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조화로움과 균형의철학, 동양 고전!
우리 삶의 크고 작은 고민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또 그것을 동양의 사상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해석하고 풀어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28명의 사상가와 함께 동양고전을 이야기하며 인간, 사회, 우주로 나누어 살펴본다.
1장에서는 일상 속에서 늘 이기적 나와 이타적 나의갈등과 충돌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의 본성과 내면, 심리의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고민해온 동양의 사상가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2장에서는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위해, 또 우리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치열한 고민과 실천을 했던 동양의 대가들을 만날 수 있다. 3장에서는 소개하는대륙이 온통 전쟁으로 뒤덮인 시기에 무위사상을 논했던 노자, 민초의 고통을 함께하고자 했던 허행, 노자사상을 자신의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회남자등을 통해 독자의 시야는 나에게서 세계로, 다시 우주로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김경윤
서울 신당동에서 건설노동자 김태산 님과 가정주부 장금자 님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청구초등학교, 배명중학교, 성동고등학교를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작가가 되려는 마음으로 택한 전공이었기에, 한국과 동서양의 문학작품을 섭렵하며 대학 시절을보냈다. 철학 수업 또한 열심히 들었으며,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소위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읽던 사회과학 서적들도 무척 열심히 탐독했다. 결국현재는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인문학 강사로 활동 중이다. 청소년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서 경기도 고양시 마두동에 자유청소년도서관을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과 학부모, 교사 및 일반 성인 등을 대상으로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규율보다는 자유를,탁월함보다는 연대를, 똑똑함보다는 공감을 좋아하며, 소박한 하루들로 일생을 채우려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삶이 보이는 창」이라는 격월간잡지에 10년 넘게 철학 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으며, 『철학사냥1』『영어 뇌를 키우는 그리스로마 신화』 시리즈, 『청소년 논어』 『인문학레시피』『처음 만나는 우리 인문학』 등을 저술했다.
■ 차례
서문 -인간의 결을 따라서
01. 인간 : 이기적나와 이타적 나의 갈림길에서
행복한 이기주의자 - 양주
괴물의 출현 - 장자
나는 없다 - 싯다르타
불은 물로 끌 수 있지만 - 길장
무의식의 탐구자 - 현장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달마
본래 거울이 없는데먼지는 무슨 - 혜능
내 마음이 우주 - 육구연
앎과 함의 원리 - 왕수인
개 같은 인생 - 이지
02. 사회 : 반대로만 가는 세상,순응할까 맞설까
안 될 줄은 알지만 - 공자
쾌락의 공공성 - 맹자
청출어람의 정치 - 순자
불가능을꿈꾸는 리얼리스트 - 한비자
운명 따위는 없다 - 묵자
정치의 네트워크 - 동중서
이매진, 대동세계 - 캉유웨이
미완의 혁명 - 쑨원
혁명의 불꽃 - 마오쩌둥
03. 우주 : 우주와 인간의 원리, 무엇이 같고 다를까
소유 없는 생산, 지배 없는발전 - 노자
조화로운 삶 - 허행
동양의 스토아철학 - 회남자
우연의 긍정 - 왕충
뿌리와 가지의 사유 - 왕필
우주적 가족주의 - 장재
모든 강에 달이 비추고 - 주희
나라 잃은 백성의 철학 - 왕부지
카오스모스의 세계 -대진
도움을 받은책
처음 만나는 동양 고전
인간 : 이기적 나와 이타적 나의 갈림길에서
행복한 이기주의자 양주
역사 속에서 항상 개인은 있어왔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역사적 담론으로 등장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입니다. 그 이전에는 계층이나 계급의 형태로 인식되었지요. 특히 나라의 흥망성쇠가 조변석개(朝變夕改)하고, 군주가 자신의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확장해야만 했던 전국시대에 개인에 대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양주(楊朱, BC440~BC360)라는 인물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나라의 기운이 쇠하던 BC770년부터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 BC221년까지, 550여 년은 중국 대륙이 피바람으로 물든 시대이자 전쟁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그때를 춘추전국시대라 하지요. 그중에서도 전국시대는 강대국들이 상대방의 영토를 넘보고 침략하는 전쟁의 극성기였습니다.
