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글쓰기
엮은이의 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작가로서 활동하는 내내 글쓰기에 관한 질문을 하면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비의 날개 위에 무엇이 있든, 매의 깃털이 어떻게 배열되었든 그것을 보여주거나 그것에 관해 말하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이런 믿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기에 자신의 소설, 편집자와 친구, 동료 작가들에게 보낸 편지들, 인터뷰와 기획 기사들을 통해 종종 글쓰기에 관한 글을 썼다. 그것은 지금까지 생존했던 어느 작가들 못지않게 글쓰기에 관한 정확하고 멋진 글들이었다.
전 생애를 통해 쌓인 글쓰기 기술에 관한 그의 견해와 관찰들이 상당한 분량의 작품이 되었다. 대부분의 견해는 그것을 담고 있는 텍스트에서 쉽게 발췌가 가능했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한 사람이 평생 동안 피력했던 견해를 수집하는 일은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특정 주제에 관해서 얘기할 때 누구나 그렇듯이 글쓰기에 관한 헤밍웨이의 글도 이른바 자기 세계 안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그 글들을 다시 가져와서 여러 개의 범주로 묶어 정리하는 동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수십 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기에, 다른 도시나 국가에서 무작위로 썼던 견해들이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마술처럼 끼워 맞춰진 것이다.
이 책에는 작가들에게 주는 글쓰기 기술과 작업 습관, 훈련에 관한 구체적이고 유용한 정보를 포함해서 작가의 본성과 작가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에 관한 그의 고찰이 담겨 있다. 보편적인 지혜와 위트, 유머와 통찰력 그리고 작가와 작가라는 직업 그 자체의 윤리성에 대한 주장 속에서 헤밍웨이의 인품이 드러난다.
헤밍웨이가 그의 저서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에서 말했듯이 다른 작가가 하나의 문장을 쓰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태어난 작가들이 있다. 나는 이 글 모음집이 많은 문장들이 태어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PARK 1 작가에 대하여
작가의 자질
좋은 작가는 가능한 한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훌륭한 작가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적은 시간에 많은 지식을 익힐 수 있는 학습 능력을 타고 났을 뿐이다.
또한 지식이라고 정의된 것들을 거부할 것인지 받아들일 것인지 식별하는 지능을 가졌을 뿐이다. 하지만 빨리 익힐 수 없는 것,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이지만 수많은 시간을 바쳐야 습득할 수 있는 지식들이 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한 것들이며 그 단순한 지식들을 배우는데 한평생이 걸린다. 그러므로 각자 살아가면서 얻는 아주 적은 양의 새로운 지식들을 위해 매우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그런 지식만이 작가가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다.
진실되게 쓰인 소설은 전반적인 지식에 보태지고 그 지식은 다음 세대의 작가들 손에 맡겨진다. 하지만 그 다음 세대의 작가도 경험의 일정 비율을 지불해야만 상속권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지식을 소화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 『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 p.191~192
작가들에게 주는 충고
생쥐 : 작가가 자신을 훈련하는 방법은 뭐죠?
Y.C. :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게. 물고기를 보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정확히 그 모습을 보게.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짜릿함을 느꼈다면 어떤 움직임이 그런 감정을 일으켰는지 알아낼 때까지 계속 돌이켜보게. 물에서 솟구쳐 오르며 만들어내는 선이었는지 아니면 바이올린 줄처럼 팽팽하게 지탱하고 있다가 떨어지는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물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모습이었는지. 또 어떤 소리가 났고 어떤 말이 들렸는지도 기억하게. 그 감정을 일으켰던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자네를 흥분시켰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라는 말일세. 그런 다음엔 독자들도 그 장면을 보고 자네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정확하게 그 장면을 써내려가는 거야. 그것은 피아노의 다섯 손가락 훈련 같은 걸세.
생쥐 : 그렇군요.
Y.C. : 그리고 가끔씩은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게. 혹 내가 자네를 큰소리로 꾸짖는다면 자네가 느끼는 점 외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알아보라는 말일세. 카를로스가 후안에 대해 악담을 하거든 누가 옳은가 하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양쪽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사람마다 그래야 하는 일이 있고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 있네. 또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도 알게 되지.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밀고 나가야 하네. 하지만 모름지기 작가는 어떤 판단도 해서는 안 되네. 그저 이해해야 하지.
