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짜든지 내캉 살아요

   
도정
ǻ
공감
   
14000
2014�� 06��



■ 책 소개 


승려시인 도정의 첫 감동에세이! 


만남도 이별도 흔한 세상에 인연의 소중함을 노래한다 






여기 팔순의 공양주 할매 보살과 젊은 주지스님의 특별하고도 애틋한 인연이 있다. 이 둘은 경상도 사투리로 서로에게 "시님"과 "할매"로 부른다. 같이 장도 담그고, 면에 파마도 하러 가고, 마주 앉아 도라지 껍질도 까고,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더없는 정도 살갑게 나눈다. 






시인 도정스님은 이런 사소한 일상을 페이스북을 통해 올리면서 ‘시님’과 ‘할매’의 팔로어들이 뭉쳐지고, 그들의 뜨거운 호응과 공감에 힘입어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스님과 공양주 할매의 알콩달콩 따뜻하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한적하고 고요한 산사의 사계절 풍경과 더불어 이웃들의 소소한 나눔의 정을 담뿍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사람 사는 냄새 진하게 묻어나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는 읽는 재미를 주는 덤이고, ‘톺아보다’ ‘졸가리’ ‘잉걸불’ ‘비루먹다’와 같은 잊힌 우리말은 비속어 판치는 요즘 세대에게 반갑고도 귀한 선물이다. 






■ 저자 도정 


경북 울진 출생. 하동 쌍계사에서 원정스님을 은사로 출가, 양산 통도사에서 고산 큰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아 현재는 합천 용지암의 주지로 있으면서 쌍계사 율원에서 수행 정진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승려 시인’ 김도정이라는 이름으로 시를 나누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문예지에 시 「뜨겁고 싶었네」로 등단, 저서로 시집 『누워서 피는 꽃』 『정녕, 꿈이기에 사랑을 다 하였습니다』가 있다.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원, 경남시인협회, 현대문예사조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 차례 


이야기 하나 


곰탕 이야기 1 


곰탕 이야기 2 


마른장마 - 소나기 한때 


삼총사 


할매의 파마 - 안경과 꿀물 


도라지 반찬 


해우소 예찬 - 해우소 


복(福) 


하늘이 


손톱이 아린다 


진순이와 갑순이 


절에 다리 - 할매와 상사화 


고물 수집상 - 법당문을 닫으며 


검정 비닐봉지 - 우리 할매 조으르십니다 






이야기 둘 


동지 


겨울 운동화 


밀행보살님 


할매, 비 옵니다 


입수구리 


숭악한 중 


박갑이 할머니 된장 맛 


할매의 눈물 - 내캉 살아요 


할매의 정 


고추장 담는 날 


대나무 치기 


시끄러버요! 


고단한 역사 - 동글동글 너였구나 


할매, 스트레스 주기 






이야기 셋 


빈집 - 붓다의 뗏목 


촌두부 


새해 


메밀묵 


장날 


풍등을 날리며 


방생법회 


태중영가 재를 지내던 날 


할매의 결심 


제주도 여행 


할매 걱정은 한 가마 


미운 놈 떡 하나 더 


초파일 행사 


딱새의 비극 - 고양이를 쫓아내다 


할매, 다녀올게요 




우짜든지 내캉 살아요


이야기 하나

곰탕 이야기1

제가 지금 살고 있는 합천 삼가 용지암으로 오게 된 것은 사미계를 받자마자 은사스님께서 저를 밑에 두지 않으시고 따로 두었기 때문입니다. 암자에 오니 제가 할매라고 부르는 나이 드신 할머니 보살님 혼자 살고 계셨습니다. 스님이 상주하지 않았던 암자인지라 불자님들도 거의 찾아오지 않았지요. 처음 암자에 와서 과일 사고 떡 하고 그 외에 이리저리 준비한 비용을 빼고 나니 초파일을 지나고 100만 원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 돈으로 1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먹을 게 넉넉했을 리 없지요. 할머니 보살님은 내 집이려니 생각하고 암자에 혼자 사신 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할매는 원래부터 비린 것, 기름기 있는 걸 잘 못 잡수십니다. 그러니 그때의 몸무게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42킬로그램을 넘지 못합니다.


