근본부터 바꾸는 혁신이다”라고 말한다.
기존 금융 시스템이 디지털화되고, 통화정책과 자산 관리 방식이 빠르게 바뀌는 지금, 이 책은 단순한 ‘투자’를 넘어 ‘돈의 미래’를 묻는 이들을 위한 필독서다.
■ 저자 조진형
저자 조진형은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이다. 학생들에게 경제와 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과 중앙일보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했으며, 현대자동차 전략기획담당 책임매니저와 카카오 CA협의체 PL을 거쳤다.
ESG와 기업집단(재벌)을 주제로 SCI(E), SSCI, KCI 등 주요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저서로는 ‘코인 초보투자자를 위한 돈 되는 지식’, ‘처음 만나는 ESG’가 있다. ESG/재무금융/인공지능/가상자산 등 새로운 금융 트렌드와 학술적 연구를 접목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 저자 이정환
저자 이정환은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부교수, 현재 한양대학교 인구문제연구원 위원이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객원연구원으로서 일했으며, 컬럼비아대학에서 금융경제를 박사로 전공했다. 주요 참여 저서로는 ‘경제의 길’이 있다.
■ 차례
서문_ 우리가 스테이블코인을 알아야 하는 이유
PART 1. 스테이블코인이란 무엇인가?
글로벌 금융위기, 비트코인을 부르다
스테이블코인, 가상자산을 넘어 화폐가 되다
스테이블코인 vs. CBDC, 디지털화폐의 두 얼굴
미국 국채를 집어삼킨 스테이블코인
스테이블코인은 어떻게 가격을 지킬까?
스테이블코인과 기존 결제 시스템의 비교
CBDC와 스테이블코인, 공존이 가능할까?
주요 스테이블코인 한눈에 보기
PART 2. 스테이블코인이 바꾸는 경제 구조
약해지는 금리의 힘, 흔들리는 중앙은행의 권위
저금리 시대가 키운 스테이블코인
통화 주권을 위협하는 스테이블코인의 부상
1달러를 지키기 위한 신뢰 전쟁
스테이블코인의 경제 심리학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움직이는 네 가지 힘
프리미엄과 디스카운트로 보는 스테이블코인의 이면
차익거래와 수익 구조, 어떻게 가능할까?
스테이블코인의 유동성, 왜 중요한가?
스테이블코인은 금융 혁신일까, 게임머니일까?
미국 FAANG이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뛰어든 까닭은?
PART 3. 스테이블코인의 투자와 미래
스테이블코인은 전통 금융과 융합될 수 있을까?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이더리움 시장이 들뜬 이유는?
ESG 투자, 스테이블코인으로 다시 설계된다
지금 한국의 가상자산 규제는 어디까지 왔을까?
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지금 필요한가?
PART 4. 스테이블코인을 향한 질문들
스테이블코인, 정말 ‘안정적’일까?
스테이블코인과 금융시장 범죄
규제 없이는 위험하다는 국제기구의 일침
스테이블코인과 은행 예금의 미래
맺음말_ 스테이블코인, 기회는 크지만 답은 신중하게
참고 문헌 및 출처
사진 및 도식 출처
스테이블코인이란 무엇인가?
글로벌 금융위기, 비트코인을 부르다
불안정한 코인, 안정의 길을 찾다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한 가상자산은 탈중앙화 가상자산, 즉 중앙권위 없이 운영되는 디지털통화의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그 앞에는 새로운 도전이 있었다. 가상자산 시장의 규모와 성숙도는 현실의 대규모 금융 시스템에 비하면 아직 작고 제한적이었다.
비트코인과 초기 가상자산들은 혁신적인 개념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전통 금융권에 비해 시장의 깊이는 얕고, 구조화도 미흡했다. 최근 들어 가상자산 시장이 많이 성장했지만, 여전히 전체 금융시장 규모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가상자산 생태계는 아직 거대한 전통 금융 세계의 변두리에 머무르고 있다. 이렇게 좁은 시장에서는 적은 자금 유입에도 가격이 심하게 출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극심한 가격 변동을 경험해 왔다. 하룻밤 새 비트코인 가격이 반토막 나거나, 반대로 단기간에 몇 배씩 뛰어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변동성은 단순히 투자 수익의 문제를 넘어, 가상자산이 실제 화폐로서 기능하는 데 근본적인 제약으로 작용했다.