그 전국시대의 중간이 양주가 활동한 시기입니다. 양주는 위나라 사람으로 양자(楊子), 양자거(楊子居), 양생(楊生)이라고도 불리지요. 그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맹자가 활동하던 시기의 가장 대중적인 사상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사상을 흔히 위아설(爲我說)이라고 합니다. 현대식으로 보면 이기주의라는 말과 짙게 교집합을 형성하는 이 말은 "털 하나를 뽑아 온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맹자는 양주의 사상을 일컬어 "사악한 설이 떠돌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인의의 도를 가로막고 있다"라고 하면서 양주는 자기만을 위하므로 이는 임금이 없음을 뜻하는 것(無君)이라고 혹평했습니다.
하지만 양주에 대한 혹평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 통일의 이론적 기초를 세운 한비자는 양주에 대해 "위험한 성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군대에는 머무르지 않았고, 천하에는 큰 이익을 위해 자기 정강이의 털 한 올과도 바꾸지 않았다"라고 서술한 뒤, "그는 물(物)을 가볍게 여기고, 삶(生)을 중히 여기는 경물중생의 선비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회남자』에서는 양주의 사상을 "생명을 온전하게 하여 그 진수를 보존하며 한갓 물질 때문에 누를 끼치지 않게 하는데, 이것이 양자가 수립한 학설이다"라고 기록해놓았습니다. 그리고 『열자』에서는 아예 전체 여덟 편 중 한 편을 뚝 떼어 양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양주는 왜 이기주의적 노선을 택했을까요? 양주가 이기주의적 견해를 취했던 대전제는 삶의 짧음과 죽음의 덧없음입니다.
양주는 말했다. "백 년이란 사람 목숨의 최대 한계여서, 백 년을 사는 사람은 천 명에 하나 꼴도 안 된다. 설사 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어려서 엄마 품에 안겨 있던 때와 늙어서 힘없는 때가 거의 그 삶의 절반을 차지할 것이다. 밤에 잠잘 때 활동이 멈춰진 시간과 낮에 깨어 있을 때 헛되이 앓은 시간이 또 거의 그 나머지 삶의 반을 차지할 것이다. 아프고 병들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자기를 잃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시간이 또 거의 그 나머지 삶의 반은 될 것이다.……황망히 한때의 헛된 영예를 다투면서 죽은 뒤에 남는 영광을 위해 우물쭈물 귀와 눈으로 듣고 보는 것을 삼가고,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옳고 그른 생각을 애석하게 여겨 공연히 좋은 시절의 지극한 즐거움을 잃으면서 한시도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한다. 형틀에 매어 있는 중죄수와 무엇이 다른가?" _ 『열자』
전국시대에 성공하는 길은 아마도 전쟁에 나가 공훈을 세우고 벼슬을 얻거나, 그 와중에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이었을 겁니다. 군대의 속성상 군사는 개별적인 존재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지위와 역할에 따라 상명하복하는 물화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전쟁 중에 군사가 죽었다 하더라도 전쟁을 지속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 군사의 자리에 다른 군사를 대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전쟁의 속성입니다.
군주는 군사를 모으기 위해 전쟁에서 승리하면 이러저러한 것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늪 속에 빠져 들어간 사람에게는 그런 약속의 대부분은 소용이 없었겠지요. 온갖 감언이설로 우리를 유혹하지만, 결국은 우리를 죽음의 늪으로 몰고 가는 그러한 사태, 그것이 비단 전국시대만의 일이겠습니까?
이러한 사태에 양주는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너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외부의 유혹을 무시해라. 그 유혹이 아무리 달콤한 것일지라도 넘어가지 마라. 너의 삶은 소중한 것이니 다른 것과 맞바꾸지 마라. 설령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세상이 모두 네 것이라 해도! 너의 삶은 다른 어떤 것과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의 삶은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너의 고유한 삶을 살아라. 유혹에 귀를 막고, 너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바로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라."
『열자』「양주」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털 한 올은 피부보다 작고, 피부는 사지 하나보다 작다. 그러나 많은 털을 모으면 피부만큼 중요하고, 많은 피부를 합하면 사지만큼 중요하다. 털 한 올도 본래 몸의 만분의 일 중 하나인데, 이를 어찌 가벼이 여길 것인가. 옛사람은 털 한 올을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 해도 결코 하지 않았고, 온 천하를 맡긴다 해도 받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털 한 올을 뽑지 않고, 또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려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천하는 안정될 것이다. _ 『열자』
천하를 이롭게 한다는 맹목적 정의감에 사로잡혀 있던 당대의 이데올로그들에게 양주는 말합니다. "그것은 네 말이고! 나한테 그따위 거짓말은 통하지 않아. 그러니까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 너를 위해서는 내 털 한 올도 움직이지 않을 테다."