그래도 적적한 암자에 스님이 살러 왔다고 없는 반찬이나마 매일 계란프라이를 해주셨습니다. 나에게는 이것저것 챙겨주시면서 정작 할매는 대충 드십니다. 이가 틀니여서 딱딱한 것을 못 잡수시니 된장찌개 아니면 간장 한 종지만 떠놓고 숟가락 끝으로 콕콕 찍어 드셨습니다. 연세가 여든이 다 되었으니 기력도 없으셨지요. 자꾸 어지럽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매번 손주 같고 늦둥이 막내아들 같은 젊은 중이 살이라도 빠질까봐 끼니때마다 계란프라이나 각종 전을 구워 섬기는 그 못브이 어찌나 감사하고 죄스럽던지요. 가족도 없이 점점 기력이 쇠하는 모습을 보니 돌아가신 할머니를 뵙는 듯하여 가슴이 아팠습니다. 영양제를 사다드렸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법당에 들어 부처님께 먼저 삼배를 올리고 한 가지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러고는 한여름임에도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는 가마솥에 물이 끓을 동안 버스를 타고 면소재지 시장 푸줏간으로 갔습니다. 승복을 입은 중이 들어서니 푸줏간 주인이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짜고짜 소뼈를 주문해서는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왔지요. 속가에 있을 때 곰탕 끓이는 정도는 익숙했던 일인지라 소뼈를 물에 담가 핏물을 빼내고 초벌로 삶아서 다시 찬물에 깨끗이 씻은 다음 본격적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곰탕을 끓였습니다. 간도 크게 사미승이 절간에서 곰탕을 끓인 겁니다.


나는 그때 소뼈를 우려낸 것이 아니라 기력 없는 한 분의 보살님을 위해 보약을 우려내는 심정으로 곰탕을 끓였습니다. 내 방은 그날 밤새 발을 듣지 못할 정도로 뜨거워 마루에서 모기향에 의지해 잠을 자야 했습니다. 한여름에 열두 시간 넘게 군불을 지폈으니 몇날 며칠을 후끈후끈 찜통이 따로 없었지요.


할매는 할매대로 안절부절 못합니다. 절에서 곰탕 끓이는 것을 누가 알기라도 할까봐 대문도 꽁꽁 닫아걸고 젊은 중의 행사를 말리다 지쳤습니다. 열두 시간 이상 가마솥에서 뽀얗게 우러난 뼈의 진실은 진하디 진한 감동입니다.


나는 할매 대신 처음으로 아침을 준비하여 밥상에 곰탕을 올렸습니다. 할매는 머뭇거리십니다. 그럴 수밖에요. 평생 부처님을 섬기며 살았는데 스님에게 곰탕을 얻어먹으려니 어찌 머뭇거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파도 썰어 넣고 소금도 넣고는 억지로 숟가락을 디밀었습니다.

"보살님 이거 안 먹으면 여름 못납니다. 그렇게 기력이 떨어져서야……. 병나시면 제가 수발 다 들어야 돼요. 나 여기 병 수발하러 온 거 아니니까 얼른 드세요. 며칠 드시고 나면 좀 나아질 겁니다."


정말이지 그때는 할매가 얼마 못 사실 것 같았습니다. 자꾸 밥상 뒤로 물러나는 할매의 옷소매를 당기며 나도 같이 먹을 테니 드시라고 강권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은 같이 곰탕을 먹은 것 같습니다.


노인들은 먹으면 금방 표시가 납니다. 대신 오래가지 못하지요. 그래도 다행히 곰탕의 효력 때문인지 무사히 그해 여름을 잘 넘긴 할매는 지금 이생에서 여든일곱 해를 지나고 있습니다.


도라지 반찬

종삼이 엄마가 집 밭에서 키운 도라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불이 끝나자마자 할매가 도라지를 까라고 시킵니다. 좀 쉬었다 하자고 잠시 방으로 도망갔다 나오니 할매 혼자서 시작했습니다. 나란히 앉아 도라지 껍질을 벗기자니 할매가 옛날 얘기를 하십니다. 흥부 놀부 얘깁니다. 잘 아는 동화라도 할매가 얘기할 때는 인내심을 갖고 맞장구도 쳐주고 잘 들어주어야 한다는 걸 이미 터득한 바입니다.


"테레비에 보니까 보오얀 제비가 나오던데, 어찌 그리 보오얀 제비가 있는지 몰라."

"글게, 요즘은 제비 구경도 몬하고, 제비도 없어. 안초댁에도 매년 제비가 집을 짓더만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다 케!"

