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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싱킹 머신, 젠슨 황 엔비디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탐나는 마이크로칩
하나의 마이크로칩으로 읽는 거대한 권력 지도
엔비디아의 칩은 처음에는 단지 게임 그래픽을 빠르고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부품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이제 이 작은 실리콘 조각은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의 심장에 가까운 역할을 한다. 거대한 언어 모델 이미지 생성 서비스 자율주행 시스템 과학 시뮬레이션 같은 방대한 연산이 모두 이와 같은 종류의 칩 위에서 수행된다. 젠슨 황과 엔비디아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인공지능 시대의 권력이 어떤 구조와 정서를 따라 움직이는지 드러난다. 한 사람의 성공담을 넘어 기술과 자본 국가와 시장이 어떻게 한 지점으로 모여드는지 보여 주는 긴 서사로 읽힌다.
"우리는 지금 AI의 아이폰 순간에 서 있다(we are in the iPhone moment of AI)."
그가 남긴 이 짧은 문장은 이 시대의 공기를 압축한다. 스마트폰이 한때 일상의 거의 모든 장면을 다시 썼듯이 인공지능도 지금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인프라의 깊은 층에서 문명을 조용히 재설계하고 있다. 이 변화의 과정을 하나의 마이크로칩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면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온다. 한 사람과 한 회사의 궤적이 전체 기술 시스템의 변화를 굴절시켜 보여 주는 프리즘이 되는 것이다.
게임 칩 회사에서 인공지능 인프라 기업으로
이 이야기의 출발점은 슈퍼컴퓨터가 아니라 비디오게임이다. 초기 엔비디아는 화면 속 세계를 더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그려 주는 그래픽 칩을 만들던 회사였다. 첫 상용 제품이 시장이 실제로 원하는 것과 어긋나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위기에 직면하자 젠슨 황과 동료들은 다시 설계 도면 앞에 섰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단지 화려한 화면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연이 적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동시에 원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어디에서 병목이 생기고 어느 지점에서 병렬 처리가 필수적인지 샅샅이 들여다보는 습관이 이때 조직 안에 뿌리내린다.
이 첫 실패는 작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황과 팀은 자신들의 강점이 게임이라는 좁은 시장 안에만 머물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다. 수많은 연산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능력은 그래픽을 넘어 과학 계산 데이터 분석 그리고 결국 인공지능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단기 실적에 매달리는 시장의 시선과는 별개로 병렬 처리를 미래 연산의 축으로 삼아 장기적인 베팅을 건다. 생성형 인공지능 열풍이 본격적으로 닥쳐왔을 때 많은 기업과 연구자가 이미 엔비디아의 칩과 도구 위에서 실험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선행된 결정이 경쟁의 조건을 바꾸어 놓았음을 보여준다.
쿠다라는 언어와 생각하는 기계의 이미지
엔비디아의 전환을 이해하려면 칩만 바라봐서는 부족하다. 쿠다라는 개발 환경은 원래 그래픽 전용으로 여겨졌던 칩을 범용 연산 장치로 다시 정의했다. 연구자와 스타트업 그리고 대형 기술 기업들이 이 환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엔비디아의 칩은 단순한 부품을 넘어 하나의 언어로 변신한다. 새로운 인공지능 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이 언어와 도구부터 떠올리게 되는 구조가 짜인다.
"가속 컴퓨팅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갈 길이다(accelerated computing is the path forward)."
젠슨 황이 여러 자리에서 되풀이해 온 이 말은 전략의 중심을 상징한다. 하나의 중앙처리장치 속도를 끝없이 끌어올리는 대신 수많은 작은 연산 단위를 동시에 움직이는 방식이 미래 계산법이라는 주장이다. 연구 개발 투자 제품 로드맵 고객 교육까지 모든 것이 이 원칙을 향해 끌려 들어간다. 인공지능 서비스의 겉모습은 제각각이지만 그 내부에는 비슷한 연산 구조가 흐르고 있고 그 구조를 설계한 쪽이 사실상 인공지능 시대의 기본 규칙을 정하게 된다.
"많이 살수록 더 많이 절약하게 된다(the more you buy the more you save)."
농담처럼 던진 이 말은 데이터센터 시대의 경제 논리를 압축한다. 인공지능 연산에 특화된 칩과 시스템을 대규모로 도입할수록 계산의 단가가 떨어지고 경쟁자가 따라잡기 어려운 격차가 벌어진다. 이 문장은 가벼운 농담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표현을 넘어 자본과 인프라를 이미 보유한 기업일수록 더 빠르게 앞서 나갈 수 있는 구조를 은유하는 말로 읽힌다. 인공지능 인프라를 둘러싼 불평등의 씨앗이 이미 이런 계산법 속에 들어 있는 셈이다.
이민자 청년의 불안과 집착으로 세워진 제국
젠슨 황은 차갑게 계산하는 공학자라기보다 긴 시간 동안 이민자의 불안과 집착에 의해 빚어진 존재에 가깝게 보인다. 낯선 나라에서 성장한 경험 기숙학교 생활과 식당 노동 같은 장면들은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는 감각을 남겼다. 회사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는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떠올리고 경쟁사 기술 변화 고객 이탈을 거의 과장된 수준으로 경계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 거의 비관에 가까운 상상력이 오히려 회사를 다음 단계로 떠밀어 올린 힘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엔비디아 내부에서 황은 매우 높은 기준과 강한 존재감을 동시에 요구하는 리더로 알려져 있다. 회의에서 설계와 숫자를 끝까지 파고드는 태도는 존경과 두려움이 섞인 감정을 만들어낸다. 성과가 좋을 때는 관대함과 자신감이 조직을 감싸지만 위기가 다가오면 날 선 압박이 전면에 드러난다. 인공지능 시대를 이끄는 거대 기업의 성취 뒤에는 분노와 피로 진심 어린 흥분이 교차하는 매우 인간적인 리듬이 흐르고 있고 칩을 둘러싼 문화는 이런 정서의 흐름 위에서 형성된다.