남이 원하는 삶을 살다가 지치셨습니까? 남들과 똑같은 방향으로 가다가 회의를 느끼셨습니까? 더는 자신의 삶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양주를 만나십시오. 헛된 욕망을 위해서 자신의 털 한 올도 허비하지 마십시오.
사회 : 반대로만 가는 세상, 순응할까 맞설까
불가능을 꿈꾸는 리얼리스트 한비자
한비자(韓非子, ?~BC233)의 성은 한(韓)이요 이름은 비(非)입니다. 한비자는 전국시대 약소국이었던 한나라의 귀족이었습니다. 현실주의적 유교사상가 순자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다양한 학파의 이론을 접하였고, 나중에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하는 정치사상가가 됩니다.
유가사상과 법가사상은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정치사상을 펼쳤다는 점에서는 공통되지만, 지향점은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유가사상이 정치적 이상을 주나라로 설정하고 인과 예를 강조하는 보수적 흐름으로 귀결되었다면, 법가사상은 과거 정치사상을 부정하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진보적 흐름을 대변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비자는 현실적인 충고를 한나라 왕에게 무수히 많이 하지만, 그 충고는 번번이 거절됩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비자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이 『한비자』이지요.
진나라는 나라를 강성하게 하기 위해 중앙집권적 체제를 수립하고 법을 제정하고 혁신적인 정책을 폅니다.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한 사람이 바로 재상인 상앙(商鞅)이었습니다. 상앙은 기존의 법가사상가들의 정책을 받아들여 강력한 법치정책을 실천합니다. 이러한 상앙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면서 법치사상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은 이가 바로 한비자였습니다. 『한비자』「정법」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상앙이 진나라를 재상으로서 다스릴 때에는 서로 범죄를 고발하게 하고 연좌제를 썼다. 상은 후히 주고 또 누락시키지 않고 주었고, 벌을 줄 때는 엄격하게 해서 용서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진나라 백성들은 힘써 일하며 쉴 줄을 몰랐고 적을 추적할 때는 위험해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나라는 부유해지고 군대는 강해졌다. 그러나 군주에게 백성의 속임수를 간파할 수 있는 통치술이 없었으므로, 그 부유함과 강함으로 신하들의 세력을 키워주었을 뿐이다. _ 『한비자』
진나라 상앙이 시행한 정책의 의의와 한계까지 꿰뚫어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한비자인 셈입니다. 그러니 한비자의 저술이 진왕의 눈에 들었던 게지요. 진왕의 심중을 파악한 승상 이사(李斯)는 진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려 하면 분명히 한나라에서는 평화 협상을 요구하면서 사신을 파견할 텐데 그때 한비자를 불러들이면 된다고 충고합니다. 이 충고는 그대로 받아들여져 진왕은 한비자를 만나게 됩니다. 진왕은 그를 자기 수중에 넣으려는 마음에 높은 지위를 약속합니다.
『한비자』는 예상 독자층을 군주로 삼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책에는 대부분 군주로서 해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 권장해야 할 일들과 경계해야 할 일들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군주는 계산으로 신하를 기르고 신하 또한 계산으로 군주에게 일을 한다. 군주와 신하는 서로 계산을 한다. 자기 몸을 해쳐서 나라를 이롭게 하는 일을 신하는 하지 않는다. 나라를 해쳐서 신하를 이롭게 하는 일을 군주는 하지 않는다. 신하의 실정은 자기 몸을 해치게 되면 이득이 없는 것이고, 군주의 실정은 나라가 해를 입으면 가까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군주와 신하는 계산으로 만난다. 따라서 신하들로 하여금 무릇 어려운 일을 당하여 반드시 죽을 각오를 하고 그들의 지능과 힘을 다하게 하는 것은 법이다. 따라서 이전의 훌륭한 군주들은 상을 내리는 조건을 명시하여 신하들을 분발하게 했고 엄혹한 형벌로 그들을 위엄 있게 다스렸다. 상과 벌의 시행이 분명하면 백성은 모두 목숨을 다해 일을 하고, 백성이 목숨을 다해 일하면 군대가 강해지고 군주의 위세는 높아진다. 형벌과 상의 시행원칙을 분명히 파악하지 못하면 백성이 나라에 공로가 없어도 이득을 얻게 되고, 죄를 지어도 형벌을 요행으로 피하게 된다. 그러면 군대는 약해지고 군주의 위세는 낮아진다. _ 『한비자』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계산 관계로 보는 냉철함에서 그의 지난한 현실주의를 읽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충(忠)이니 의리(義理)니 하는 추상적 윤리가 개입할 자리가 없습니다. 이익(利益)이라는 철저히 현실주의적 원리가 적용될 뿐입니다. 이처럼 한비자는 군주 자리를 계산의 자리, 냉철함의 자리로 보았고, 그를 통해서 나라가 부강해지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한비자는 저술을 통해 객관적 법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인 술(術), 초월적 권위인 세(勢) 등을 확보하는 것이 군주권을 지키는 데 핵심적인 것이라 보았습니다. 엄정한 법의 집행에는 신분 고하를 막론해야 합니다. 군주의 권력을 신하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여우나 뱀 같은 교활한 지혜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한비자는 이렇게 생각했던 게지요. 그래서 한비자를 법술가(法術家)라고도 일컫고,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도 해석합니다.