가상자산, 변동성의 벽에 부딪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말 그대로 ‘안정적인 코인’이라는 이름의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이나 이더(ETH)처럼 시시각각 가격이 요동치는 기존 가상자산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설계된 자산이다. 쉽게 말해, 일정한 가치 기준을 유지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탈중앙화를 꿈꿨던 가상자산은 역설적으로 초기 개발 단계의 한계와 불안정성 탓에, 전통 금융시장과의 연계가 필요해졌다. 그런 배경 속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세계와 현실 금융 시스템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가상자산으로 이익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은행 화폐로 바꾸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생태계 내부에서 바로 달러와 유사한 가치를 주고받을 수 있다. 전통 금융시장에서의 자본 흐름을 가상자산 시장으로 끌어올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역설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매개로 자금 이동이 이루어지면서, 가상자산 시장의 유동성과 효율성도 크게 향상되었다.
안정성을 품은 코인, 스테이블코인의 탄생
스테이블코인의 출발점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비트셰어즈(BitShares)는 비트USD(BitUSD)를 통해 달러 가치에 연동된 디지털 토큰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이어 리얼코인(Realcoin)은 테더(USDT)로 이름을 바꾸며, 현금과 단기 국채 등 준비자산(reserve assets)을 바탕으로 1:1 상환을 약속하는 모델을 내놓았다.
2017년에는 메이커다오(MakerDAO)의 DAI가 등장했다. 중앙 발행인 없이 온체인 담보와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를 활용해 1달러 가치를 유지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이로써 준비금 기반의 민간 발행형과 탈중앙 담보형이라는 두 흐름이 정립되었다.
여기에 2018년, 서클(Circle)과 코인베이스(Coinbase)가 센터(Centre) 컨소시엄을 통해 USDC를 공개하며 합류했다. USDC는 달러 현금과 단기 미 국채를 기반으로 100% 준비금을 유지하고, 정기적인 제삼자 검토인 어테스테이션와 투명성 표준을 도입했다. 변동성이 심한 비트코인만으로는 결제나 회계 단위를 안정적으로 떠받치기 어려웠고, 그 빈자리를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자산이 메우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의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소수의 달러 연동 토큰이 사실상 과점하는 구조로 자리 잡았다. 그중에서도 USDT와 USDC가 거래의 기준 통화이자 정산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가상자산 내부에서는 이들이 유동성의 핵심 축이 되며, 외부와 연동할 때는 법정통화와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USDT가 다중 체인에서의 폭넓은 유통과 거래량으로 가상자산 생태계를 넓혔다면, USDC는 준비금 구성의 보수성, 월별 공시와 규제 친화적 프레임으로 기관/핀테크 채널에서 신뢰를 쌓아왔다. 투자자에게는 변동성 높은 자산과 현금성 가치를 오가며 리스크를 조절하는 완충재가 되고, 사업자에게는 국경을 넘나드는 저비용/실시간 결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과 기존 결제 시스템의 비교
누가 더 빠르고 저렴한가?
먼저 결제 속도와 비용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인터넷만 연결되면 24시간 365일 언제든 송금할 수 있다. 이더리움이나 솔라나 같은 블록체인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결제가 몇 초, 혹은 몇 분 안에 끝나며, 국경을 넘어도 중개은행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송금할 수 있다. 반면 전통 금융 결제는 은행 업무 시간에 의존하거나 국제망을 거치면서 1~3일의 시간 지연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비용 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스테이블코인은 대체로 블록체인 네트워크 수수료만 내면 되기 때문에, 거액 송금도 몇 달러 수준으로 처리할 수 있고 소액 결제도 수수료 부담이 낮다. 반면 전통 금융 결제는 은행 송금 수수료, 환전 수수료, 카드 결제 수수료가 겹쳐 상대적으로 고비용 구조다. 해외 송금의 경우 중개 은행 비용으로 건당 수십 달러가 들 수 있고, 신용카드 결제는 가맹점 수수료가 2~3%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스테이블코인은 빠르고 저렴한 대안으로 주목받으며, 특히 국제 송금이나 신흥국 시장에서 활용 가능성이 높게 거론된다.
누구나 쓸 수 있나? 어디서나 통하나?
둘째, 접근성과 범용성이다. 기존 결제 시스템은 은행 계좌나 카드를 통해 이용되므로 신원 확인과 가입 절차가 필요하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인터넷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지갑을 만들어 받을 수 있어 진입 장벽이 낮다.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운 국가의 주민이나 은행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 사람도 스테이블코인 지갑만 있으면 디지털 달러를 보유하고 송금할 수 있다. 이는 금융 포용성 측면에서 큰 장점이다.