"구러게요. 왜 제비가 안 온대요? 이상한 일이네요. 우리 동네도 제비 구경을 못하겠대요."

"글게! 제비가 강남 가다가 다 얼어 죽었다 안 카나. 배 타고 가다가 다 얼어 죽고, 오도 안한다 카데요."


이렇게 시작된 얘기는 흥부 놀부 얘기로 넘어가고, 애들도 참 많이도 낳았다고 하다가, 다시 놀부 마누라가 주걱에 물 묻혀 흥부 뺨을 때린 얘기를 합니다.

"그렇게 모질고 나쁜 인심이 어딨노!"

"그러게요. 놀부 마누라가 참 인심도 사납다."

"글게, 요즘도 인심 사나운 마누라가 참 많아. 그 있잖나. 석자 어매는 얼마나 착하둥지……."


할매의 얘기는 또 다른 얘기로 계속 이어지고 나는 열심히 맞장구치며 도라지를 깝니다. 할매는 손가락이 아파 실금실금 까면서 도라지 무치는 얘기까지 이어집니다.

"할매, 그런데 오늘은 왜 점심 줄 생각을 안 하노?"

"도라지를 다 까야 점심을 주지. 그냥 주나?"

"할매, 도라지 공장에 가 봐요. 다 밥 먹이고 일시키지. 밥도 안 주고 일시키는 데가 어딨노?"

"하이고, 어디 가 보세요! 도라지마저 까기도 전에 밥 주는 데가 있는지. 다 까야 밥 줘요!"

"할매, 하이고! 그런 숭악한 데가 어딨노!"

"시끄러버요. 언능 다 하기나 해요!"


낮 12시면 먹는 점심인데 1시가 넘어서야 도라지를 다 까고, 도라지 무침이 놓일 할매의 밥상을 기다다립니다. 아, 배고파라!



이야기 둘

할매의 눈물

할매는 이번에도 큰절에 일을 도와주러 가셨습니다. 할매가 안 계시니 암자가 일주일째 텅 빈 느낌입니다. 공양주 없는 큰절에 절집 지키느라 불려가는 차 안에서 할매는 내 손을 잡고 불안스럽게 말했습니다.

"스님, 미우나 고우나 나랑 같이 살아요."

그날따라 가는 길이 왜 그리도 멀게 느껴지던지…….


저녁이 되어 할매를 모셔왔습니다. 4시 반쯤 갑자기 할매께 데리러 오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말을 들어보니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돌아가고 다리 경련이 일어났답니다. "아프다고 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더라."며 우셨습니다.


급히 차를 몰아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달려갔습니다. 할매는 벌써 짐을 싸들고 밖에 나와서 이제나저제나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울어서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됐습니다. 입던 옷을 빨아 얇은 여름 몸빼만 입고 떨고 섰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차 타고 오는 내내 지난 엿새 동안 섭섭했던 사연들을 하나하나 일러줍니다. 들어보니 섭섭한 게 많습니다. 오는 내내 울먹이면서 몇 번이고 다시 저에게 일러줍니다.


집에 도착하자 할매는 속상해서 저녁도 안 먹고 왔다며 매실장아찌 한 가지로 겨우 허기를 달랩니다. 관절염으로 틀어진 할매 손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조물조물 한참을 만져드리자 다행히 손마디가 풀어진다고 하십니다. 방에 이불을 깔아 드리자 할매는 일찍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할매의 고단한 일생을 서러워하듯 밖에는 비구름을 모는 밤바람이 불고 뒷단 대나무밭이 울어주었습니다.


내캉 살아요

할매,

내 손을 잡고 말했었지요


시님, 내캉 살아요.

우짜든지 내캉 살아요


할매,

이제 내가 말할게요

우짜든지 내캉 살아요


거실에 나무난로 불을 지폈으니

곱은 손 녹이며

같이 고구마도 감자도 구워 먹읍시다


할매,

그런데 왜 나는 저 황량한 언덕 너머

낙엽 진 자작나무 숲으로

참나무, 소나무 숲으로

가슴 움켜쥐고 달아날까요


법당 뒤에는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가 드러웠어요

할매는 드려진 대나무를 매번 치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살 비비며 우는 소리가 좋아요