진나라의 왕은 한비자의 이론을 자신의 정책에 반영하였고 그를 통해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이론을 제공한 한비자의 말로는 비참합니다. 진나라의 승상이자 이전에 한비자와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이사는 한비자가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중용한다면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워질 것도 예상했습니다. 이러한 사태를 막는 것은 한비자를 모함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한비자는 이사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히자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게 됩니다. 그리고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 역시 15년 만에 몰락하고 맙니다.
한비자는 죽었지만 그의 저서인 『한비자』는 여전히 남아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한비자』의 「망징」에 나오는 나라가 망하는 징조 중 일부를 소개할까 합니다. 오늘날의 현실과 비교해보면 시사하는 바가 사뭇 큽니다.
군주가 궁전과 누각과 정원과 연못 같은 토목 건축을 좋아하고, 수레와 말, 의복과 기이한 물건, 그 밖에 오락물에 골몰하고, 그 때문에 백성을 고달프게 하여 재정을 낭비하면 나라는 망한다.
군주가 자기 마음대로 포상하기를 좋아하고, 법규를 따르지 않으며, 말만 앞세우고 실용성을 따지지 않고 겉치레에만 골몰하여 전시효과만 노리면 나라는 망한다.
군주가 억지를 부리며 심술궂고, 사람과 화목하지 못하며, 충고를 배척하고, 남을 공격하기를 좋아하며, 국가를 돌보지 않고 경거망동하며, 더욱이 자신이 있다는 듯이 서두르는 나라는 망한다.
동맹국의 원조를 믿고, 이웃 나라를 가벼이 여기면 그러한 나라는 망한다.
군주가 법률을 왜곡하며 사사로운 일을 공적인 일처럼 처리하고, 법령을 함부로 변경하면서 수시로 호령을 내리면 그 나라는 망한다.
신하들이 공리공담을 쫓고, 대부의 자제들이 변론을 일삼으며, 상인들이 재물을 다른 나라에 쌓아놓고 백성들이 곤궁하면 나라는 망한다.
군주가 성미가 급하며, 안정되지 못하고 무슨 일이나 성을 내며, 앞뒤를 가리지 못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_ 『한비자』
우주 : 우주와 인간의 원리, 무엇이 같고 다를까
뿌리와 가지의 사유 왕필
서양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도토리 한 알 속에는 이미 도토리나무가 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나무가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나무는 무엇인가? 나무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나무는 무엇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나무는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지는가? 결국 도토리나무가 되려면 애당초 도토리나무라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러한 목적을 향하여 여러 질료가 도토리나무의 형상을 가지고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도토리나무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만물 속에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려는 역동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사람 왕필(王弼, 226~249)도 나무를 가지고 사유한 철학자입니다. 생몰연대를 보면 알겠지만 그는 스물넷에 전염병으로 요절했지만 1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긴 대학자이기도 합니다. 특히 중국 철학에서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노자』와 『주역(周易)』에 주석서를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노자주(老子注)』와 『주역주(周易注)』는 지금까지도 가장 권위 있는 주석서로 인정받고 있으니 그의 천재성을 가히 짐작할 수 있겠지요.