지정학과 부딪히는 인공지능 칩
인공지능 모델에 필요한 연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고성능 칩은 더 이상 단순한 상업 제품이 아니다. 각국 정부는 이 칩을 군사력 정보력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 전략 자산으로 본다. 어떤 나라에 어느 성능의 칩을 허용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연산 능력을 제공할 것인지는 이제 수출 규제와 안보 정책 동맹 관리의 문제가 된다.
이 서판 위에서 엔비디아와 젠슨 황은 단순한 시장 참여자를 넘어 정책과 외교의 테이블에 함께 앉아야 하는 행위자로 변한다. 한쪽에서는 특정 국가의 인공지능 능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지나친 규제가 오히려 기술 자립을 앞당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가 안보를 지키면서도 인공지능 발전이 의존하는 글로벌 공급망과 연구 네트워크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라는 문제가 그 사이에 놓인다. 회사 전략과 국가 전략이 불편한 방식으로 겹쳐지고 제품 라인과 고객 목록에 관한 결정이 지정학적 무게를 띠기 시작한다.
에너지 인프라와 노동 시장의 재편
엔비디아의 칩이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 깔리면서 전력과 공간 노동의 배치도 함께 바뀐다. 인공지능 모델을 학습시키고 서비스로 운영하려면 막대한 전력과 냉각 설비 그리고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어느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어느 도시에 더 많은 전력을 보낼지에 대한 결정은 지역 경제와 환경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나의 기업이 설계한 제품과 아키텍처가 도시 계획과 국가 에너지 전략에서 중요한 변수가 되는 구조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켰다면 이제 인공지능이 소프트웨어를 집어삼킬 것이다(software is eating the world but AI is going to eat software)."
이는 현재를 예고한 선언처럼 들린다. 소프트웨어가 산업과 일상을 바꾸던 시대에서 다시 인공지능이 소프트웨어의 구조와 노동을 바꾸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복적인 정보 처리와 패턴 인식 업무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수록 일부 일자리는 줄어들고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이 생겨난다. 새로운 역할은 더 높은 수준의 기술과 교육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소득 격차와 교육 격차가 함께 벌어질 위험을 낳는다. 인공지능 인프라의 성공은 이러한 긴장을 확대시키며 누가 변화의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것인지라는 질문을 키운다. 연산 구조 자체가 이렇게 큰 압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책임의 문제를 규제 기관이나 의회 안에만 가둘 수 없게 된다.
한국적 맥락에서 떠오르는 질문들
같은 이야기를 한국에서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지역적인 질문들이 생긴다. 공공 데이터센터와 대학 연구기관 스타트업이 어떤 칩과 어떤 플랫폼에 의존할 것인지 그리고 그런 선택이 장기적으로 기술 주권과 산업 전략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생각하게 된다. 제조 역량이 강한 나라라 해도 인공지능 연산 환경의 표준이 외부에서 정해진다면 실제 권력의 중심은 설계와 생태계를 쥔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공공 서비스 영역이 인공지능을 도입할 때 특정 업체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게 만드는 장치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행정 복지 교육 의료에서 누가 무엇을 받는지 나누는 기준이 될수록 그 기준 안에 누구의 설계와 이해관계가 스며 있는지 묻는 일이 시급해진다. 특정 회사의 칩과 플랫폼에서 떨어진 곳이 아니라 그 위에서 바로 이런 논쟁을 해야 한다는 점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엔비디아와 젠슨 황의 사례는 이 질문들을 구체적으로 그려 볼 수 있게 해 주는 하나의 생생한 장면이 된다.
생각하는 기계의 시대와 시민적 상상력
전체 궤적을 하나로 묶어 보면 인공지능의 시대를 이해하는 관점 자체가 바뀐다. 칩 구조와 제조 공정에 관한 전문 용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한 회사와 한 사람이 내린 반복적인 결정이 지금의 질서를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는 충분히 읽어 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인공지능은 더 이상 중립적인 편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와 정치 윤리와 교육을 다시 짜는 힘으로 떠오른다.
어떤 특정 기업에 대한 찬양이나 비난이 핵심 과제가 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기계를 누가 설계하고 소유하며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집단적 상상력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시민은 직접 칩을 만들 수는 없더라도 그 칩이 어떤 방향으로 쓰여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익과 피해를 나눌 것인지 어떤 규칙 아래에서 인프라를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젠슨 황과 엔비디아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기술과 권력을 동시에 의식하는 감각이 천천히 자라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의 마이크로칩과 한 창업자의 이야기는 아주 작은 실리콘 조각이 어떻게 세계의 거대한 지도를 다시 그려 왔는지 보여 주는 렌즈가 된다. 중간중간 떠오르는 짧은 원문 문장들은 이 거대한 변화를 한두 줄로 압축한 각주처럼 남아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