IMF 연구에 따르면 신흥국에서는 달러 가치가 안정적인 스테이블코인이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나 달러 대체 저축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전통 금융이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 영역을 채워줄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범용성은 아직 제한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주로 암호화폐 생태계 안에서만 쓰인다. 일반 상점에서 USDC나 USDT를 직접 받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사용자는 현금으로 교환하거나 다른 암호 자산 투자에 활용한다. 반대로 기존 결제망은 상점, 전자상거래, 공공요금 납부 등 현실 경제 전반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현시점에서는 전통 결제망이 활용 범위가 훨씬 넓고, 스테이블코인은 특정 용도에 강점이 있다. 거래소 간 자금 이동, 가상자산 투자 보관, 일부 해외 송금이 대표적이다.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셋째, 안정성과 신뢰성이다. 스테이블코인과 기존 결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은행 예금이나 현금은 중앙은행과 정부의 신용을 바탕으로 가치가 안정되고, 예금자 보호 같은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앞서 말했듯 발행 주체와 담보 구조에 따라 안정성이 달라진다. 극단적 상황에서는 가치가 무너질 위험도 있다. 예를 들어 은행에 1만 달러를 맡기면 연쇄 뱅크런이 일어나지 않는 한 언제든 인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예금/보험 등 기존 금융 시스템 안에서 충분히 보호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 1만 달러어치를 보유한 경우 발행사의 지급 능력이나 담보 자산에 문제가 생기면 전액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결제 신뢰성도 비교된다. 전통 결제망은 송금 오류가 발생하면 은행을 통해 취소하거나 잘못 보낸 돈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 거래는 일방적이라, 한 번 보낸 스테이블코인은 되돌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은행 결제는 거래 내역이 내부 시스템에 기록되어 분쟁이 생기면 증빙할 수 있지만, 스테이블코인은 익명성이 보장되어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 채 보낼 수 있다. 덕분에 편리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신원 확인조차 어렵다.
안전하고 합법적인가?
넷째, 규제와 보안이다. 기존 결제 시스템은 각국 금융당국의 엄격한 규제를 받으며 자금세탁방지, 고객신원확인(Know Your Customer, KYC), 거래 추적이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반면 스테이블코인 거래는 인터넷에서 가명으로 이루어져 불법 자금 흐름이나 해킹 피해에 노출될 수 있다. 실제로 테러 자금이나 랜섬웨어 해커들이 달러 현금 대신 USDT 같은 스테이블코인을 선호하는 사례도 보고된다. 이는 규제 당국 입장에서 큰 우려사항이다. 이 때문에 각국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자금세탁 방지 규정 준수를 요구한다. 일부 국가는 아예 엄격한 인허가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기술적 보안 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전통 결제망은 폐쇄망에서 운영되어 해킹 같은 사이버 공격에 비교적 안전하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탈중앙화 블록체인에 기반하다 보니 블록체인 스마트 컨트랙트의 취약점이나 개인 지갑의 보안 문제에 노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솔라나 기반 지갑 해킹으로 다수 사용자의 USD코인이 탈취된 사건이 있었다.
금융시스템에 어떤 파장을 줄까?
마지막으로 거시경제 및 금융 안정 관점에서 보면, 스테이블코인의 급성장은 한 나라 통화체계에 잠재적 위험을 줄 수 있다. 사람들이 은행 예금 대신 스테이블코인을 대거 보유하면 시중 자금이 은행에서 빠져나가 신용 경색이 올 수 있고, 스테이블코인 준비금 급매각이 발생하면 단기 자금 시장 등 전통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재무부와 연준 등은 스테이블코인을 ‘은행 페이런과 유사한 위험’으로 간주하고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반대로 스테이블코인을 옹호하는 진영에서는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즉, 스테이블코인은 편의성과 혁신 측면에서 기존 결제를 보완하지만, 신뢰성과 규제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바꾸는 경제 구조
약해지는 금리의 힘, 흔들리는 중앙은행의 권위
디지털 달러화, 통화 주권의 균열이 시작됐다
극단적으로 가정하면, 우리나라 사람이 원화 대신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대부분 거래를 한다면, 마치 경제가 달러를 통화로 작동하는 것과 비슷하게 된다. 경제활동이 외국 통화로만 이루어진다면 국내 통화인 원화는 소외되는 것이다. 일부 동남아 국가들이나 중남미 국가들에서 모든 상품의 가치 표시가 달러화로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경제에서는 통화 대체 또는 달러화(dollarization)라고 부른다.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이러한 통화 대체를 훨씬 쉽게 만든다. 누구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달러 연동 코인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외화를 확보하기 어려웠던 사람들도 손쉽게 ‘디지털 달러’를 사용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IMF는 외국 통화로 표시된 스테이블코인의 도입이 한 나라의 통화 대체를 가속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IMF는 암호자산의 급속한 확산이 경제의 달러화를 강화하는 현상을 ‘크립토화(cryptoization)’라고 부르며 경계하고 있다. 이는 암호화폐 기술로 인한 새로운 형태의 달러화 현상인데, 특히 금융 시스템이 약한 신흥국에서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한다.