생쥐 : 네, 알겠습니다.
Y.C. : 그 다음엔 경청일세. 사람들이 말을 할 때는 온전히 집중해서 그 이야기를 듣게. 다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지 말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지. 또 찬찬히 관찰하지도 않네. 어떤 공간에 들어간다면 나올 때는 그곳에서 본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해. 그게 전부가 아닐세. 만약 그 공간에 있을 때 어떤 느낌이나 감정이 일어났다면 그런 느낌이나 감정을 느끼게 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만 하네. 연습 삼아 한번 해보게. 시내에 나가 극장 밖에 서서 사람들이 택시나 자동차에서 내리는 방법이 얼마나 각양각색인지 살펴보는 거지. 이 외에도 훈련할 수 있는 방법은 수천 가지가 넘는다네. 항상 다른 사람에 관해 생각하게.
- 기사 작성 : 『어니스트 헤밍웨이(By Line : Ernest Hemingway)』 p.219~220
작업 습관에 대하여
작가들은 혼자 일해야 합니다. 집필 작업을 완전히 마무리하고 난 다음에 만나야 해요. 그것도 너무 자주 만나면 안 됩니다.
너무 자주 만나다 보면 뉴욕에 있는 작가들처럼 되거든요. 그들은 모두 유리병에 든 낚시 미끼용 지렁이들입니다. 자기들끼리 부대끼거나 병 안에서만 지식과 자양분을 얻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지요. 때로 그 병은 예술의 모양을 하고 때로 경제학이나 종교경제학의 형태를 띠기도 하지만 일단 병 속에 들어가면 그 안에 갇히고 말죠. 그리고 병 밖으로 나오면 외로워합니다. 그들은 외로워지기를 원하지 않아요. 신념을 지키다 혼자가 되는 걸 두려워하지요…….
-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Green Hills of Africa)』 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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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 : 매일 글쓰기 작업을 시작하시기 전에 앞서 썼던 부분을 어느 정도나 다시 읽으시나요?
Y.C. :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처음부터 다시 읽는 거라네. 그렇게 글을 다시 읽으면서 수정을 해나가다가 어제 멈췄던 부분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지. 전체 원고 분량이 너무 많아서 매일 다 읽을 수가 없는 경우라면 두어 장 정도 되돌아가 읽어도 되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만 처음부터 다시 읽게. 그렇게 해야 전체 이야기가 하나로 통일될 수 있거든. 그리고 글이 잘 풀릴 때 작업을 멈춰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게. 생각을 전부 쏟아 부어 쉬지 않고 글을 쓰고 싶을 때 작업을 멈춰야, 글을 죽이지 않고 계속 써나갈 수 있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날 완전히 녹초가 되어 글을 이어 나갈 수가 없게 되거든.
- 기사 작성 : 『어니스트 헤밍웨이(By Line : Ernest Hemingway)』 p.217
음란성
가령 나도 죽이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하지만 대화 글에서만 사용했을 뿐 더 나은 단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단어로 사용했던 적은 없단다.
올바른 단어를 사용하도록 노력해라. 대화 글 외에는 속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해라. 그것도 불가피한 경우에만 사용하기 바란다. 모든 속어는 곧 흥미를 잃고 혐오감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는 적어도 천년 동안 지속되어 온 욕설만을 사용한다. 한때 반짝했다가 곧 퇴색해버릴 글이 될까 봐 두려워서란다.
- 캐롤 헤밍웨이에게(헤밍웨이의 여섯 자녀 중 다섯째), 1929. 『서간 선집(Selected Letter)』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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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이 영국에서 4월 3일에 발간되었는데 아직 저에게는 연락이 없습니다. 책을 매우 멋지게 만들었다더군요. 얼마나 달라지는지 보려고 빌어먹을(bloody)은 일곱 번, 개새끼(son of bitch)는 한 번, 제기랄(shit)은 네댓 번을 자발적으로 뺐습니다(모두 당시에는 외설적인 표현으로 간주되었다 : 역주). 출판사와 오웬 위스터(헤밍웨이의 동시대 미국 작가 : 역주) 기분을 맞춰주려고요. 그런 암초를 지니고도 이 책이 순항할지 아닐지 두고 보죠. 조너던 케이프 사(영국 출판사 : 역주)에게 주는 특별 선물로 좆같은(cocksucker)을 삭제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군요.