그의 천재성이 빛나는 부분은 그 어려운 책들을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나의 구조로 꿰뚫었다는 데 있습니다. 통상 주석은 원문보다 자세하고 정밀해야 하기 때문에 그 길이가 길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왕필은 『노자』에 주석을 달 때 원문의 글자수와 비슷한 분량 정도로만 주석을 달았습니다. 이 과감한 행위는 후대 학자들에게서 어느 것이 원문이고 어느 것이 주석인지 모를 정도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노자주』를 완성한 것이 18세 때이고, 『주역주』를 완성한 것이 24세 때라는 점입니다.
통상적으로 왕필의 사상을 본말론(本末論)이라고 합니다. 뿌리와 가지의 이론이라고 풀어볼 수 있겠네요. 왕필은 『노자』에 주석을 달면서 이 본말론을 이용합니다. 우선 『노자』40장을 볼까요.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고
유약한 것이 도의 쓰임이다.
천하만물은 있음에서 생겨나고
있음은 없음에서 생겨난다.
弱者, 道之用, 反者, 道之動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 『노자』
이에 대해 왕필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높음은 낮음을 토대로 삼고, 귀한 것은 천한 것을 뿌리로 삼는다. 있음은 없음을 쓰임으로 삼으니, 이것이 되돌아간다는 뜻이다.……천하만물은 모두 있음에서 생겨났지만 있음은 없음을 뿌리로 삼아 시작되므로, 장차 온전히 있으려면 반드시 없음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高以下爲基, 貴以賤爲本, 有以無爲用, 此基反也,……天下之物, 皆以有爲生.
有之所始, 以無爲本, 將欲全有, 必反於無也. _ 『노자주』
노자의 있음/없음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왕필이 선택한 구체적 이미지가 뿌리입니다. 마치 나뭇가지가 자라고 나뭇잎이 무성해지고 열매를 맺고 하는 눈에 보이는(有) 다양한 현상은 결국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無) 그 뿌리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눈에 보이는 개별 현상(有)에서 눈을 돌려 눈에 보이지 않는 근본(無), 즉 뿌리(本)를 성찰하라는 이야기이지요.
왕필이 살았던 시대는 삼국시대입니다. 왕필은 조조의 양자인 하안(何晏)의 눈에 들어 사랑을 받습니다. 왕필의 집안은 대대로 역학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그 덕분에 왕필은 어렸을 때부터 늘 유명한 사상가들과 정치가들을 만날 수 있었지요. 또한 그의 집 안은 만 권 서적이 쌓여 있었다고 하니 왕필의 천재성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하지만 왕필의 집안은 정치적 격변기에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재난을 겪기도 합니다. 일찍이 왕필이 정치권과는 거리를 두고 학문에 열중했던 것도 이런 이유는 아니었을까요?
왕필은 당시 유행하던 법가, 유가, 묵가, 잡가 등의 사상을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가 보기에는 현실에 대한 이런저런 처방만으로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버리고 자식을 사용하는 어리석음이라고 할까요? 그가 근본적 반성과 성찰로 사용한 도구가 바로 『노자』와 『주역』이었지요. 현상 속에 감추어진 존재의 원리를 탐구하려 했던 야심찬 기획의 결과가 『노자주』와 『주역주』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왕필이 추구하는 이상적 사회는 어떤 사회였을까요?
대개 많음으로는 적음을 다스릴 수 없고, 다스릴 수 있는 많은 것은 절대적으로 작은 것이다. 대개 움직임은 움직임을 통제할 수 없으니, 천하의 모든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저 하나(一)를 체득하고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많음이 모두 함께 존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군주는 반드시 하나를 달성해야 한다. _ 『주역약례』
위 글을 보면 많음/적음, 움직임/움직이지 않음(一)이 대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부동의 동자(the Unmoved Mover)의 개념으로 신(神)을 설명하듯이 왕필은 하나(一)의 원리로 움직임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이념을 보이지 않게 세워주었듯이, 왕필은 군주의 이념을 세웁니다. 하나를 달성한 군주! 이제 군주는 이 하나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함과 동시에 스스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때 군주는 흉폭하고 제멋대로 권력을 행사하는 군주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더 고결하고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는 군주이지요. 마치 식물을 기르는 뿌리와 같이, 자식을 기르는 어머니와 같이, 보이는 곳에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서지 않고 자신을 감추면서 통치하는 군주라고나 할까요? 이러한 군주의 통치는 노자의 무위사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노자도 이렇게 말했지요.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그 있음조차 모르게 하는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제일 하치는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지도자. -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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