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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출의 시대, 기술 플랫폼이 장악한 세계의 경제적 질서
플랫폼이 지배하는 새로운 제국
21세기의 경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움직인다. 한때 산업을 움직이던 원유가 오늘날에는 ‘데이터’로 대체되었고, 그 데이터의 흐름을 통제하는 존재가 바로 기술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경제 전체를 관통하는 새로운 제국적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이 시스템의 통치자는 구글, 아마존, 메타, 애플, 틱톡과 같은 초대형 기업들이며, 그들이 가진 힘은 국가와 시장을 동시에 압도한다.
이 플랫폼들은 정보의 유통망을 독점하며, 개인의 소비 패턴과 심리 데이터를 정밀하게 포착한다. 사용자가 클릭하고 멈추는 순간마다 새로운 데이터가 추출되고, 이 데이터는 다시 알고리즘을 정교화한다. 결국 인간은 소비자이자 동시에 ‘자원’이 된다. "노동이 아닌 주의(attention)" 가 가장 핵심적인 경제 단위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추출 자본주의 ? 보이지 않는 착취의 구조
전통적인 자본주의는 노동과 생산의 관계 위에서 작동했다. 그러나 오늘의 플랫폼 경제는 ‘추출(extraction)’이라는 새로운 메커니즘으로 움직인다. 여기서 추출이란 자원을 획득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용자의 데이터·시간·감정 등 비물질적 요소를 흡수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을 뜻한다.
플랫폼은 겉으로는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사실상 모든 대가를 사용자의 데이터로 받아간다. SNS의 좋아요 버튼, 동영상의 자동 재생, 쇼핑몰의 추천 알고리즘 등은 모두 이 추출의 도구다. 그들은 ‘편리함’과 ‘맞춤형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사용자의 선택 권한을 교묘히 줄이고, 플랫폼이 원하는 방향으로 소비를 유도한다. 그 결과, 사용자는 자신이 통제 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통제당하는 존재가 된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가치는 위로만 쌓인다. 플랫폼은 생산시설을 가지지 않고도 전 세계 노동의 결과를 흡수한다. 배달원, 크리에이터, 앱 개발자 모두가 이 시스템 안에서 ‘데이터의 노동자’로 변한다. 추출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 전체의 부를 정상적으로 재분배할 기능을 마비시킨다.
시장의 붕괴 ? 경쟁 없는 독점의 경제학
플랫폼의 핵심 전략은 "‘네트워크 효과’와 규모의 경제"이다. 사용자가 많을수록 서비스의 가치는 증가하고, 새로운 참여자는 자연스럽게 가장 큰 플랫폼으로 몰린다. 이 과정은 거대한 자기 강화 루프를 만들어 경쟁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결국 소수 플랫폼이 모든 산업을 지배하며,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중개 공간을 독점한다.
독점은 단지 가격을 좌우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경제의 구조 자체를 바꾼다. 중소기업은 플랫폼의 정책 변화에 따라 순식간에 무너지고, 언론 산업은 광고 수익을 잃은 채 플랫폼의 알고리즘 논리에 종속된다. 심지어 공공영역 마저 이 독점적 논리 안에서 움직인다. 선거 캠페인과 정치 홍보 역시 플랫폼이 정한 ‘노출 규칙’에 의존하게 된다.
그 결과 민주주의의 기반인 정보의 다양성과 공정한 의사결정 환경이 위협받는다. 한때 플랫폼은 자유와 혁신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감시와 통제의 새로운 형태로 진화했다. "자유의 기술이 통제의 기술로 전환된 것"이다.
피로한 사회 ? 주의 경제의 그늘
현대인은 하루 24시간 플랫폼 속에서 살아간다. 스마트폰 알림, 자동 재생 동영상, 끊임없는 추천 피드가 주의를 갈가먹는다. 주의는 새로운 자원이며, 그것을 가장 많이 빼앗는 기업이 가장 부유해진다. 이 ‘주의 경제(attention economy)’의 시대에서 집중력 결핍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결과다.
알고리즘은 감정 반응이 큰 콘텐츠를 우선시하고, 분노와 불안, 자극적 뉴스가 빠르게 퍼진다. 정치적 양극화, 음모론, 허위 정보 등은 이 경제 논리의 산물이다. 사회는 점점 더 자극적이고 피로해진다. 플랫폼이 경제적 부를 얻는 동안, 사용자는 심리적 소진을 겪는다.
이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디지털 디톡스’나 ‘개인 자제’로는 부족하다. 주의를 착취하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플랫폼 경제의 근본적 문제에 대응하는 첫걸음이다.
지속가능한 플랫폼을 위한 조건
플랫폼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아니다. 그들은 혁신의 핵심이자, 정보 접근 확대와 효율성 향상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힘이 너무 크고, 그 이익이 너무 편향적으로 분배된다는 점이다. 지속가능한 플랫폼 경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데이터의 소유권을 재정의해야 한다. 사용자가 생성한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과 보상권을 보장함으로써, 플랫폼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추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둘째, 공정 경쟁을 보장할 규제 틀을 강화해야 한다. 인수합병 및 독점 규제 수단이 기술 환경에 맞게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셋째, 플랫폼 내부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와 데이터 활용 정책을 공개함으로써 사용자가 진정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플랫폼은 사적 이익의 도구가 아니라 공공의 인프라로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것은 기술을 통해 경제 번영을 누리되, 그 번영이 일부에게만 집중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미래를 지배할 권력 ? 기술과 민주주의의 경계
플랫폼은 이제 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권력이 되었다. 그들은 세계 경제의 데이터 흐름을 통제하고, 정보의 서열을 결정하며, 심지어 집단적 감정과 여론의 방향까지 설계한다. 이 권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현대 민주주의의 기초를 뒤흔들 수 있다.
민주주의는 정보의 평등한 접근과 시민의 자율적 판단에 의존한다. 하지만 플랫폼이 이 두 요소를 독점할 때, 시민의 자율은 점점 형식적인 것이 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보다 ‘무엇이 선택지로 보이는가’를 플랫폼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추출 경제의 궁극적 위험이다 ? 경제의 착취 구조가 정치적 통제 구조로 전이되는 것.
그러나 인류는 항상 권력의 과잉에 대한 저항을 발명해 왔다. 산업자본주의의 노동운동이 그랬고, 정보 사회에서는 데이터 주권과 디지털 민주주의 운동이 그 역할을 한다. 기술이 경제를 정복했다면, 이제 인간의 가치는 그 기술을 재정의해야 한다.
다음 시대의 번영을 위해
추출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AI 와 플랫폼의 결합은 더 정교한 데이터 착취를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예고한다. 그러나 그 위기 속에는 기회도 있다. 기술을 공공의 선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플랫폼은 착취의 도구가 아닌 협력의 도구로 거듭날 수 있다.
“기술의 진보는 중립이 아니다. 그것이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에 달려 있다(Technological progress is never neutral; it depends on whom it serves and how it operates).”
이 한 문장은 플랫폼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시민에게 주어진 과제를 요약한다.
기술은 불가피하지만, 착취는 선택이다. 우리가 그 선택을 다시 설계할 때, 비로소 플랫폼 문명은 진정한 번영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