- 맥스웰 퍼킨스에게, 1936. 『서간 선집(Selected Letter)』 p.44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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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어휘들을 조사해온 건 당신입니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글자 한두 개를 삭제하기로 결정했다면 그건 편집자께서 알아서 할 일이죠. 저는 원고를 보내니 당신이 알아서 감옥에 갈 것이 무엇이고, 가지 않을 것이 무엇인지 알아봐주시죠. 그런 것들 다 X 먹어라. 이건 괜찮죠. 합법적 아닙니까?
- 맥스웰 퍼킨스에게, 1933. 『서간 선집(Selected Letter)』 p.386
정치
현존하는 작가가 정치적 명분을 지지하면 경력을 쌓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정치적 명분을 위해 일하고 그것을 신봉한다고 선언하다가 그 명분이 득세하게 되면 매우 좋은 입지를 얻을 것이다.
모름지기 정치란, 나중에 전리품을 얻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보수를 받지 않거나 당분간 시간당 최저생활 임금을 받으며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누구나 파시스트가 되거나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다 능력이 되면 대사가 되거나 정부에서 그의 책을 수백만 권 출간해주거나 아니면 작가들이 흔히 꿈꾸는 다른 종류의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문학 혁명 작가들은 너나없이 야망이 크다. 한동안 나는 혁명이 집안 거실, 출판업자의 다과회를 휩쓸고, 가벼운 피켓 시위까지 일으키던 시대에 살았다. 친구 중 상당수는 근사한 직업을 얻었고 다른 이들은 감옥에 갔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인류의 지식에 보탬이 되는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어느 것도 작가 본연의 업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무덤에 들어갈 땐 다른 작가들처럼 악취를 풍기겠지만 정치적 동지들이 있었기에 더 많은 조화를 보낼 테고 시간이 지나면서 악취가 좀 더 심해진다는 점이다.
- 기사 작성 : 『어니스트 헤밍웨이(By Line : Ernest Hemingway)』 p.183
작가의 삶
"먼저 작가에게 해를 입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시겠어요?" 나는 심오하게 말했다. "정치, 여자, 술, 돈, 야망이지. 그리고 정치, 여자, 술, 돈, 야망이 결여된 것이라네."
-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Green Hills of Africa)』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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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갈채가 없어도 항상 글을 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초고를 끝냈을 때다. 하지만 여러 번의 검토를 통해 날씨와 배경과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무도 그 글을 읽어서는 안 된다.
이런 작업을 다 마칠 즈음, 때로 그 글을 다시 읽고 수백 번 더 읽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다. 게다가 책이 출간될 쯤이면 이미 다른 작업을 시작했을 테고 그러면 그 책은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 더 이상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게 된다.
하지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출간된 책을 읽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바꾸고 싶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대목들을 보게 된다. 당신의 자질을 발견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지 못하는 비평가들은 누구나 작가들의 무능함과 실패, 천부적 재능이 전반적인 고갈상태에 이르고 있음을 예견함으로써 명성을 얻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정치적 동맹이 없다면 작가가 계속해서 글을 쓰기를 바라거나 행운을 빌어주는 평론가는 한 명도 없다. 동맹이 있는 경우엔 모두들 환호하며 호메로스, 발자크, 졸라, 링크 스테펜즈(1866~1936. 미국의 저널리스트, 대표적 추문 폭로 기자 : 역주)처럼 당신을 그들의 반열에 올려놓을 것이다. 그런 서평들이 없다는 것을 오히려 복 받은 일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결국 언젠가 어디에선가 작업이 안 되고 기분이 더러울 때 그 책을 들쳐보다가 읽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아내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세상에, 이 작품 기가 막히는데." 그러면 아내는 "여보, 내가 처음부터 그렇다고 했잖아요."라고 할 것이다. 아니면 아내가 당신이 하는 말을 못 듣고 "뭐라고요?"라고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말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이 좋다면, 내가 정말 잘 알고 쓴 것이고 진실한 글이라면, 다시 읽어도 그렇다는 걸 안다면 다른 작자들이 뭐라 깽깽거리든 내버려둬도 좋다. 그 소리가 아주 추운 눈 쌓인 밤 그 작품을 팔아 번 돈으로 마련한 오두막에서 듣는 코요테의 울부짖음처럼 기분 좋게 들릴 것이다.