국제결제은행도 비슷한 우려를 표한다. 국제결제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이 국가의 통화 주권을 약화시키고 자본 유출을 촉진할 수 있어, 금융 안정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한마디로, 우리 경제가 원화 대신 미 달러에 기대면, 중앙은행이 국내 통화를 통해 경제를 조절하는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경제 곳곳에서 원화 대신 달러 연동 코인이 쓰이면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려도 그 신호가 스테이블코인 경제 아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금리 정책의 전달 경로를 흔들 수 있다. 통화정책의 핵심은 중앙은행의 금리 조정이 시중금리를 통해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는 연결 고리에 의존한다. 그런데 이 고리에 스테이블코인이 끼어들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유동성 조절 능력을 시험하는 시대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중앙은행의 유동성 관리 능력을 시험대에 올릴 수 있다. 중앙은행은 통화량 조절과 환율 개입 등으로 시중 자금의 유동성을 관리한다. 그런데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자금이 국경 밖으로 쉽게 이동하거나, 통화당국의 눈을 피해 흐르면 기존 정책 수단이 힘을 잃을 수 있다. 국내 투자자나 기업이 원화를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꾸는 순간, 그 돈은 블록체인상에서 해외 달러 자산으로 바뀐다. 중앙은행이 아무리 국내 유동성을 줄여도, 사람들이 해외에서 디지털 달러를 끌어다 쓰면 국내 금융 조건을 조이는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IMF는 ‘스테이블코인의 광범위한 사용은 통화정책의 효과성을 저해하고, 자본 흐름 관리 조치를 우회할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이미 신흥국에서는 달러 예금을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대체하면서 국내 은행에서 해외로 자금이 빠져나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달러 자산 간의 대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만약 개인 간 외화예금을 USDT 같은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꾸게 된다면, 국내 은행에 있던 달러 예금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준비자산으로 넘어간다. 이러한 자금 유출은 해당 국가 통화의 변동성을 높이고 성장에 압력을 줄 수 있다. 정부가 외환이나 자금 이동을 통제하려 해도,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거래는 규제를 우회할 수 있어 통화당국의 거시건전성 정책마저 무력화시킬 수 있다. 한 마디로, 중앙은행이 경제에 푸는 돈의 양과 흐름을 통제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움직이는 네 가지 힘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발행사, 거래소, 마켓메이커(Market Maker), 중개업체(Intermediaries)가 얽혀 있는 복잡한 구조 위에 서 있다. 각 주체가 맡은 역할이 다르지만, 서로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발행사는 토큰을 찍어내고 준비자산을 관리하며, 거래소는 이 토큰을 사고팔 수 있는 장을 열어준다. 마켓메이커는 필요한 순간 유동성을 공급해 가격의 급격한 출렁임을 완화하고, 중개업체는 개인이나 기업이 손쉽게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다. 이처럼 여러 층위의 참여자가 촘촘히 연결된 구조를 이해해야 비로소 스테이블코인이 어떻게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전 세계 금융 네트워크로 퍼져나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힘이 작동하는지까지 읽어낼 수 있다.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발행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일종의 민간 은행 역할을 한다. USDT의 테더사, USDC의 서클사가 대표적이다. 사용자가 달러 같은 법정화폐를 맡기면 발행사는 그에 상응하는 스테이블코인을 새로 찍는다. 반대로 사용자가 스테이블코인을 되돌려주면 준비된 법정화폐를 지급한다.
발행사는 항상 예치된 금액만큼 준비금을 보유해 코인 가치를 1달러에 고정한다. 또한 투명성을 위해 준비 자산 내역을 주기적으로 공시하거나 외부 회계 감사를 받아 이용자의 신뢰를 확보한다.