살 비비며 우는 소리가 좋아요


할매,

내 손 꼭 쥐고 말했었지요

내캉 살자고요

내캉, 우짜든지 내캉 살자고요


할매,

그래요, 정말 그래요

우리 함께 살아요

남들 갖는 미움 놓고

따뜻한 불 쬐며

함께 살아요

함께 살아요



이야기 셋

빈집

1

할매가 안 계신 오늘 저녁은 절집이 텅 빈 느낌입니다. 어제부터 큰스님 절에 며칠 밥 좀 해주러 갔다 와야겠다고 노래를 부르시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데려다 달라고 조릅니다. 오늘은 점심 먹고 어제 산에서 잘라놓은 나무도 가져와야 하고, 힘들게 일한 뒤라 저녁에 데려다 드리기가 어려우니 아침에 가자고 내가 타협안을 꺼냈습니다.


할매는 막무가내로 오늘 저녁에 가야겠다고 우깁니다. 나는 방에 불도 때야 하고 가마솥에 물 데워 샤워도 해야 하니 아침에 가자고 다시 말합니다. 그래도 할매는 무조건 안 된다고 우깁니다. 그러고는 그만 삐져서 입이 툭 튀어나옵니다. 할매는 오전 내내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혼잣말로 투덜대고, 나는 나대로 가시방석에 앉은 심정이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일찍 나무를 하러 차를 몰고 산으로 갑니다. 할매는 여전히 꽁한 마음으로 아래채에서 이런저런 살림살이를 손보고 계십니다. 점심때가 지나고 할매와 마주 앉은 밥상에도 싸늘한 냉기가 돕니다.


"할매, 나이 들수록 자꾸 노여움 타면 안 돼요."

"그러게, 시님이 왜 화가 나게 만드누!"

"할매, 이제 3월 되면 나도 공부하러 갈지도 모르는데, 나 없으면 섭섭해서 우짤라꼬 자꾸 노여움 타고 그라요. 지금까지 할매하고 산다고 공부도 뒤로 미뤘는데, 이제는 은사스님도 나 보고 공부하러 가라 안 합니까. 내 없어도 할매 거실 난로 때고 살라꼬 나무도 넉넉하게 해놓고 갈라고 하는 건데……, 이제 할매 혼자 살아야 될지도 모릅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할매의 눈이 옅게 젖습니다. 그리고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내도 따라가면 되지 뭐. 시님 공부하는 데 나도 따라가서 밥해주면 되지 그라노."

"스님들 공부하는 데는 밖의 사람은 못 와요. 그리고 누구 다른 스님이 여기에 살러 올 수도 있고. 보살님은 여기 살아야지 어떻게 따라옵니까."

"내는 참말이다! 스님 따라 갈란다."

"거기는 못 따라오는 곳이라 해도 그러네요."

"그럼 맨날 공부만 하나? 방학도 있고, 왔다 갔다 하면 되지. 누가 못 오라 카나? 시님이 이 집도 지었는데 시님이 살아야지 누가 살 끼고. 여기는 아무도 못 살게 할 기다. 공부하러 가더라도 짐도 그대로 놔두고 가요. 누구 말도 듣지 말고 내 말만 들어요. 참말이다, 내가 있으면서 아무도 못 오게 할 끼다. 시님이 와요. 2년 동안 내가 죽을란지 살란지 몰라도 공부 다 하고 올 때까정 기다리면 되지. 아무도 못 오게 할 끼다."


할매와 나는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서로 밥맛이 없어서 밥을 반이나 덜어내고 먹었습니다. 그리고 실어온 나무를 도끼로 쪼개었습니다. 혹시 몰라 할매가 들고 나르기 쉽도록 되도록 잘개 쪼갰습니다. 내 방에 땔감은 밖에 쌓아 비닐을 덮고, 거실 난로에 쓸 땔깜은 아래채 처마 밑에 비 안 맞는 곳에 내 키만큼 차곡차곡 쌓아두었습니다. 내가 자꾸 말려도 할매도 밖에 나와 장작 나르는 일을 거듭니다.


내게는 오늘 장작 쌓은 일이 어쩌면 이별을 쌓는 연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을 사는 것도 어쩌면 이별을 쌓는 일인 것만 같습니다. 장작이 앞으로 쏟아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뒷벽 공간을 두고 장작을 쌓듯이, 할매와의 이별의 예감은 내 가슴에 허전한 공간을 만듭니다. 이런 생각들이 찬바람을 몰고 와 가슴 저 밑바닥을 갈퀴처럼 훑고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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