- 기사 작성 : 『어니스트 헤밍웨이(By Line : Ernest Hemingway)』 p.185
PARK 2 글쓰기에 대하여
글쓰기란 무엇인가?
1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너무 실감이 나서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로 믿게 되고, 독자들은 그 일이 실제로 작가에게 일어났던 일이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가 이야기를 꾸며낼 때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그 일이 일어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면 독자는 어느새 자신도 그 일을 경험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 수만 있다면 작가로서 바라던 바를 성취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소설이 그 어떤 현실도 능가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독자의 경험의 일부가 되고 그 기억의 일부가 되는 것. 단편이든 장편이든 읽을 당시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기억과 경험으로 녹아들어 자기 삶의 일부가 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 미출간 원고. 케네디 도서관 소장. 두루마리 원고 중에서 19, T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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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기억해줄 몇몇 사람을 위해서 그 일을 한다면 한 번이면 족하다. 하지만 그 일을 오랫동안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기억하고 자식들에게 그 일을 얘기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자식과 손자들도 그 일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책에 관한 것이라면 책을 읽을 것이고 좋은 책이라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갈 것이다.
- 말콤 카울리, 「미스터 파파의 초상(A Portrait of Mr. Papa)」 중에서. 「라이프」 지 1949.
글쓰기의 고통과 즐거움
찰리, 그 어떤 것에도 미래는 없습니다. 당신도 같은 생각이길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전쟁터에 있는 것을 좋아하죠. 매일 밤낮으로, 죽임을 당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아도 될 가능성이 아주 높으니까요.
돈이 되든 안 되든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글을 써야 합니다. 이건 선천적인 병이지요. 나는 글쓰기가 좋아요. 이건 더 나쁩니다. 병이 악습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지금까지 글을 써왔던 그 누구보다 더 잘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글쓰기가 집착이 되어버렸어요. 집착이란 끔찍한 것입니다. 당신에겐 집착 같은 것이 없기를 바랍니다. 제게 남은 건 오직 집착뿐입니다.
- 찰스 스크리브너에게(1890~1952.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등의 책을 출간한 찰스 스크리브너스 선즈 출판사 사장), 1940 『서간 선집(Selected Letter)』 p.50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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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겠지만 소설, 아니 산문이 글쓰기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겁니다. 참고 문헌, 다시 말해 오래된 중요한 문헌 같은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저 백지, 연필 그리고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전부입니다. 있을 법하지 않은 소재를 찾아내 완벽하게 있을 법하고 흔한 이야기로 만들어내야 하고 또한 평범하게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이야기가 글을 읽는 사람의 경험이 될 수 있으니까요.
- 버너드 베런슨에게, 1954. 『서간 선집(Selected Letter)』 p.837
무엇에 관해 쓸 것인가?
저는 전쟁에 관한 소설들을 통해 전쟁의 모든 단면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서서히 전개하면서 전쟁을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솔직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한 편의 소설이 제 관점을 다 드러내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보기에 전쟁은 너무나 복잡다단합니다.
우리는 전쟁이 나쁘다는 것을 압니다. 때로는 싸워야 할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전쟁은 나쁜 것이며,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전쟁은 매우 복잡해서 진실하게 써내려가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보면 제가 젊었을 때 이탈리아에서 전쟁을 겪을 때는 두려움이 매우 컸지요. 하지만 스페인 전쟁에 참전했을 때는 2주쯤 지나고부터는 두려움이 전혀 없어졌고 굉장히 행복했어요. 하지만 제가 다른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두려움의 존재를 부인한다면 형편없는 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이제야 저는 모든 것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탈영병과 전쟁 영웅, 겁쟁이와 용감한 사람, 배신자와 배신할 재목이 못되는 사람들이 두루두루 이해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사람들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 이반 카쉬킨에게(1899~1963. 러시아 비평가, 시인, 번역가), 1939. 『서간 선집(Selected Letter)』 p.480
등장인물
소설을 쓸 때 작가는 살아있는 사람을 창조해야 한다. 등장인물이 아닌, 사람 말이다. 등장인물은 희화에 불과하다. 작가가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게 한다면 그 책에는 위대한 인물이 하나도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책은 통일성을 지닌 실체, 소설로 존재할 것이다.