쉽게 말해 발행사는 스테이블코인의 중앙은행이자 담보 관리인이다. 테더사는 미 국채와 현금 등으로 800억 달러가 넘는 준비금을 쌓아두고 USDT 가치를 지킨다. 서클은 은행 파산 사태로 준비금 일부가 묶였을 때 즉시 부족분을 메우고 상황을 투명하게 공지해 USDC 신뢰를 지켰다. 이처럼 발행사의 신뢰도와 재무 건전성은 곧 스테이블코인의 가치와 직결되며, 이들의 역할이 시장 안정의 핵심 축이 되는 이유다.
디지털 달러가 거래되는 장, ‘거래소’
거래소는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시장에서 유통/거래되는 장터다.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같은 글로벌 거래소부터 업비트 같은 국내 거래소까지 대부분 스테이블코인 거래를 지원한다.
스테이블코인은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를 사고팔 때 기축통화처럼 쓰인다. 예를 들어 바이낸스에서는 비트코인 혹은 이더로 USDT를 팔거나 USDT로 비트코인 혹은 이더를 사는 등의 거래 조합을 통해 거의 모든 코인을 사고팔 수 있다. 이는 거래소가 스테이블코인을 일종의 디지털 달러로 취급한다는 의미다.
거래소는 24시간 실시간 환전소 역할을 한다. 투자자들은 달러 송금을 거치지 않고도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손쉽게 자산을 교환할 수 있다. 그 결과 암호화폐 시장 전체 거래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 현재는 60% 이상을 기록한다. 실제로 USDT는 하루 거래량이 수백억 달러에 달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암호화폐가 되었다.
거래소 입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될수록 거래 수수료 수입이 늘고, 시장 유동성이 풍부해진다. 그래서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와 협력해 상장 기회를 제공한다. 요약하면, 거래소는 스테이블코인 유통의 허브이자 가격 형성을 이끄는 핵심 무대다.
1달러를 맞추는 숨은 손, ‘마켓메이커’
마켓메이커는 말 그대로 시장에서 가격을 만들고 유동성을 공급한다.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전문 트레이딩 회사들이 주로 이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여러 거래소와 장외시장(Over-The-Counter market, OTC)을 오가며 스테이블코인 가격이 1달러에 안정되도록 매수/매도 주문을 지속적으로 공급한다. 예를 들어 어느 거래소에서 USDT 가격이 1.005달러로 오르면 마켓메이커는 즉시 USDT를 팔고, 0.995달러에 거래되는 다른 거래소에서는 사들인다. 이렇게 차익거래를 신속하게 실행해 가격 차이를 없애고 균형을 맞춘다.
재빠른 매매 덕분에 각 거래소 간 가격이 균형을 이루며 1달러에 수렴한다. 마켓메이커들은 알고리즘 트레이딩 시스템과 막대한 자본을 동원해 미세한 가격 괴리도 놓치지 않고 이익을 챙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소수의 대형 트레이더들이 발행사와 직접 거래하며 스테이블코인 가격을 안정시키는, 사실상 중앙화된 차익거래 구조가 존재한다는 분석도 있다.
실물경제로 이어주는 ‘중개업체’
중개업체는 스테이블코인의 실물 활용을 돕는 연결 고리다. 여기에는 장외거래 브로커, 결제 게이트웨이, 커스터디 업체, 최근에는 전통 금융기관까지 포괄된다. 예를 들어 대규모로 스테이블코인을 사고팔고자 하는 기관은 거래소가 아닌 OTC 중개업체를 통해 거래 상대를 찾아달라고 의뢰할 수 있다. 또한 전자상거래 사이트나 오프라인 상점이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받으려면, 이를 원화나 달러로 즉시 변환해 주는 결제 프로세서가 필요하다.
비자는 이미 USDC로 결제 대금을 정산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여러 핀테크 업체들이 스테이블코인과 신용카드, 은행망을 이어주는 솔루션을 내놓고 있다. 이렇듯 중개업체들은 스테이블코인과 기존 금융/상거래 시스템을 연결하여 사용성이 높아지도록 돕는다. JP모건은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 ‘JPMD’를 등록하는 등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하거나, 다른 기업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을 국제 송금, 교환 매개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사 간의 중개 역할이 잘 구축될수록 스테이블코인이 더 넓은 실물 경제 영역에서 유통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스테이블코인 시장 구조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각 주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1달러의 가치’를 뒷받침한다. 발행사는 신뢰를 책임지고, 거래소는 장을 마련하며, 마켓메이커는 가격을 지탱하고, 중개업체는 활용도를 확장한다. 이러한 생태계 덕분에 스테이블코인은 전 세계 어디서나 빠르고 안정적인 가치 이동 수단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