작가가 창조한 사람들이 과거의 거장들, 이를테면 음악, 현대 미술, 문학, 과학 분야의 거장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소설 속에서도 그런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사람들이 그런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데 그 분야의 거장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면 작가는 거짓말을 말하는 거다. 그리고 작가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드러내기 위해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작가가 제 아무리 문장과 직유법에 뛰어나다고 해도 꼭 필요하지 않은 부적절한 대목에서 그런 것들을 남발한다면 자만심으로 작품을 망치게 된다.
산문은 건축이지 실내장식이 아니다. 그리고 바로크 양식은 한물갔다. 헐값에 에세이로나 팔아야 할 작가 자신의 지적 사유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표현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지 몰라도 문학이 될 수는 없다.
등장인물들은 소설 속에서 사람으로 묘사될 때 더욱 가치가 올라간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등장인물이 아닌 소설 속의 사람들은 작가가 소화한 경험, 지식, 머리, 가슴 등 작가가 가진 모든 것을 반영해야 한다. 진지하고, 운도 따라주는 작가가 그런 것들을 전부 끌어낸다면 한 차원 높은 글을 얻어 낼 것이며 작가로서의 수명은 오래 이어질 것이다.
- 『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 p.191
생략해야 할 것들을 알기
이 점 역시 기억해야 한다. 의문의 여지없이 명백하게 글을 쓴다면 누구나 그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직설적인 표현을 피하기 위해 글을 애매하게 쓰는 것은 그 방법 외에는 얻을 수 없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소위 말하는 구문론이나 문법을 파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글을 애매모호하게 쓸 경우 작가는 가짜로 알려지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똑같은 필요성을 느끼는 다른 작가들이 자기 방어를 위해 그를 칭송할 것이다.
진정한 신비주의와 글쓰기 능력이 부족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동해서는 안 된다. 글쓰기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는 전혀 신비할 것이 없는 데서 신비화 전략을 사용한다. 실상은 분명하게 진술할 능력이 없거나 지식이 없는 것을 감추기 위해 그렇게 할 뿐이다.
신비주의는 불가사의하고 알 수 없는 일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많은 신비가 있다. 하지만 능력 부족으로 쓴 애매모호한 글들은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일이 아니다. 사이비 서사적 특질을 주입하여 부풀려진 저널리즘 역시 문학이 될 수 없다.
이 점 또한 기억하라. 무능한 작가들은 모두 서사시를 사랑한다.
-『오후의 죽음(Death in the Afternoon)』 p.54
제목
제목으로 이건 어떤가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소설
어니스트 허밍웨이 지음
…… 내 생각에는 책 제목에 꼭 있어야 할, 마법의 힘이 깃든 제목인 것 같습니다. 발음하기가 아주 쉽진 않지만 어쩌면 책의 느낌을 쉽게 전해줄 수도 있죠. 그동안 삼십여 개의 제목을 살펴보았는데 모두 그럴듯했습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종을 울려 주었던 건 이 제목이 처음입니다.
- 맥스웰 퍼킨스에게, 1940. 『서간 선집(Selected Letter)』 p.504
다른 작가들
"도스토옙스키에 관해 궁리를 해보았다." 내가 말했다. "어쩌면 그렇게 형편없는 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는 글을 써서 읽는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걸까?"
- 『이동 축제일(A Moveable Feast)』 p.137
스콧 피츠제럴드의 재능은 나비 날개 위의 가루로 만들어진 무늬만큼이나 자연스러웠다. 한때 그는 나비가 그 무늬의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재능을 자각하지 못했고 무늬가 쓸려나가거나 훼손되었을 때도 그 사실을 몰랐다. 나중에서야 날개가 손상되었다는 것과 날개의 구조를 의식하게 되었고 생각하는 법도 배웠지만 나는 것에 대한 열망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날 수가 없었다.
다만 힘들이지 않고 날 수 있었던 때를 기억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 『이동 축제일(A Moveable Feast)』 p.155~156
(본 정보는 도서의 일부 내용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은 반드시 책을 참조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